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끊임 없이 정반합 과정을 거친다. 또한 언어는 가장 생생하게 현실을 반영한다. 때문에 사람들이 특정 시기에 어떤 말을 자주 쓰거나 용법이 바뀐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다. 어떤 경우에는 잘못 된 쓰임이라고 해서 바로잡아주면서 쓰지 못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현실 반영을 인정해 그 말을 주류로 편입시키기도 한다.
사람들이 '다르다'를 써야할 곳에 '틀리다'를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언어의 경제성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언어의 경제성은 크게 두 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 하나는 축약이다. 긴말을 줄여서 쓰고, 발음하기 힘든 말은 발음하기 쉽게 고쳐쓴다. '여자대학교' 'Operating System'을 '여대' 'OS'라고 줄여 말하는 것이 흔히 볼 수 있는 사례다.
두 번째 모습은 비슷한 의미의 통합으로 나타난다. 낱말 열 개를 외우는 것보다는 낱말 하나를 외우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고, 뇌에 부담도 적다. 비슷한 의미를 가진 열 개의 낱말이 있을 경우 대개의 사람은 하나의 낱말로 다 해결하려고 한다.
'석양' '황혼' '노을"은 그 의미가 다르지만 대개의 사람은 그 의미를 정확하게 밝혀 사용하지 않는다. '석양'은 '저녁때의 햇빛'을 뜻하고 노을은 '해가 뜨거나 질 무렵에 붉게 보이는 현상'을 뜻하므로 의미가 크게 다르다. 석양은 '저녁'과 '햇빛'으로 한정되지만, 노을은 '아침' '저녁'이 다 포함되고 햇빛이 아닌 붉은 '하늘'을 뜻한다. '황혼'은 '해가 지고 어스름해질 때'를 뜻한다. 따라서 '석양이 눈부시다' '저녁노을이 붉다' '황혼 무렵이다'라는 식으로 쓰는 것이 바른 쓰임새다. '황혼 무렵에 붉은 저녁노을을 배경으로 석양이 빛나고 있다'라는 문장을 보면 세 가지 낱말의 쓰임새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석양이 진다' '황혼이 진다' '노을이 진다'라고 말한다. 비슷한 낱말 중에서 먼저 생각나는 것으로 내뱉는데, 그 이유는 대충 사용해도 의미가 통하기 때문이다. 의미만 통하면 가장 편하고 빠른 방법으로 말을 하려는 것이 언어의 경제성이다. 두뇌가 피로를 줄이기 위해 본능적으로 선택하는 방법인 것이다. 결국 세 낱말의 뜻은 점차 통합되고 나중에는 이 세 가지 낱말 중에 하나만 살아남게 될 것이다. 석양 이전에 있던 '낙양, 만양, 사양, 사일, 사조, 석일, 석조(夕照), (夕暉)'가 석양에 밀려 사라진 것처럼 말이다.
언어의 경제성을 생각해보면 사람들이 '이것은 저것과 다르다'라고 써야 할 곳에 '이것은 저것과 틀리다'라고 쓰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의미만 통할 수 있다면 먼저 떠오르는 낱말로 표현하려는 두뇌의 본능에 의한 현상이다.
그렇다면 귤님이 제시한 의문인 '다르다'의 의미를 정확하게 쓰는 사람들이, '이것은 저것과 다르다'라고 써야 할 곳에 '이것은 저것과 틀리다'라고 잘못 쓰는 이유는 '다르다'와 '틀리다'의 의미가 대충 비슷한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이 '다르다'를 써야할 곳에 '틀리다'를 쓰는 경우는 대개 비교대상 A가 원본이거나 옳다고 느낄 때다. 'B는 A와 다르다'고 써야할 문장에 'B는 A와 틀리다'라고 쓰는 경우가 가장 많은데 이때 사람들은 둘 중 하나는 옳거나 원본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A와 B 그림의 차이를 찾는 게임 이름을 '다른 그림 찾기'라고 하면 이상해한다. 게임이름은 '틀린 그림 찾기'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A가 원본이므로 B의 달라진 부분은 다른 부분이 아니라 틀린 부분이라는 인식이 있는 것이다.
