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전문가 영역에 속하던 디지털 기기는 전자계산기를 계기로 일반인에게도 보급되기 시작했다. 디지털기기를 몸에 지니고 다닌 것은 전자손목시계가 보급된 후부터다. 70년대 말부터 졸업식선물로 각광받은 전자손목시계는 바늘시계만 보고 자랐던 세대에게 디지털 세계를 가장 쉽게 이해시켜준 제품이 되었다. CASIO나 SEIKO라는 이름을 손에 차던 날 얼마나 흥분했던가. 그러나 몇 년 전까지도 전자계산기, 시계, 컴퓨터를 비롯한 극히 일부 영역에서만 디지털기기를 사용했을 뿐이다. 실제로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파일이 우리의 생활을 뒤바꾸기 시작한 것은 웹의 보급 이후부터다. 동영상과 그림파일, MP3 파일이 기존의 시청각 자료를 대체하면서 비로소 디지털문화가 일상에 밀착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므로 디지털문화가 일반 국민의 눈과 귀를 장악하며 일상을 지배하기 시작한 것은 5년이 채 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디지털문화는 편리한 문화다. 몇 백원만 내면 클릭 한 번으로 쉽게 음악파일을 구할 수 있다. 똑 같은 사진과 음악을 동시에 수 천 명에게 전송할 수 있고, 언제 어디서나 즐길 수 있어 너무 편리하다. 그러나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법이다. 쉽다는 이야기가 성취욕의 감소를 뜻하는 것처럼 편리함은 우리의 추억과 기억을 대가로 가져간다.
'국악 1집' CD를 구하기 위해 신사동의 SKC 매장까지 찾아갔던 1987년 봄날의 신사동 언덕길 풍경을 나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용돈을 모아 대학가요제 레코드판을 샀던 겨울날의 동네 근처 레코드가게 풍경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유리창으로 떨어지는 비를 볼 때마다 햇빛촌의 앨범을 만지며 선물을 준 친구를 떠올리기도 한다. 사람들은 촌스러운 인쇄의 팝송가수 앨범을 보며 그 앨범을 구하기 위해 돈을 모으던 고생과 두 번 째 노래를 유독 좋아하던 어떤 친구의 기억, 그 가수에 대한 기억을 떠올릴 것이다. 30년 전의 앨범 사진과 오늘밤 TV에서 '호텔 캘리포니아'를 부르는 이글스의 모습을 보면서 저들도 나도 함께 늙어가는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지직거리는 테이프와 LP를 보면서 기계도 사람도 함께 늙어간다. CD, 테이프, LP를 보면서 우리는 가수에 대한 추억, 나에 대한 추억,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추억을 함께 떠올린다. 눈으로 볼 수 있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CD는 음악만 담는 제품이 아니라 추억과 행복도 담는 제품이다. 수 십 년 간 보관했던 LP나 CD가 깨질 때의 상실감은 단지 1만 원의 상실감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음악사이트에서 딸깍 한 번으로 MP3를 받는 세상에서 이런 추억을 함께 하기란 어렵다. MP3 세계에서는 파일이 손상되면 다시 받으면 된다. 수 십 만 곡이 네트워크에 늘 존재한다. 1바이트까지 완벽하게 같은 모습으로 존재한다. 사람들은 저장하고 기록만 할 뿐 기억하려 하지 않는다. 어떤 그림의 앨범에 들어있는지 기억을 떠올려 찾는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의 검색 기능으로 검색한다. 기억할 것도 없고 기억할 이유도 없다.
눈에 보이지 않고 손으로 만질 수 없는 디지털 세계는 유형의 아날로그 세계가 줄 수 있는 것을 주지 못한다. 무엇이 더 행복한 삶인가? 디지털문화는 편리함을 주지만 행복까지 주지는 않는다. 행복은 기술 방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 방식에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은 우리의 기억과 추억을 축소시킨다.


우리는 왜 노래를 들을까? 명백한 사실은 MP3재생기의 성능을 시험하려고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라, 행복해지려고 음악을 듣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MP3재생기의 목표는 좋은 음질이 아니라, 좋은 음질을 통한 인간의 행복인 것이다. 우리는 왜 사진을 보고 영화를 볼까? 분명한 것은 디지털카메라와 그래픽카드의 성능을 시험하려는 것이 아니라 즐겁고 행복해지려고 사진과 영화를 본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어떤 기술을 개발하는 이유는 지금보다 더 편하고 행복하기 위해서다. 모든 경제생산활동이나 기술의 목표는 인류의 행복이다. 좀더 나은 기술이 좀더 많은 편리를 주고, 이런 편리를 통해 인간은 좀더 행복해지려고 한다. 웹 또한 사람의 행복을 위해 만든 기술이다. 시맨틱웹 또한 사람의 행복을 위해 개발되고 있는 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