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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1, 1996

[차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브리태니커백과사전1999년 한국 - 모든 분야가 인터넷 기반으로 재편된 한 해
1999년 한 해 동안 컴퓨터와 정보통신업계는 지난 몇 년 동안의 변화보다 훨씬 많은 변화를 겪었다. 변화의 주역은 인터넷이며, 산업과 생활 모든 분야가 인터넷의 영향권에 들었다.
... 특히 4월에 하나로통신이 시내전화 시장에 진입해 ADSL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초고속인터넷 서비스 경쟁에 본격적인 불이 붙었다. 그 결과 5만 명에 불과하던 초고속 인터넷 사용자 수가 연말에는 60여만 명에 이르렀다. 국내 인터넷의 속도가 Kbps 시대를 마감하고 Mbps 시대로 훌쩍 건너뛴 것이다.

브리태니커백과사전1998년 한국 - 시련극복 속에 내실 성장을 이룬 1998년
1997년의 부도 여파가 진정되기도 전에 또 다시 IMF 체제를 맞이한 1998년의 컴퓨터 산업은 이익을 내기에 앞서 살아남는 것이 최우선 목표가 되었다.
... 1998년 컴퓨터 업계를 강타한 최대 사건은 한컴사의 '한글' 파동이다. 경영난을 이유로 마이크로소프트로사로부터 2천만 달러를 지원받는 대신 '한글' 프로그램 개발과 판매를 포기하겠다는 한컴사의 발표는 정부와 사회, 국민 전체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브리태니커백과사전1997년 한국 - 부도의 회오리 속에 해외진출의 가능성을 엿본 한 해
1997년 한국의 컴퓨터 업계는 부도로 시작하여 부도로 끝난 사상 최악의 한 해로 기록될 것이다. 한보그룹 부도로 시작한 국내 그룹의 연쇄 부도와 어려운 경제 사정은 컴퓨터 업계를 연말까지 부도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1월 29일 한국 IPC의 부도를 시작으로 아프로만, 세양정보통신, 멀티그램, 한국소프트정보통신, 큐닉스컴퓨터, 선인교역, 뉴텍컴퓨터 등 대형 업체들이 계속해서 쓰러졌다. 일 천 개가 넘는 중소업체가 함께 쓰러졌고 5,000억 원이 훨씬 넘는 피해를 냈다.

브리태니커백과사전1996년 스페셜리포트 - Deep Blue
1996년 2월에 세계 최고의 체스 선수인 개리 카스파로프(Garry Ksaparov)와 세계 최고의 체스 경기 컴퓨터인 "Deep Blue"는 6번의 체스 대국 중 첫 번째 판을 두었는데, 딥 블루가 그 첫 번째 경기에서 카스파로프를 이김으로써 전 세계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마침내 기계가 인간과 같은 지능 수준에 도달했다는 것일까?

브리태니커백과사전1996년 미국 - 웹의 확장과 회사간 합병 속에 크레이가 사망하다
1996년은 인터넷 월드 와이드 웹의 해였다. 1996년말에 이르러서는 심지어 비전문가인 일반 대중도 "넷"과 "웹"이란 단어를 스스럼없이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대중적 공감대가 확산되었다. 회사규모에 관계 없이 수 많은 회사들이 인쇄물과 TV광고에 자신들의 웹 사이트 주소를 넣기 시작했다. AT&T와 MCI 사와 같은 거대 전자통신기업들도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는 아메리카 온라인이나 컴퓨서브 또는 소규모의 수 백 개 기업과 경쟁하면서 자사의 고객들에게 인터넷 접속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브리태니커백과사전1996년 한국 - 가전제품이 된 PC와 압력단체로 부상한 PC통신인
사용자의 증가는 PC통신망을 새로운 압력단체로 부상시켰다. PC통신을 통해 밝혀진 룰라의 '천상유애'와 김민종의 '귀천도애' 표절 사건은 가수활동 중단으로 이어졌고 PC통신은 강력한 힘을 가진 새로운 매체로 떠올랐다. 영화광고는 PC통신인들의 소감을 실었고, PC통신을 이용한 방송 프로그램이 급속하게 증가했다. PC통신망의 게시판은 우스개와 소설의 새로운 창작 경연장이 되었으며 빠떼루 아저씨를 비롯하여 많은 대중스타를 배출하기도 했다.

브리태니커백과사전1995년 스페셜리포트 - 사이버스페이스(참아닌공간)
사이버스페이스란 낱말은 꿈과 현실 양 쪽에서 오늘날의 기술 역할에 관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현재의 통신수단을 지배하는 사회와 경제적 이론에 관해 새로운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사이버스페이스가 우리의 경제구조와 사회개발 그리고 자유시민으로서의 권리확보에 중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하나의 분야가 되었다는 사실에 의견의 일치를 보게 된 때는 1995년초다.

브리태니커백과사전1995년 미국 - 월드와이드 웹의 세력이 강화된 해
1995년에 컴퓨터 업계를 주도한 두 가지 흐름은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새로운 퍼스널 컴퓨터 운영체제인 윈도우즈 95의 출시와 인터네트 월드 와이드 웹의 세력 강화다.
윈도우즈와 인터네트 웹은 1995년 내내 엄청난 관심을 불러 일으켰으며 그 결과 95년 말에 이르러서는 텔레비전 리모트 컨트롤만큼이나 마우스란 컴퓨터제품도 전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잘 알게 되었다.

