학원 안 다니면 이상한 집?
전업주부인 아내가 다른 학부모를 만날 일이 많지는 않지만 가끔 학부모를 만나 이야기하다가 자식 이야기가 나오면 아내에게 몇 가지 반응을 보인다.
'아직도 원어민 영어 안 해요? 원어민 영어는 해야죠'
'어머, 웅변이나 미술학원을 안 다녀요? 체육, 수영, 보습학원도 안 다니고?'
'어머, 영어학원도 아직 안 다녀요?'
'방문교사도 없고, 학습지도 안 해요? 애 교육에 너무 무관심하다.'
90% 이상의 학부모들이 학원 안 다니는 우리집 아이들의 미래를 걱정한다. 그리고 요즘 시대에 학원을 안 보내는 '이상한 집'이라고 말한다.
학원은 아이들의 선택에 맡겨
우리집 아이들은 웅변, 미술, 체육, 보습, 영어 등의 학원을 다니지 않는다. 다닌 적도 없다. 학습지나 방문교사도 안 하고, 원어민 영어도 안 한다. 유일하게 지금까지 다니는 것이 피아노 학원이다. 아들놈이 워낙 정신 없는 놈이라 정서 함양을 위해 피아노라도 치라고 보낸 것인데 몇 년 째 다니지만 실력은 거의 늘지 않는다. 오후 내내 집에만 있으면 심심하니까 놀이터 삼아 다니는 탓이다.
학원 보낼 돈도 없지만, 몸과 마음이 커가는 초등학교 때는 하고싶은 것을 하고 놀고 싶은대로 놀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 아이들이 원하지 않는다면 학원을 보내지 않는다. 처음에는 집사람도 학원 안 보내면 아이들이 성적에서 뒤떨어지는 것이 아니냐고 걱정했지만, 성적보다 중요한 것이 행복이라는 내 의견에 공감하면서 이제는 집사람도 학원 안 다니는 것이 아이들을 위해 더 좋다고 말할 정도가 되었다. 건강과 행복이 가장 중요한 가치 기준이 된 것이다.
다찬이가 한 때 태권도 도장을 다니겠다고 제 입으로 말을 한 적이 있다. 친구들이 태권도복을 입고 다니는 것이 부러웠나보다.
"피아노에 태권도까지 다니려면 힘들텐데? 하나만 하지."
"아빠. 두 개 다 잘 다닐 자신 있어요."
"너가 선택한 것이니까, 제대로 다녀야 한다. 알았지?"
나를 졸라서 잘 다니겠다는 약속을 한 뒤에 승낙했다. 그래서 피아노와 태권도장을 동시에 다닌 적이 있다. 하지만 결국 그만 두었다. 두 개만 다녀도 피곤하고 놀 시간이 부족한 것이다. 어느날 어깨를 잔뜩 움추린 채 조심스럽게 내게 묻는다.
"아빠... 저요... 태권도장 그만 다니면 안 돼요? 힘들어서요."
"다니기 싫으면 언제든지 그만 두면 되지."
그러자 얼굴이 환해지면서 당장 태권도장을 그만두었다. 자기가 시작한 것이라 그만 둔다고 하면 아빠가 화낼 줄 알았나보다.
오빠가 피아노학원을 다니자 유치원 다니던 딸도 피아노학원을 보내달라고 조른다. 예사는 정말로 피아노를 배우고 싶어했다. 하지만 유치원도 힘든데 피아노학원까지 다니면 힘들다는 이유로 안 보내다가 초등학교 입학 전에야 보내주었다. 자기가 원했던 학원이라 그런지 일년이 되지 않았는데도 오빠보다 잘 칠 정도가 되었다.
학원 안 다녀서 행복하다는 우리집 아이들
동시에 두 개를 다녀본 적이 있는 다찬이는 이후로 학원 다니겠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학원보다 집에서 맛 있는 것 먹으면서 게임하는 것이 더 즐거우니까. 다찬이는 학원 다니는 아이들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반면 다찬이 친구들은 신나게 게임을 하는 다찬이를 종종 부러워한다. 그래서인지 우리집 아이들은 "엄마, 너무 행복해요. 계속 이렇게 살면 좋겠어요."라는 말을 가끔 한다.(주로 간식 먹을 때 이야기한다. ^^;)
우리집 아이들이 공부를 잘 할지 여부는 나도 모른다. 4학년이 된 다찬이는 아직도 영어 낱말 하나 읽지 못 한다. 영어교육을 따로 배운 적이 없는 까닭이다. 부모 마음은 다 같다. 자기 자식이 공부도 잘 하고 영어도 잘 하고 노래도 잘 해서 인기 많기를 원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그것을 얻기 위해 희생해야 할 것이 너무 크다면 성적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모든 아이가 1등을 할 수는 없다. 누구는 꼴등을 해야 한다. 나는 꼴등 하는 아이가 우리집 아이라고 해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아이가 만능이며 천재는 아니다. 대부분의 평범한 아이가 공부도 잘 하고 영어도 잘 하고 그림도 잘 그리기 위해서 희생해야 할 것이 얼마나 많은가?

