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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길남 박사, 세계 두 번째 인터넷국가를 만들다



IT문화원 블로그. 2009년 04월 20일. URL: http://www.dal.kr/blog/002066.html

SDN이 만들어지면서 한국 인터넷이 시작되다.
1982년 5월 15일, 경북 구미 전자기술연구소(KIET, 현 한국전자통신연구소)에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수 십 명의 눈길 속에 키가 하나씩 눌러지고 마침내 화면이 뜨자 연구원들은 환호성을 터트렸다. 전자기술연구소와 서울대학교 사이의 인터넷이 개통된 것이다.

1982년 3월 2일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과의 중형 컴퓨터와 당시 구미에 있었던 전자기술연구소의 중형컴퓨터를 1200bps 전용선으로 연결했다. 이 전산망을 SDN(System Development Network)이라 불렀고 이것이 한국 전산망의 시작이자 한국 인터넷의 시초다. SDN이 한국 인터넷의 시초인 이유는, SDN이 인터넷의 근간을 이루는 TCP/IP 및 FTP, Telnet 등의 응용 프로토콜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5월 15일에 마침내 서울과 구미 사이가 관통되면서 인터넷 원조인 미국에 이어 세계 두 번째 인터넷 나라가 탄생한 것이다.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도 아닌 한국이 세계 두 번째 인터넷 국가가 된 것은 전길남 박사 덕분이다.

미국 UCLA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에서 연구하던 박사는 박정희 정부의 해외과학자유치사업에 의해 1979년 2월에 입국해 전자기술연구소의 컴퓨터 시스템 개발 부장을 맡았다. 그러나 그의 가슴 속에는 네트워킹에 대한 열망이 가득 했다. 박사는 우리나라의 낙후된 과학기술을 빠르게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은 미국 등 선진국의 우수한 과학기술을 빠르게 입수하고 해외 우수 과학자와의 교류를 활성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네트워크를 통한 정보 공유야말로 제품 하나 만드는 것보다 더 중요한 바탕이라고 생각했다. 박사의 말처럼 오늘날 네트워크는 모든 학문의 바탕이 되었다. 정부에서는 수출이 가능한 컴퓨터 개발에만 관심이 있었지만 박사는 1979년부터 서울대생을 가르치면서 네트워크를 연구했다. 그리고 2년 뒤에 TCP/IP 프로토콜을 쓰고 텔넷으로 연결된 SDN이 탄생한 것이다.

전길남 박사


폐쇄적인 미국 인터넷을 세계인의 인터넷으로 바꾼 SDN
1983년에는 카이스트로 자리를 옮기면서 카이스트도 1983년 1월부터 SDN에 합류했다. 1983년 8월에는 네덜란드의 MCVAX, 10월에는 미국 HP연구소에 연결되면서 미국과도 연결되었다. 그러나 미국 연결이 쉽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당시 인터넷은 미국 국방부의 보물창고였기 때문에 라우터 하나도 구할 수 없었다. 지금은 흔한 장비인 라우터는 미국과 동맹국을 맺은 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일부 국가인 영국, 캐나다 정도에만 제공되었고, 공산권과 인접한 한국에서는 구할 수 없는 물건이었다. 북한과 적대국이라고 아무리 설명해도 미국 정부는 기술 유출을 우려해 라우터 판매를 불허했다. 연구비가 없기 때문에 라우터 장비를 만들 수도 없는 일. 결국 소프트웨어 방식으로 라우터 기능을 구현해 SDN을 미국과 연결시킬 수 있었다.

한국의 SDN은 폐쇄적인 미국의 인터넷 정책을 세계인의 인터넷으로 바꾸는 결정적인 계기도 제공했다. 1986년 SDN 연구원은 X.25프로토콜을 통해 전용선 없이도 인터넷에 연결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했다. 그래서 미국 NIC에 IP주소 할당을 신청하는 메일을 보냈다. 당시까지만 해도 인터넷은 NATO 가입국만 사용할 수 있었기에 그 외 국가의 인터넷 IP주소 할당은 생각지도 않은 사건이었다. 결국 이 사건을 계기로 인터넷을 운영하던 미국 과학재단은 인터넷을 세계에 개방하여 운영하기로 정책을 바꾸었다. 아쉬운 것은 정작 개방 정책의 혜택을 먼저 누린 곳은 한국이 아닌 독일, 일본, 호주 등이라는 점이다. 한국은 비용을 이유로 1990년에야 직접 연결할 수 있었다. 1년 비용이 20만 달러(2억 원)인데 그때까지도 인터넷의 필요성 자체를 이해 못 한 한국 정부는 이를 지원하지 않았다. 결국 인터넷 기술의 미래 가치를 보고 투자한 한국통신이 이 비용을 부담했다.

1990년 4월에는 'KAIST'에서 인공위성을 통해 하와이 대학과 56Kbps 전용선으로 연결했는데, 이를 위해 하나(HANA) 기구를 설립하고, 하와이와 연결된 망을 'HANA망'이라 불렀다. 이때부터 국내 인터넷망은 SDN으로 부르고, 해외 인터넷에 연결된 망은 하나망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한국 인터넷이 세계와 연결된 것이다.

한편 국가기간망사업의 하나로 기획된 교육연구망 사업을 통해 국공립대학을 연결하는 KREN이 구축되었다. KREN-Bitnet은 1988년 서울대학교가 'Bitnet'에 가입하면서 시작되었으며, 이후 13개 대학이 가입하는 망이 되었다가 1990년에 전국 9개 대학을 중심으로 'KREN-Internet'이 만들어진다. 또한 연구전산망인 'KREONET(Korea Research Environment Open Network)'이 인터넷망으로 구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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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도이모이   (2009년 04월 22일. 04:43)

안녕하세요. 도이모이입니다.
언제나 좋은 글을 보고 있습니다. 예전의 꿈이 사이버 박물관을 만드시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시류의 흔들리지 않는 글들을 볼때마다 저도 많이 느끼고 배우고 있습니다 ^^


글쓴이: 김중태   (2009년 04월 24일. 17:45)

도이모이님: 언제가 될 지 모르겠지만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올해는 그 첫 발을 내딛는 한 해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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