브리태니커백과사전1995년 한국 - 떠오르는 인터넷, 변화하는 유통체계, 변함 없는 한글 논쟁
매년 논쟁이 끊이지 않는 한글코드 문제는 마이크로소프트사 덕분에 연초부터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았다. 마이크로소프트사가 한글윈도95에서 조합형을 지원하기로 했던 약속을 저버리고 자사의 이익을 위해 완성형을 채택한 일이 문제였다. 사용자의 반발에 밀린 마이크로소프트사는 완성형을 수정한 확장완성형코드를 들고 나왔지만 한글 창제원리에 맞지 않는다는 기본적인 문제를 그대로 지녔기 때문에 사용자와 언론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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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한국-떠오르는 인터넷, 변화하는 유통체계, 변함 없는 한글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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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연감: 1995년 한국의 컴퓨터, 정보통신 분야 (글: 김중태)


김중태 사진한국의 컴퓨터업계와 정보통신업계도 인수와 합병, 인터넷의 열풍이 강타하면서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컴퓨터통신 쪽에서는 멀티미디어통신과 고속통신이 정착되었다. 2400bps의 통신속도가 순식간에 12배나 빠른 28800bps의 고속통신으로 바뀌었으며 글자로만 제공되던 정보는 사진, 소리, 동영상의 멀티미디어 요소를 통해서 제공되어 더욱 빠르고 쉽고 편한 컴퓨터통신 시대를 열었다.

멀티미디어통신은 인터네트의 열풍을 타고 더욱 확산되었다. 모든 언론매체가 인터네트에 대해 관심을 표명한 덕분에 인터네트는 보물창고처럼 인식되었고 21세기를 주도할 새로운 문화로 떠올랐다. 대학, 연구소, 기업이 모두 인터네트에 자신들의 홍보마당을 경쟁적으로 개설했으며 각 신문사는 인터네트를 통하여 신문기사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음란물 폭력물 등의 불건전정보와 너무 많은 정보양, 해커에 대한 대비, 통신의 보안문제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컴퓨터통신 뿐만 아니라 정보통신업계 전체가 큰 변화를 겪었다. 통신개방 압력이 증가하자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다양한 형태로 시도되었다. 3월 1일 본방송에 들어간 케이블TV와 5월 14일에 개국한 지역민방, 8월 5일에는 발사된 무궁화호위성, 45조원을 투입하기로 한 초고속정보통신망의 구축 시작, 최첨단 휴대전화기술로 알려진 코드분할 다중접속(CDMA)시스템의 개발과 상용화, 29개 통신사업자의 신규허가 발표, 주식매입을 통한 LG그룹의 데이콤 경영권 장악 등은 경쟁을 통하여 서비스를 개선하고 경쟁력을 길러 통신개방에 대비하겠다는 의도와 일치한다.

유통업계는 세진컴퓨터랜드의 돌풍이 강타했다. 대대적인 광고공세와 백화점식의 대형매장, 무상수리와 무상교육, 평생AS 등의 파격적인 영업전략을 기초로 하여 유통시장을 주도해나갔으나 결국 무리한 경영으로 인한 자금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대우통신에 인수됐다. 한편 삼성전자는 미국의 AST사를 인수했으며, 대기업들의 공격적인 영업 때문에 가격인하 바람이 회오리처럼 유통시장을 몰아쳤다. 또한 세진처럼 많은 기업들이 매수와 합병을 통해 자금압박을 해결하고자 했다. 한화통신과 옥소리사가 한솔그룹에 인수되었으며, 소프트타운이 해태전자에, 토피아는 두고전자에 인수되었다.

소비자가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변화 중 하나는 하드웨어 가격의 폭락이다. 일반적인 컴퓨터 주변기기와 부품은 일주일 단위로 급속하게 가격이 하락했으며, 80년대 말부터 요지부동이던 램 가격마저도 절반 가까이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덕분에 하드웨어 시장은 멀티미디어PC의 판매가 호조를 보이면서 고속 고용량화 시대에 박차를 가했다.

그러나 소프트웨어의 경우 주도제품이 없어 불황에 허덕여야 했다. 그나마 주목을 끌어오다 8월에 발표된 영문윈도95나 11월말부터 판매된 한글윈도95 모두 예상과 달리 소비자의 호응을 받지 못했다. 따라서 윈도95용 프로그램을 통해서 새로운 길을 모색해보려던 국내 소프트웨어업체의 의도도 차질을 빚게 되었다.

