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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02] 웹2.0의 시작 시기와 등장 이유



웹2.0 시대의 기회. 시맨틱웹


15.2.웹2.0의 시작 시기와 등장 이유


웹2.0은 닷컴 붕괴 이전부터 시작되었다.

오라일리 미디어의 말을 그대로 따르자면 웹2.0은 닷컴붕괴를 나타내는 대명사이자 닷컴붕괴 이후 살아남은 기업의 특징을 파악하기 위해 만든 말이다. 결국 닷컴붕괴 이전부터 변화를 모색한 기업이 살아남은 것으로 볼 수 있으니 웹2.0 서비스와 기술은 닷컴 붕괴 이전부터 시작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웹2.0의 범주로 규정한 구글 애드센스나 냅스터 등은 몇 년 전부터 등장한 서비스다. 따라서 웹2.0으로 변화는 2000년 이전부터 진행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렇게 본다면 몇 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무엇이 웹2.0이라는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 것일까? 닷컴붕괴는 왜 일어난 것일까? 닷컴붕괴 이후 살아남은 기업은 어떤 이유로 살아남았을까? 왜 지금에 와서야 웹2.0의 물결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일까?' 하는 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웹에 대한 사용자의 변화 욕구가 웹2.0이라는 거대한 변화의 흐름을 만들어낸 것이고, 이 흐름 속에서 사람들의 욕구 변화를 잘 파악하고 이에 대응한 기업이 살아남은 것이다. 또한 최근 들어 웹2.0의 물결에 대해 관심이 증가한 이유는 사람들의 욕구 변화가 갈수록 빨라지고 있고 이에 대응하는 기업들의 반응 역시 빨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용자의 웹에 대한 변화 욕구는 왜 일어났을까? 사람들이 웹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초기에는 그저 별천지처럼 보이던 웹이 익숙해지자 불편한 점이 보이기 시작했고, 불편한 점에 대한 개선의 욕망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초기 웹의 구조와 플랫폼, 서비스에 대한 변화 욕구가 생긴 것이고 이런 변화 욕구에 의해 웹2.0이라는 변화의 흐름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웹2.0의 변화가 일어난 이유는 사용자가 웹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1편에서 말했지만 2000년이 되기 전까지 대부분의 가정은 PC통신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 하고 있었다. 초고속인터넷망의 보급도 매우 느렸다. 2000년 1월호 컴퓨터잡지 광고를 보면 56K 모뎀을 이용해 01412 전화번호로 접속해 인터넷을 편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나이스 인터넷'이나 'BoB돈버는 인터넷'이라는 상품을 비롯해, 01421로 접속해 사용하는 1만원 짜리 '천리안 정액제' 상품, ISDN 가입을 알리는 광고가 잡지를 메우고 있는 상황이다.

KT가 ADSL로 초고속인터넷망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서비스 가능 지역이 서울 부산의 일부 지역에 불과했고, 대구 광주 등의 대도시에도 서비스가 되지 않고 있었다. 하나로통신이나 두루넷, 드림라인 역시 일부 지역만 서비스가 가능했다. KT는 1999년 6월부터 일부 지역에서 시범 서비스를 시작하며 연말부터 본격적으로 ADSL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ADSL 사업은 지지부진했다. 밀레니엄 시대인 2000년 초에도 KT의 ADSL 가입자는 겨우 1만 5천 명에 불과했다.

우리가 무척이나 오래 전부터 사용하는 것처럼 느끼는 것이 초고속인터넷이지만 밀레니엄 시대라는 2000년이 열렸을 때도 한국인 중에서 초고속인터넷망 사용자는 1%도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2000년이 되었을 때도 대부분의 PC통신인은 모뎀을 사용해 하이텔이나 천리안, 웹을 사용하고 있었다. 1999년 말 기준으로 천리안 사용자 210만 명(매출 1,400억원), 유니텔 187만 명(매출 873억) 등의 숫자가 보여주는 것처럼 1999년에 가장 치열했던 분야는 모뎀을 이용한 PC통신 분야였다. KT의 ADSL 가입자수와 비교하면 몇 백 배의 차이가 나는 셈이다.