다른 사례를 들자. '갑'의 생각 A에 대해 '을'이 B를 말하면 '내 생각과 다른데'라고 말해야 옳지만 많은 사람들이 '내 생각과 틀린데'라고 표현한다. 갑은 자신의 생각 A가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당신의 생각은 내 생각과 다르군요.'라고 써야할 곳에 '당신의 생각은 내 생각과 틀리군요'라고 쓰는 이유는 '내 생각이 정답'이라는 인식의 무의식에 깔려있기 때문이고, 이런 인식이 자기도 모르게 확산되면서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느는 것이다.
이처럼 사람들이 쓰는 말이 바뀔 때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무의식 속에서도 두뇌가 조금이라도 덜 피곤하려고 언어의 경제성을 추구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인 것이다.
• 블로그이름 : Sylphid Wave
(2007년 07월 08일. 11:09)
• 걸린글제목 :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닙니다.
웹을 돌아다니다가 가끔 '다른 것'을 놓고 서로 싸우는 광경을 목격합니다. 서로 간의 다른 점 때문에 발생한 문제점을 놓고 절대로 물러날 수 없다며 너는 틀렸고 내가 맞다는 식의 글을 보... [모두 읽기]
안녕하세요. 커리어블로그라고 합니다. 웹서핑 중 우연히 선생님의 본 포스트를 보게 되었습니다.
현재 저희 회원은 아니시지만 여러사람들과 본 내용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흔적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저작권 관련 표기 규정을 준수하면서 메인에 노출하고자 하는데 그렇게 해도 될런지 답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
엄밀히 따지면 다른 그림이나 틀린 그림 찾기가 아니라 다른 부분이나 틀린 부분 찾기가 되어야 할텐데...이것도 언어의 경제성인가요? :)
커리어블로그님: 예. 이곳의 공개된 글은 자유롭게 사용하셔도 좋습니다.
gimmesilver님: 그렇다고 봐야겠죠. '두 그림에서 다른 부분 찾기'라고 제품명을 적기는 어려우니까요. '다른 부분'이라고 하면 어디에서 다른 부분인지 모르니까 '다른 그림'을 거쳐 '틀린 그림'으로 변화된 것으로 봐야하지 않을까요.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 메인에 노출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제가 왜 틀리다를 자꾸 쓰면서 여친에게 혼났는지 해답을 제시해주시는군요.^^;; 여친이 말하길 '정치적의식'이 없어서 그런다고 합니다. 난 문화를 반영한다고 했지만(뜻은..그냥 커오면서 누구도 지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의미는 다르다이지만 말할때는 그냥 틀리다로 썼다.) 그게 아니라고 하면서 설명을 해주더군요. 여친은 사회학도이자 젠더를 연구하는데, 언어사용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더라구요.
특히 '여자와 남자는 다르다'라고 해야 옳은표현이라고 하더군요.
좋은 글 읽고 갑니다.
한국어의 다르다/틀리다는 영어의 different/wrong과는 상이한 의미대립을 갖습니다. '틀리다'의 의미범위가 'wrong'보다 훨씬 큽니다. 따라서 다르다, 틀리다 사이에 공통적인 의미장이 형성됩니다.
우리말 언어순화의 목표가 잉글리시가 아닌이상 이런 언어 폭력은 그만 두어야 합니다.
거기에 다르다/틀리다 의 의미대립이 각 한국어 사용자마다 다를 수 있는데, 이걸 용납하지 못하고 자기의 언어습관을 강요하는 것은 차라리 완장질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남이 '틀린그림찾기'라고 부르는 게 그렇게 고깝답니까. '틀린그림찾기'라고 말하는 사람을 독선적인 인간으로 몰아가는 것 자체가 모순되지 않나요? 남의 언어습관을 못받아들이면서 자기것만 옳다고 주장하는 게 바로 독선 아닐까요.
트랙백 보내려고 했는데 트랙백이 잘 안 오네요.ㅜㅜ
http://may.minicactus.com/1817
제가 주장하는 다른 시각의 '다르다'와 '틀리다'에 대한 주장이라고 할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