소프트웨어업계의 전반적인 불황은 크게 성장할 것이라 예측했던 씨디롬타이틀 시장마저 불황에 빠뜨렸다. 멀티미디어PC 판매에 힘입어 모든 PC에 씨디롬드라이브가 기본적으로 장착되기 시작했으나 씨디롬타이틀은 팔리지 않았다. 대부분은 번들로 제공되었을 뿐인데 제살 깎아먹기식 경쟁과 가격정책 표류가 가장 큰 이유였다. 연초에 창간된 여러 종류의 씨디롬잡지가 연말에는 [클릭] 한 종류만 남을 정도로 씨디롬 시장에 대한 기대는 처참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매년 논쟁이 끊이지 않는 한글코드 문제는 마이크로소프트사 덕분에 연초부터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았다. 마이크로소프트사가 한글윈도95에서 조합형을 지원하기로 했던 약속을 저버리고 자사의 이익을 위해 완성형을 채택한 일이 문제였다. 사용자의 반발에 밀린 마이크로소프트사는 완성형을 수정한 확장완성형코드를 들고 나왔지만 한글 창제원리에 맞지 않는다는 기본적인 문제를 그대로 지녔기 때문에 사용자와 언론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마이크로소프트사는 거대기업의 힘을 내세워 확장완성형을 밀어붙였고 이는 미국의 대기업과 한국사용자의 힘겨루기 양상으로 확대되었다. 결국 한글윈도95의 제품발표장에서 불매시위가 벌어지는 상황으로 치달았으며 윈도95의 판매부진에도 영향을 끼쳤다. 비록 12월7일 공업진흥청이 세계 공용인 유니코드를 새로운 표준코드인 'KSC 5700'으로 채택했으나 이 역시 완성형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코드논쟁은 여전히 불씨를 안고 해를 넘기게 되었다.

1995년 미국 - 월드와이드 웹의 세력이 강화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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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연감: 1995년 미국의 정보통신 분야 (옮김: 김중태)


1995년에 컴퓨터 업계를 주도한 두 가지 흐름은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새로운 퍼스널 컴퓨터 운영체제인 윈도우즈 95의 출시와 인터네트 월드 와이드 웹의 세력 강화다.


윈도우즈와 인터네트 웹은 1995년 내내 엄청난 관심을 불러 일으켰으며 그 결과 95년 말에 이르러서는 텔레비전 리모트 컨트롤만큼이나 마우스란 컴퓨터제품도 전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잘 알게 되었다. 1995년을 주도한 이 흐름은 컴퓨터 마우스가 가까운 장래에 리모트 컨트롤처럼 사용될 것이라고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즉, 컴퓨터 마우스는 사용자가 어디에 있든 영화 프로그램을 주문해 불러올 수 있으며 뉴스 기사를 읽고 친구나 친척에게서 온 전자우편을 보는데 사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더구나 지난 3월 슈퍼컴퓨터 제작회사였던 크레이사가 파산을 하면서 개인용 컴퓨터 업계의 우세가 확실해졌다.


약 3억 달러에 이르는 범세계적 홍보와 더불어 8월 24일 전세계에 동시에 발표된 윈도우즈95는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즈 운영체제에 중대한 변혁을 이루었다. 윈도우즈95는 흔히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 또는 GUI라고 알려진 "놓고 누르기" 형식의 운영체제에 대부분의 개인용 컴퓨터에서 사용해온 텍스트를 기반으로 하는 디스크 운영체제 즉, 도스를 덧붙인 것이다.


그래픽 환경의 월드 와이드 웹은 1990년대 초 한 학술 컴퓨터 연구실에서부터 발전하기 시작했다. 월드 와이드 웹은 원래 제네바에 본부를 둔 유럽미립자물리연구소인 CERN이 개발한 소프트웨어로 범세계적 네트워크인 인터네트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그래픽 환경에서 작업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물론 여기서 의미하는 그래픽 환경은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윈도우즈나 애플사의 Mac OS가 사용하는 그래픽 환경과 같은 종류의 것이다. 웹이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인터네트는 일반 대중보다는 과학계, 학계, 업계 또는 정부 기관의 전문가들만 주로 사용했다.


올해 분명하게 그 모습을 드러낸 윈도우즈95와 웹은 산업분석가들이 "집중현상"이라고 부르는 도로를 안내하는 이정표가 되었다. 집중현상이란 단어는 간단한 텍스트에서 동영상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형태의 정보를 디지털 데이터로 통합할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데 이 디지털 데이터는 그래픽 환경의 컴퓨터로 처리, 저장되고 가공된다.


95년 말에 이르러 Mac OS와 윈도우즈95에 의해서 주도된 개인용 컴퓨터의 운영체제는 텍스트와 그림 정보뿐만이 아니라 오디오와 비디오 정보를 동시에 다룰 수 있는 이용이 편리한 도구로 진화할 것임이 분명해졌다. 또 모든 디지털 정보를 교환하는 미래의 매체는 월드 와이드 웹이 될 것이 확실해졌다. 즉, 전자우편으로 배달되는 식료품 리스트에서 할리우드 영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디지털 정보가 웹을 통해 교환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예측은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1995년의 결합현상에 합류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사도 이들 기업 중 하나였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사는 서른 두 권에 이르는 자사의 백과사전 전문 뿐만이 아니라 새로 나온 씨디롬판도 웹을 통해 등록회원들에게 제공하기 시작했다.