성적을 포기하면 행복해집니다
얼마 전에 만난 교수님 한 분은 강남에 사는데 아침마다 아이를 차로 태워 등교시켜준다고 한다. 그러면서 학원을 안 다니는 우리집 이야기가 나오자 "대단하네요. 어떻게 그게 가능하죠? 사실 나도 아이들은 마음껏 뛰어노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거든요."라고 묻는다. 그래서 내가 대답했다.
"간단합니다. 성적을 포기하면 됩니다. 그러면 쉽게 행복해집니다."
그 순간 그 교수님은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성적을 포기하기가.. 참 어렵죠. 아내 설득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데요.".
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으로써 이해는 한다. 그 교수님도 그분의 아내도. 아내 주변의 수 많은 엄마들 욕심도. 난들 우리 아들이 1등하는 것을 싫어할까. 하지만 1등하려는 이유가 무엇인가? 돈 잘 벌어서 잘 먹고 잘 살아서 행복감을 느끼려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왜 행복을 포기하면서 공부 1등을 하려는 것일까? 현재 우리사회의 모습은 본말이 전도된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행복의 조건으로 공부 잘 하려는 사회가 아니라, 공부를 잘 하기 위해 행복을 포기하는 사회. 그래서 요즘 아이들이 불쌍하다. 불행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인다.(학원 다니는 것이 행복하다는 아이도 꽤 되겠지만.)

아이들도 자신의 삶을 선택할 권리는 있다
물론 나도 우리 아이들이 영어 잘 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몇 가지 사실은 분명하게 알고 있다. '하기 싫은 놈에게 억지로 시켜봐야 공부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리고 '하기 싫은 것을 하는 삶은 불행하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아직 머리가 자라지 않은 초등학생이 감당할 수 있는 공부량의 한계가 있다'는 사실도 잘 안다. 그래서 나는 우리 아이들이 스스로 감당할 정도가 되었을 때에 자기의 의지로 영어공부를 시작하는 것이 가장 좋은 영어학습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도 아이들이 충분히 놀고 먹고 자도록 한다.
나는 또한 아이들이 좋은 대학을 나오고 돈을 잘 버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때문에 좋은 대학을 가면 좋은 이유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하면서 아이들을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할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대학을 선택하지 않고 미용사나 요리사, 게이머를 선택하더라도 나는 아이의 선택을 지지할 것이다. 왜냐하면 아이들에게는 행복 선택권이 있기 때문이다.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자신의 인생을 선택할 권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갓난아기조차도 행복할 권리, 행복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 사회에 해를 끼치는 일이 아니라 자신이 행복하고 남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선택이라면 나는 언제나 아이들의 선택을 지지할 것이다.

나와 남을 행복하게 만드는 삶을 목표로
"나와 남을 행복하게 만드는 사람"이 우리 아이들의 교육 목표다. 성적과 영어는 이를 위한 수 많은 조건 중의 하나에 불과할 뿐이다. 때문에 '1등 할 수 있지만 불행하다고 생각하며 사는 인생'과 '성적은 꼴찌지만 행복하다고 사는 인생' 중에서 나는 우리 아이들이 '행복한 꼴찌'를 선택하며 살기를 바란다. 남을 불행하게 만들면서 살 이유는 없다.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면서까지 살 이유는 더욱 없다.
어른들에게 물어보자. '당신이 8살 아이라면 아침부터 저녁 8시까지 학원 뺑뺑이 도는 삶을 원하겠는가?' 대부분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아니 학원 뺑뺑이 도는 우리 아이들의 삶이 불행하다는 사실도 이성적으로는 인지하고 있다. 새벽 한 시에 집으로 돌아오는 중고생의 삶을 불행하다고 느끼고 있다. 그런데도 왜 아이를 학원으로 모는 것이냐 물으면 이렇게 답한다.
"아이의 행복을 위해서. 아이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서."
아이들에게 선택권도 주지 않으면서 아이의 행복을 말한다. 국민의 행복을 위해서 강제로 정책을 집행하는 독재정권과 똑 같은 행태를 보이면서 민주주의 시민이자 모범적인 부모라고 착각한다. 이런 독재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이 어떻게 민주주의 시민이 되겠는가.