초고속인터넷망이 실질적으로 우리에게 보급된 것은 2000년부터다. 위기를 느낀 KT는 1999년 말에 박형출씨를 책임으로 마케팅 전담반을 전격 신설하고, M3(Million Marketing for New Millennium)를 목표로 세웠다. 2000년 안에 백만 가입자를 유치하겠다는 목표를 세운 전담반이 2000년 3월 ADSL 예약가입제를 성공적으로 도입하고 각종 장비를 국산화하면서 비로소 한국에는 ADSL이라는 초고속인터넷망이 폭발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다. 마침내 2000년 말에 KT는 목표치를 초과한 173만 가입자를 확보하며 천 만 명 가입자를 위한 행진을 시작한다.


처음 인터넷과 웹을 접한 사람에게는 웹의 세계가 천국처럼 보였다.

56K 모뎀으로 PC통신을 하던 사람들은 이처럼 갑작스럽게 변한 통신환경과 웹이 천국처럼 보였다. 웹을 처음 접한 사람들은 웹이 불편하다고 느낄 틈이 없었다. 다음 날 아침에 지하철에서 스포츠신문을 사면서 어제의 경기결과를 알았던 사람들은 스포츠신문사 접속해 바로 결과를 볼 수 있는 웹의 매력에 푹 빠졌다. 홈페이지와 게시판을 찾아다니며 엽기 사진과 유머, 좋아하는 연예인 사진을 보느라 바빴다. 누가 게시판에 외국의 성인사이트 주소를 올리거나 광고를 올리면 꼬박꼬박 눌러서 찾아갔다. 결제는 하기 곤란하지만 대개의 성인사이트마다 몇 장의 맛보기(미리보기) 사진이나 짧은 맛보기 동영상을 제공했는데, 이런 맛보기 사진을 보면서 즐거워했다. 물론 마우스 오른쪽 단추를 눌러 저장해두었다가 CD로 구워 보물처럼 간직한 사람도 적지 않았다. 와레즈(WAREZ) 사이트를 이용하면 크랙된 게임을 비롯해 각종 게임과 MP3 파일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아웃룩과 익스플로러와 같은 브라우저 프로그램 사용법을 익힐수록 웹은 더욱 많은 즐거움을 제공했다. 즐겨찾기(bookmark, 책갈피) 기능을 알면서 일일이 주소창에 주소를 입력하는 귀찮음에서 벗어나는 즐거움을 느꼈고, 복사하기 붙여넣기 등의 각종 아이콘 기능을 하나씩 익힐 때마다 웹은 더욱 즐거운 곳으로 바뀌었다. 이 모든 즐거움을 56K 모뎀보다 수 십 배에서 수 백 배나 빠른 속도로 누릴 수 있었으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초기웹의 불편에 대한 변화의 욕구가 웹2.0이라는 변화를 만들었다.

하지만 2~3년에 걸쳐 학습이 대충 이루어지고 인터넷과 웹이 일상생활로 익숙해지자 그 동안 몰랐던 인터넷과 웹의 불편한 점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웃룩 익스프레스를 열면 수 백 통의 스팸이 쌓여있었다. 스팸을 지우다가 자기에게 온 편지까지 지우기 일쑤였다. 스팸을 필터링하려면 또 다시 복잡한 필터링 기법을 익혀야 하는데 또 다시 학습을 해가면서 스팸을 처리할 생각을 하니 짜증이 났다. 출장 간 지역에서 편지를 받아보지 못하는 것도 불편했다. 홈페이지를 갖고 자기 가족 사진을 올리고 싶었지만 HTML 문법과 FTP 사용법을 익혀야 하는 것도 문제였다. 제로보드 같은 게시판을 깔려면 별도의 웹호스팅을 신청하고 리눅스 명령어 등을 익혀야 했다. 수 없이 등록된 즐겨찾기에서 얼마 전에 찾아간 곳을 다시 찾아내는 것도 점차 힘든 일이 되어갔다. 마음에 드는 사진 하나 저장하기 위해 일일이 마우스 오른쪽 단추를 눌러가면서 저장하는 짓도 지겹고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검색엔진은 마음에 드는 것을 찾아주지 못했고, 기껏 링크를 눌러서 들어가면 엉뚱한 페이지가 나오기 일쑤였다.