컴퓨터 네트워크의 거대기업인 오라클 시스템스와 노벨과 같은 거대 컴퓨터 네트워크 회사들도 그들의 네트워크를 바꾸기 시작했다. 바꾸는 목적은 동일한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기 위해서이며 디지털 영화와 같은 것이 일반 가정에서도 가능하도록 하는 통신 프로토콜을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이들 기업과 관련을 맺고 있는 기업들뿐만이 아니라 이들 기업의 경영자와 과학자들은 전송제어프로토콜/인터네트 프로토콜(TCP/IP)이라고 알려진 인터네트 개발 규약 하에서 작동하는 시스템으로 그들의 업무용 컴퓨터를 바꿔왔다. TCP/IP는 컴퓨터 네트워크를 통한 집중현상을 실현시키는데 필수적인 기술이다.


TCP/IP는 장거리 통신 라인을 통해 컴퓨터간을 이동하는 모든 형태의 데이터를 조그만 패킷으로 변환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이렇게 데이터를 패킷으로 나누는 이유는 특정 시간에 이용할 수 있는 통신 라인에 무관하게 데이터를 빠르게 전송하기 위해서이다. 예를 들어, 컴퓨터 파일의 한 부분인 어떤 패킷은 뉴욕에서 런던으로 해저 케이블로 전송이 되며 이 파일의 다른 조각인 또 다른 패킷은 초단파의 형태로 로스앤젤레스와 싱가폴, 파리를 거쳐 런던으로 전송된다. 패킷의 전송 경로는 이처럼 특정 통신라인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인터네트 상의 트래픽 현황에 따라 비교적 정체가 되지 않는 라인을 찾아 전송된다. 결국, TCP/IP란 지리적 거리에 관계 없이 컴퓨터간의 통신을 가능하게 해준다.


이러한 힘을 얻기 위해 오라클사와 같은 기업은 그들의 고객들을 위해 TCP/IP 네트워크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고객들은 이 네트워크를 이용해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자사의 컴퓨터 데이터베이스를 쉽게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연결은 기업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자사의 제품 지원 업무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해준다. 또 멀리 있는 고객이 자사의 데이터 뱅크를 뒤져 특정 제품의 재고 현황을 파악해 온라인 상에서 주문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시스템의 구축을 가능하게 한다. 이외에도 이러한 연결은 기업으로 하여금 효율성을 제고시키는데 많은 역할을 한다. 오라클사의 경영자들은 TCP/IP 네트워크의 구축이 사내 통신, 훈련 교재의 출판, 재고 현황 파악 및 휴가 계획과 같은 사내 업무에도 활용할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한편, 인터네트 컴퓨터가 기업의 전통적인 영업 환경에 널리 퍼진 것과 더불어 1995년은 1994년부터 시작된 한 흐름을 가속화시킨 해였다. 그 흐름이란 타임 워너와 월트 디즈니사와 같은 세계 유수의 매체 기업들이 컴퓨터나 통신 업계의 기업과 계획적인 제휴 및 완전한 기업 합병을 하기 시작한 것을 의미한다. 합병은 보통 특정 부분에 각각 장점을 가진 두 세력이 힘을 합쳐야겠다는 필요성에 의해 이루어지는 결합현상의 한 예이다. 이런 합병의 결과 합병 기업은 본래부터 그들이 가지고 있던 세계의 정보, 교육, 오락에 관한 내용을 컴퓨터 형식의 디지털로 변환시켜 유통 채널을 통해 그것을 팔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물론 이 유통 채널은 웹이나 개인용 컴퓨터에서 사용하는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 형식에 맞게 설계되어 있는 채널이다.


1995년에 이루어진 합병 중 제일 규모가 큰 것은 190억 달러에 달하는 월트 디즈니사와 캐피탈 시티스/ABC 사의 합병이다. 이 합병은 텔레비전 네트워크, 텔레비전 방송국, 케이블 TV, 신문사, 라디오 방송국을 가진 캐피탈 시티스사와 그 회사의 방송국과 케이블 네트워크를 통해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유통시켰던 월트 디즈니사와 이루어진 것이다.


디즈니-캐피탈 시티스 간의 합병 발표가 있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타임 워너사는 "매체의 제왕"이라고 부르는 테드 터너가 소유하고 있는 터너 방송 시스템 사를 흡수한다고 발표했다. 타임 워너사는 세계 최대의 잡지 출판사와 세계 최대의 영화 및 TV 프로그램 제작, 배포 회사인 워너 브라더스사를 합병했다. 자회사로는 음반제작 및 서적 출판사인 리틀 브라운 사와 가장 규모가 큰 케이블 TV 영화제작사인 홈 박스 오피스사 등이 있다. 이외에도 타임워너사는 1995년 말 기준으로 거의 천오백만 가구가 가입한 케이블TV 시스템을 소유하고 있다. 터너 방송사는 세계 최대의 뉴스 매체인 CNN 방송국 이외에도 미국에서만 네 개의 케이블 TV 오락 네트워크를 갖고 있고 그 외에도 라틴 아메리카와 아시아 그리고 유럽에서 네 개의 케이블 TV 네트워크를 더 갖고 있다.