영어학원이나 방문교사 원어민 교육을 안 하는 대신 나중에 내가 아이들 영어를 봐주기로 집사람에게 약속했다. 내가 가르치는 것이 아이들에게 좀더 부담이 덜 갈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그래도 끝내 아이들이 영어를 배우지 않겠다고 한다면 나는 영어교육을 포기할 것이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도 나중에 스스로 필요를 느낄 때 알아서 배울 수밖에.
내가 행복하지 않고 남이 행복하지 않는 교육은 '교육이 아니다'. 남의 불행을 먹고 자라는 무기를 생산하는 것에 불과하다.
아이들의 선택권을 무시한 행복은 '행복이 아니다'. 자기 아이들이 행복해지기를 바라는가? 그렇다면 먼저 아이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아이들의 선택을 존중해주라. 그들에게도 인격과 판단력과 생각과 꿈이 있다.
어른들이 행복과 성적의 종속관계만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면 세상은 좀더 행복해질 것이고, 우리 아이들도 좀더 행복해질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언제인가 사교육 열기가 너무나도 뜨거운 지역에 사는 친구로부터 '요새 애들은 학원에 가질 않으면 친구를 사귈 기회가 없다'라는 말을 건네 듣고는 큰 충격을 받았던 것이 생각납니다.
한창 친구들과 함께 뛰어놀며,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사이에 사람과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맺어야하는지 느껴야할 나이에 건물에 갇혀 끊임없이 문제만 풀고 있으니, 요즘 아이들이 너무나도 불쌍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얼른, 이제는 학원에 안 다니는 것도 선택할 수 있다라는 걸 보여줄 수 있는 때로 다시 돌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제 부모님도 별로 학원을 강요하지 않으신 편이었지요. 초등학교 때 미술학원을 잠깐 다녔지만 학원에서도 제가 그리고 싶은 그림만 그렸던 기억이 나고, 오랫동안 한 것은 학습지 하나밖에 없네요. 중학교 때도 그 흔하디 흔한 보습학원 하나 안 다니다가 중3 여름방학 때 어느 학교 선생님이 성적 보시고 과학고 지원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셔서 그제서야 제대로 선행학습이란 걸 조금 해보긴 했습니다.
학원을 거의 안 다녔기 때문에 지끔껏 피아노도 계속 칠 수 있었고, 중학교 때는 프로그래밍에 열중해서 지금처럼 카이스트에 올 수도 있게 되었고, 또한 초등학교 시절에 취미삼아 그린 그림만 스케치북 수십권이 되도록 쌓았고, 모래장난하면서 기와집 형태와 크레이터로 달표면을 만들면서 놀 수 있었지요. 그랬기 때문에 풍부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게 아닌가 지금와서 부모님께 매우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 모두가 이렇게 살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네요.
uncaffe님: 말씀처럼 학원은 선택이죠. ^_^
daybreaker: 모든 아이들이 그렇게 풍부한 어린 시절을 보낸 기억을 가졌으면 합니다. 저는 어린시절의 기억이 즐겁습니다만 우리 아이들도 그런 기억을 가지는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훌륭하십니다. 우리 딸은 피아노, 수영, 한글학교 등 너무 가고 싶어해서...저희가 벅찹니다만 ㅜ.ㅜ 그냥 집에서 혼자 놀면 좋을 것을...저도 절대 아이가 싫어하면 안보내려고 해요. 근데, 아이는 어딘가 가서 배우는 게 좋은가봐요. -_-;;
당그니님: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학원비도 벅차고... ^^;
실은 우리 집 딸도 수영 배우고 싶다고 하는데 중학교 가서 배우라고 했습니다. 어린아이라서 엄마가 따라다녀야 하는 어려움이 있어서요.
아이가 하나라면 사실 아이가 심심해하죠. 형제를 만들어주면 학원 안 보내도 잘 놉니다. 우리집은 둘인데도 둘이 잘 놀더라고요. 학원비 아끼는 방법은 아이를 둘 이상 낳는 것입니다. ^^;
진심으로 위로를 받았습니다. 학습지 하나하고 영어학원2개월보냈는데, 초1학년이라 학교에서 집에 오가는것을 아직 못해서 날마다 울더니 학원다니는것도 혼자보내니 스트레스때문에 머리가 아프다더군요. 그래서 이번에 그만두기로 서로 결심하고 다시다니고 싶으면 말하랬더니 알겠다더군요. 저도 학업에 열심였던적이 없었는데 자식을 위한다며 힘들게 했네요. 영어학원가는것도 아이가 먼저 가겠다고 했지만, 보내다 보니 욕심이 생기더라구요. 하지만 건강보다 인성교육보다 더중요한것은 없더군요. 저도 제 결심을 굳건하게 지키렴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