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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길남 박사와 한국에서 나올 뻔한 PC-DOS와 리눅스 프로젝트



IT문화원 블로그. 2009년 04월 20일. URL: http://www.dal.kr/blog/002067.html

한국에서 출시될 수도 있었던 PC-DOS와 리눅스
한국 인터넷의 아버지인 전길남 박사는 운영체제에도 관심을 가진 분이다. 1978년 인텔이 16비트 CPU 8086을 내놓자 16비트 운영체제를 만들기로 하고, 게리 킬달에게 도움을 청했다. 게리 킬달의 CP/M을 16비트로 개선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 잘 나가던 게리 킬달은 박사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박사는 대안으로 Q-DOS를 선택한다. 박사는 시애틀컴퓨터와 16비트 운영체제를 함께 개발하기로 약속했는데 갑자기 마이크로소프트가 Q-DOS를 사버리는 바람에 운영체제 개발이 좌절되었다. Q-DOS는 빌 게이츠에 의해 MS-DOS로 포장이 바뀌었고 오늘날 빌 게이츠 신화의 밑거름이 된다. 만약 그때 전길남 박사님이 Q-DOS를 샀거나 공동개발을 완료했다면 세계 IT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 대신 IBM사의 PC-DOS로 선택되었을 것이고, 한국의 소프트웨어 산업은 다른 모습이 되었을지 모른다.

전길남 박사는 카이스트에서 비싼 가격의 유닉스 대신 가볍게 쓸 수 있는 운영체제 개발을 다시 기획한다. GNU의 아버지인 리처드 스톨만과 함께 운영체제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만약 이 계획이 제대로 실행되었다면 리눅스와 같은 운영체제는 카이스트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높지만 이 계획도 연구원의 취직으로 깨진다. 박사는 이 두 가지가 두고두고 아쉬운 일이었다고 한다.(제자의 취직을 말릴 수 없었던 이유는 더 좋은 대우를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길남 박사


해외에서도 존경받는 대한민국 인터넷의 아버지 전길남 박사
전길남 박사는 박정희 정권의 해외과학자유치사업 때 귀국한 과학자 중 한 명이다. 전길남 박사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인터넷 국가를 만들면서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일본이 깜짝 놀란 것은 물론이다. 일본은 박사를 찾아와 인터넷 기술을 전수받았고 일본에 인터넷을 보급했다. 일본 뿐 아니라 중국을 비롯한 많은 아시아 국가들이 박사를 통해 인터넷을 전수받았다.

박사는 한국의 인터넷 발전을 위해 박사 과정의 제자를 험난한 사업가의 길로 유도했다. 대한민국 최초의 인터넷 전문회사인 '아이넷'을 창업하고, 현재 '인터넷기업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허진호 박사가 전길남 박사의 제자다. '바람의 나라' 게임을 만든 넥슨의 김정주 대표도 박사의 조언에 따라 박사 과정을 접고 사업가로 나서 성공한 사례다. 복잡한 인터넷 접속을 한 번의 클릭으로 가능하게 해주는 서비스인 네오위즈의 '원클릭 서비스'를 만든 나성균 사장과 박진환 사장은 넥슨의 웹에이전시사업부에서 일하던 직원이었다. 김정주 대표와 '바람의 나라'를 만들고 이어서 '리니지'를 만든 송재경, 박현제 솔빛미디어 대표, 정철 삼보컴퓨터 대표 등도 박사의 SA랩에서 성장한 제자다.

이렇게 대한민국을 인터넷 강국으로 만든 박사지만 한국 인터넷 20주년 행사도 성대하게 치르지 못 했고, 조촐한 정년 퇴직 후에도 불러주는 곳이 없었다. 정작 일본에서는 인터넷을 가르쳐준 박사에 대한 보답으로 일본의 게이오 대학 부총장으로 모셔갔다. 한국에서 빌게이츠나 스티브 잡스가 나오지 않고 도스, 리눅스가 나오지 않으며, 일본이 한 해에도 여러 명 받는다는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지 못 하는 이유를 알 수 있는 장면이다.

* 참고: 공개SW운동 선언. 한신대가 대학의 패기를 보여주는군요.
* 연결: [인터뷰] 전길남 KAIST 교수의 20년 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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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로그이름 : archmond's me2DAY (2009년 04월 22일. 08:46)
• 걸린글제목 : 아크몬드의 생각
한국에서 빌게이츠나 스티브 잡스가 나오지 않고 도스, 리눅스가 나오지 않으며, 일본이 한 해에도 여러 명 받는다는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지 못 하는 이유를 알 수 있는 장면이다 [모두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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