터너는 그 이전에도 세계 최대의 개인용 컴퓨터 마이크로프로세서 제작사인 인텔사와 전략적 제휴 관계를 맺고 있었다. 전략적 제휴의 내용은 자사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인텔사가 설계한 TV 회로 보드가 내장된 데스크탑 컴퓨터에 제공한다는 것이다. 11월에 인텔사는 자사의 새로운 칩인 펜티엄 프로를 내장한 모든 개인용 컴퓨터는 디지털 TV의 기능을 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합병광들은 매체업의 거대기업들로부터 더욱 전통적인 컴퓨터 업계로 그들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전통적인 컴퓨터 업계는 극적으로 업계의 판도를 바꿔놓을 수 있는 인수, 합병, 합동의 파고를 보았다. 윈도우즈95와 새롭게 발표되고 있는 매킨토시 호환 컴퓨터의 점증하는 위협에 직면하고 있는 애플 컴퓨터사는 부품 조달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어 합병된다는 루머에 시달리고 있다.


현재까지 컴퓨터 업계의 합병 중에서 가장 큰 규모의 것은 IBM에 의한 로터스 디벨럽먼트사의 35억불에 이르는 흡수 합병이었다. 대부분의 분석가들은 이 합병을 세계 최대의 컴퓨터 회사인 IBM이 매체 기업과 연결하기 위한 전략으로 보고 있다.


로터스의 주요 자산은 로터스 노우츠라고 부르는 인터네트용 컴퓨터 네트워킹 패키지이다. 이 패키지는 기업이 디지털 데이터를 다양한 형태의 컴퓨터 - IBM의 대형 메인프레임, IBM의 AS/400이나 RS/600 라인의 업무용 중형 컴퓨터, 윈도우즈나 Mac OS 그리고 IBM의 경쟁제품인 OS/2와 같이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 형태의 운영체제를 사용하는 개인용 컴퓨터, 마지막으로 업무 및 학술용으로 주로 사용되는 유닉스 시스템 등 - 로 전송할 수 있도록 해준다. 다양한 형태의 컴퓨터 플랫폼에서 작업을 가능하게 하고 디지털 정보를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로터스 노우츠를 얻음으로써 IBM은 세계의 개인용 컴퓨터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에 대적할 수 있게 되기를 원했다.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이유는 윈도우즈라는 운영체제와 케이블 텔레비전 프로그램, 주문형 영화를 월드 와이드 웹을 통해 연결된 다른 컴퓨터로 전송할 수 있는 서버로 데스크탑 컴퓨터를 사용하기 위한 몇 가지 프로젝트에서 나오고 있다.


포츈지 선정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데이터베이스를 실행시킬 수 있는 거대한 업무용 네트워크의 구축에 심혈을 기울여 온 오라클사는 그 네트워크를 영화나 텔레비전 프로그램과 같은 디지털 데이터의 서버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일련의 계획을 추진했다. 그 결과 매체 합병기업들은 이 네트워크를 이용해 기술개발과 마케팅을 추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엄청난 정체현상을 빚고 있는 전화선이 아닌 보다 데이터 전송 속도가 향상된 라인에 컴퓨터가 연결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처럼 빠른 전송속도가 구현될 수 있는 날이 그리 멀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의하고 있다. 그 이유는 영화전송에 요구되는 속도를 낼 수 있는 기술은 이미 케이블 텔레비전 시스템에 사용된 와이어와 전화회사들이 미국 전역에 설치한 광섬유로 구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실 올 해 이루어진 합병의 대부분은 이처럼 고대역폭(high-bandwidth)의 전송 설비를 보유한 기업(타임 워너사와 캐피탈 시티스사 등)이 정보제공회사들과 힘을 합치는 과정에서 일어난 것들이었다.


현재 개발되고 있는 디지털 통신 네트워크를 관리하는데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생산해 온 기업들도 이와 같은 변화의 물결에서 현실적인 실익을 얻었다. 이중 가장 눈에 띄게 이익을 본 회사로는 네트스케이프 커뮤니케이션스사와 스파이그라스사다. 이 두 회사는 서로 경쟁관계에 있는 회사로 두 회사 모두 월드 와이드 웹을 통해 디지털 데이터를 이용하는데 필요한 웹 서버와 웹 브라우져라고 부르는 소프트웨어를 제작하고 있다.


1995년 초에 마이크로소프트사는 스파이그라스사의 웹 브라우저인 모자이크를 면허받아 이름을 "마이크로소프트 인터네트 익스플로러"로 바꾸고 자사의 온라인 서비스망인 "마이크로소프트 네트워크"의 중심에 위치시켰다. 그런데 미국의 3대 상업 통신망인 아메리카 온라인과 컴퓨서브 그리고 프로디지사는 이러한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영업 방식이 불공정한 독점행위라고 비난하고 있다. 그 이유는 마이크로소프트 네트워크에 접속하기 위한 소프트웨어가 윈도우즈 95라는 운영체제에 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네트스케이프사는 마이크로소프트사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지키고 있다. 한 조사결과 월드 와이드 웹을 이용하는 사람들 중 80% 이상이 네트스케이프사의 브라우저인 "네트스케이프 내비게이터"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네트스케이프사는 1995년 여름에 자사의 주식을 일반인에게 팔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주식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화제가 되었으며 1995년 컴퓨터 산업 발전의 폭발적 가능성을 강조하는 하나의 예가 되었다. 20불 이하로 거래되던 네트스케이프사의 주식은 상장 몇 시간만에 80불로 뛰어 오르는 광란의 장세를 연출했다. 회사 창립 이래 2천만불 이하의 수익을 올리는데 불과했던 네트스케이프사는 상장 첫날 주식시장이 마감하면서 20억불 이상의 시장가치를 갖게 되었다. 올 해 말 Maytag사가 거둔 것 보다 더 큰 시장가치를 하루 밤새 갖게 된 네트스케이프사의 성공과 스파이그라스가 자사 주식의 네 배를 보상하기 위해 주식 분할을 발표한 사실 등은 1995년의 매체 기업 환경을 지배한 정보고속도로에 힘입은 바 크다고 USA Today지의 편집자는 흥분해서 발표했다.