사람들은 HTML 문서 중심의 초기 웹이 불편하다는 사실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래서 웹의 변화에 대한 욕구가 싹트기 시작했다. 언제 어디서나 편지를 받을 수 있고 스팸은 알아서 차단해주는 웹메일이 환영받기 시작했다. 일일이 방문하지 않고도 새로 올라온 글만 한 곳에서 모아서 볼 수 있는 RSS가 등장하고, 홈페이지 마법사를 거쳐 미니홈피와 블로그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미니홈피와 블로그는 로그인 후에 글쓰기만 하면 즉시 인터넷에서 볼 수 있는 문서로 발행되었다. 웹호스팅이며 리눅스 명령이며 tar 압축파일 해제법이나 FTP를 몰라도 된다. 라는 HTML 태그를 달지 않고 마우스로 쭉 긁은 다음에 편집기의 빨간색만 눌러주면 블로그 프로그램이 알아서 빨간색 글씨로 보여주었다. 보여주기만 하는 신문 사이트에 답답함을 느낀 사람들의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오마이뉴스와 같이 누구나 기자가 될 수 있는 사이트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기존의 폴더방식 분류에 답답함을 느낀 사람을 위해 꼬리표 기능이 등장했다. 플러그인을 귀찮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플러그인을 깔지 않고도 브라우저 만으로 모든 기능을 사용할 수 있는 지도 서비스와 웹워드프로세서가 등장했고, 웹에서 사진 앨범을 관리하고 인화해 집까지 배달해주는 서비스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웹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HTML 문서 위주의 초기 웹에 대한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했고 이런 불편은 웹의 변화에 대한 욕구로 이어졌다. 사람들은 더욱 편리하고 행복해지기를 원했다. 웹이 자신의 삶을 더욱 행복하게 만들어주기를 바란 것이다.


웹2.0은 "행복한 삶을 위한 초기웹의 변화에 대한 욕구의 실천과 관련된 제반현상"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느낀 불편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더 개선된 서비스를 요구했다. 그 결과 새로운 철학, 새로운 기술, 새로운 서비스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웹의 변화 욕구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과거의 인기 웹 사이트는 몰락하기 시작했다. 라이코스, 익사이트 등의 많은 사이트가 몰락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욕구에 적절하게 대응한 아마존과 이베이는 살아남았다. 새로운 욕구에 부응한 구글, 플릭커, 델리셔스와 같은 사이트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웹을 잘 모를 때는 웹 전체가 지상낙원처럼 보였고, 어떤 사이트도 다 멋진 사이트로 보였다. 이른바 닷컴거품이 생긴 것이다. 미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코스닥으로 대변되는 거품경기의 시대가 한 차례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웹에 익숙해지고 웹을 잘 알수록 웹의 불편한 점이 눈에 보였고, 그동안 멋지다고 생각했던 웹사이트의 문제점들이 점차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웹사이트와 IT기업의 옥석을 가리기 시작했다. 불편한 사이트와 발전 없은 IT기업이 도태되기 시작했고 사람들의 욕구를 계속 충족시킨 사이트와 기업만이 살아남았다. 이 과정이 닷컴붕괴 과정이었으며, 이 현상이 바로 웹2.0 현상인 것이다.

이런 이유로 나는 웹2.0(Web 2.0)에 대해 "행복한 삶을 위한 초기웹의 변화에 대한 욕구의 실천과 관련된 제반현상"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정의를 내린 것이다.

웹2.0 시대의 기회. 시맨틱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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