(번역에 도움을 준 선배에게 감사드립니다.)

1995년 스페셜리포트. 사이버스페이스(참아닌공간)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연감: 1995년 컴퓨터와 정보통신 분야 스페셜리포트 (옮김: 김중태)


'오즈의 땅'이란 말이 소설가가 만들어낸 말인 것과 마찬가지로 '사이버스페이스(참아닌공간)'란 말도 공상과학 소설가인 윌리암 깁슨이 만들어낸 낱말이다. 그러나 '오즈'란 낱말이 세상에 별다른 반향을 불러 일으키지 못한 반면에 참아닌공간이란 낱말은 대중들의 관심을 끌어모았고 논쟁의 주제가 되기에 이르렀다. 사이버스페이스란 낱말은 꿈과 현실 양 쪽에서 오늘날의 기술 역할에 관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현재의 통신수단을 지배하는 사회와 경제적 이론에 관해 새로운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사이버스페이스가 우리의 경제구조와 사회개발 그리고 자유시민으로서의 권리확보에 중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하나의 분야가 되었다는 사실에 의견의 일치를 보게 된 때는 1995년초다.

깁슨의 소설 뉴로맨서(1984)와 그 후에 발표된 몇 편의 소설에서 설명된 것처럼 사이버스페이스는 컴퓨터가 창조해낸 인공환경을 말한다. 움직이는 영상을 평면적으로 표현해내는 영화와 달리 참아닌공간의 환경은 실제의 세부적인 사항들을 삼차원과 오감으로 전달한다. 그것은 또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 실제로 마주보고 앉아 대화하는 것과 같은 환경을 만들어낸다. 한 예로, 깁슨의 한 소설에서는 어떤 여성이 스페인의 바로셀로나에 있는 성당 외곽에서 한 신비한 금융업자를 만난다. 그러나 실제로 그녀는 브뤼셀의 사무실에 홀로 앉아 있다. 실제로 이런 류의 참아닌공간적 경험을 현실화시키려는 노력 즉, 가상현실에 대한 연구가 행해져왔다. 비록 깁슨이 상상했던 만큼의 완벽한 참아닌공간적 체험은 미숙한 기술과 가상현실 기계가 일으키는 부작용(가상현실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겪게 되는 배멀미와 비슷한 육체적 혼란) 때문에 때로는 좌절을 겪기도 했으나 1994년에는 마침내 가상현실 기계가 오락실과 쇼핑몰에 출현하기 시작했다. 더구나 가상현실 장비의 사용자들은 타인과 통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하고만 통신을 하고 있다.

실제로 존재하는 현실로서의 참아닌공간은 전화선으로 연결된 컴퓨터 네트워크와 관련이 깊다. 이들 네트워크 중 가장 크고 가장 잘 알려진 인터네트는 1970년대에 미국 국방성과 학술연구를 돕기 위해 개발되었으나 1990년 초까지도 인터네트는 일반 대중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1994년 말에 이르러서 이 네트워크는 국방기관의 직원이나 대학의 교직원이 아닌 수 백만 명 이상의 일반 대중 사용자를 흡수했다. 1994년에는 적어도 이천 만 명에 달하는 인터네트 사용자들이 정보를 교환했으며 이들이 교환한 정보의 양은 월 300기가바이트를 초과했다. 이 양을 쉽게 설명하면 250쪽 짜리 책 50만 권에 해당하는 분량이다. 그 결과 인터네트 사용자와 컴퓨터 네트워크에 경험이 없는 수 백만 명의 사람들이 인터네트와 참아닌공간을 같은 의미로 인식하게 되었다.

인터네트는 혼합 매체이다. 즉, 인쇄, 전화, 게시판, 사적인 편지와 같은 매체를 혼합해 놓은 복합 매체이다. 또, 어설프지만 인터네트는 전통적인 방송에 필요한 물리적 설비 없이도 라디오와 텔레비젼 송출을 가능케 한다. 실제로 어떤 비평가들은 인터네트와 그 뒤를 이은 네트워크망이 텔레비젼과 전화 그리고 전통적인 인쇄 기능을 흡수할 것이라고 예측해왔다. 그들은 미국 부통령인 알 고어 2세가 만들어낸 신조어인 '초고속 정보고속도로'를 통합적인 쌍방향 전자통신 시스템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다. 그런데 이 시스템이 가정과 학교 그리고 사무실에 엄청난 양의 정보 서비스를 가능케 한다는 전망 때문에 전화 사업자와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밍 사업자, 연예 오락 업계들이 서로 전략적 제휴를 하기에 이르렀다. 1995년에 이르러 업계는 비상업적 인터네트를 엄청난 성장잠재력을 갖고 있는 미개발의 대륙인 중국과 동일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떤 비평가들은 사이버스페이스가 내포하고 있는 사회적 의미가 사이버스페이스의 상업적 의미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수동적이고 고립된 상황에 있는 시청자들에게 일방적으로 정보를 보내는 텔레비젼과는 달리 인터네트는 사용자들이 내용을 제공하고 공유하며 또 그것을 퍼뜨림으로써 유지된다. 자원의 공유와 상호협력은 성공한 사회집단의 오랜 특징이므로 인터네트 옹호론자들은 인터네트를 텔레비젼에 의해 약화된 사회구조를 치료할 수 있는 매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또 사이버스페이스가 국경과 지역적 경계라는 방해물 없이 '참아닌사회'의 형성을 촉진시킬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들은 인터네트를 자유언론의 르네상스가 시작되는 징후로 본다. 또 인터네트는 모든 사람들이 출판업자가 될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하기 때문에 참아닌공간이야말로 전통적인 신문사와 방송국의 통제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와 비슷한 낙관적 예측은 전화, 라디오 그리고 텔레비젼을 포함한 모든 전자매체가 출현할 때마다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유토피아가 실현될 것이라는 예측은 반대 의견보다도 정확하지 않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전자매체에 관한 예측 중에서 가장 먼저 나왔으면서도 가장 잘 미래를 예견한 예측 중의 하나는 도스토에프스키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란 소설(1879-80)에서 발표한 것이다. 그는 이 소설에서 '물리적 거리가 단축되고 공기를 통해 생각을 전달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세계는 더욱 더 통합될 것이며 가까와질 것이라고 우리는 믿는다.'라고 썼다. 그러나 그는 소설가의 관점에서 이들 전송장비가 '의미 없으면서도 어리석은 욕망'만을 자극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도스토에프스키의 이 소설은 사이버스페이스의 첫번째 도구로 간주되는 전화에 관한 특허권을 알렉산더 그래함 벨이 획득한지 4년 만에 출판되었다.

최근의 비평가들은 전자매체가 진실한 지구촌을 건설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며 오히려 빈부의 격차를 심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한다. 사용자들은 자신들만의 독점적인 공간(cyburbia)에 상주하는 사람들과의 한정된 사귐을 위해 텔레비젼 수상기를 멀리할 수도 있다. 또 다른 비평가들은 컴퓨터 네트워크를 통해서 시민권과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잠재적 위험이 매우 크다는 것을 경고하고 있다. 사이버스페이스를 통한 사회, 경제적 거래가 늘면 늘수록 시민들의 소비습관과 개인적 관심사항 그리고 정치적 신념을 추적하는 일은 더욱 쉬워진다. 전자개척자재단(Electronic Frontier Foundation)과 같은 네트워크 지지집단도 사이버스페이스에서의 프라이버시 확보를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인터네트에서 프라이버시 침해를 막기위해 클리퍼 칩(Clipper Chip)이란 장비를 제안해왔다. 이 클리퍼 칩은 인터네트 상에서 메시지를 암호화하고 해독해내는 표준 장비로 인정되고 있다. 그러나 비평가들은 클리퍼 칩이 정부만이 열 수 있는 '뒷문(백도어)'을 가지고 있어 정부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사적 메시지를 해독하고 가로챌 수 있다는 점을 발견해냈다.

이외에도 기존의 법률이 공개된 공간으로서의 사이버스페이스에 어떤 효력을 미칠 수 있는가에 관한 심각한 논쟁이 일고 있다. 미시간 대학의 한 학생은 인터네트에 그의 동료 이름으로 폭력적인 내용의 서류를 올린 것 때문에 1995년에 FBI에 체포되었다. 체포 이유는 미국의 주와 주를 서로 연결해 놓은 주간(interstate) 통신수단을 타인에 대한 유괴와 명예훼손에 사용한 혐의였다. 그러나 고소당한 학생의 저작물이 실제적인 해를 끼치는 위협 요건을 법적으로 구성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결국 그 고소는 취하되었다. 비평가들은 이 사건을 인터네트보다 사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다른 매체를 위해 만든 법을 억지로 인터네트란 매체에 적용하려 했던 사건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외에도 1995년에는 인터네트의 전체 메시지 중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불과 0.5 퍼센트 밖에는 되지 않지만 어린 인터네트 사용자들에게 무차별적으로 뿌려지고 있는 음란물의 홍수 현상에 대해 정치가들과 저널리스트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어떤 미국의 의원들은 음란물을 유통시키는 컴퓨터 네트워크에 대해 좀더 강력한 검열을 할 수 있는 새로운 법안을 제안하였다. 그러나 비평가들은 이 법안이 범법행위를 모의하기 위해 전화선이 사용될 수 있다는 가정하에 전화회사는 자신의 선로를 도청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똑 같은 논리로 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아마도 모든 법률적인 논쟁 중에서도 가장 첨예한 것은 저작권에 관한 것이 아닐까 싶다. 저작권이란 타인의 원작을 허가받지 않고 복제하는 것을 금지하는 권리를 말한다. 그러나 인터네트 상에서는 단순히 특정 서류를 보는 행위만으로도 서류가 사용자의 스크린에 완전히 복사되는 것이므로 저작권을 위배하는 것이다. 만약 그 서류가 플로피 디스크와 같은 저장장치로 복사된다면 사용자는 그 서류를 고치거나 원작자의 작품과 쉽게 구별할 수 없게끔 그 서류를 재가공할 수 있다. 어떤 작가와 예술가들은 이런 현상을 오히려 환영하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집단적 창조를 위한 새로운 자극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그러나 지적재산권의 수호자들에게는 전대미문의 엄청난 문제이다. 어떤 이들은 인쇄가 발명된 후부터 존재해왔던 저작권이란 개념 자체가 사이버스페이스의 출현으로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사이버스페이스의 가장 미묘한 측면은 사이버 스페이스가 재산권에 미치는 영향이 아니라 인류와 기술의 관계에 미치는 영향이다. 컴퓨터가 꾸며내는 세계와 전자적으로 도움을 받는 가상체험이라는 윌리암 깁슨의 사이버스페이스 개념의 뿌리에는 기계와 인간의 만남이 거의 유기체적 수준에서 이루어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포하고 있다. 어떤 비평가들은 다가오는 '생물전자학적 근사현상(bionic convergence)'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 현상을 통해 우리 모두는 언젠가 컴퓨터관을 우리 몸에 이식해 우리의 뇌에서 들어오고 나가는 메시지를 직접 분리할 수 있을 것이며 전자적으로 창조성을 고양시키고 기쁨에 대한 반응력을 자극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될 것이다. 매체 이론가인 마샬 맥루한의 경구를 인용해 말한다면 이 정도의 참아닌공간적 경험 수준에 도달하면 '인류는 기계세상의 섹스기관이 될 것이다'. 우리가 그런 상태에 만족을 하든 하지 않든 그것이 우리의 현실이 되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제는 실현될 날만이 남은 것이다.

----- 본문내용 끝.


** 옮긴이 설명: 사이버스페이스를 흔히 가상공간이라고 하나 이는 정확한 번역이 아니다. 버츄얼리얼리티가 가상현실로 번역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버츄얼스페이스(예를 들면 가상현실게임에서 주인공이 움직이고 있는 공간)가 가상공간이다. 사이버스페이스는 3차원 시뮬레이션을 이용해서 만들어낸 공간이 아니고, 현실과 결합되어 실제적인 의사결정과 행동이 이루어지고 물류이동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쉽게 말하면 인터네트나 하이텔 등의 통신망에 만들어진 통신사회를 말한다. 따라서 거짓공간이라고 말할 수도 없고, 가상(가짜 영상)으로 꾸며진 공간도 아니고, 참된 현실공간도 아니다. 따라서 '참아닌공간'이라는 낱말로 번역해야 한다.

** 번역에 도움을 준 선배에게 감사드립니다.

January 1, 1997

1996년 한국 - 가전제품이 된 PC와 압력단체로 부상한 PC통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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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연감: 1996년 한국의 컴퓨터, 정보통신 분야 (글: 김중태)


김중태 사진486컴퓨터의 단종으로 시작한 1996년의 PC시장은 연말에 펜티엄프로 시장으로 변화했으나 컴퓨터시장의 세계적인 불황과 한국 경제의 침체로 인한 불황의 늪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이 와중에 삼성전자는 업계 최초로 PC부문 매출 1조 원을 돌파하면서 시장점유율이 늘어난 유일한 업체가 되었는데, 본격적으로 형성된 노트북시장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또 이런 국산노트북의 활약에 힘입어 저가의 대만산 노트북컴퓨터는 시장에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네트워크컴퓨터(NC)와 휴대형PC(HPC), PDA, TTS 등의 음성인식 기술을 이용한 PC, 3D 그래픽카드 등의 신제품이 시장에 출시되었으나 사람들은 신기술보다 속도 향상과 용량 증대에 더 힘을 쏟았다. 좀더 빠른 인터넷에 대한 욕구는 33600bps급의 모뎀이 등장하자마자 28800bps급 모뎀을 순식간에 몰아냈으며, 씨디롬드라이브는 4배속에서 6배, 8배, 10배, 12배속을 거쳐 16배속 제품까지 출시되었다. 하드디스크는 2~3기가바이트급이 팔려나갔고, 300만대나 판매된 ZIP드라이브와 JAZZ 드라이브는 플로피디스크 드라이브를 대체할 고용량 저장매체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반면 1996년 초부터 출시되어 씨디롬을 대체할 것이라는 DVD의 시장진입은 1996년에도 실패했다. 연말이 되었을 때 DVD가 출시되었으나 사람들은 오히려 씨디롬드라이브의 속도경쟁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고, 8배속이나 10배속에서 씨디롬드라이브 생산을 중지하려던 국내 업체들은 16배속까지 만들어냈다.

가장 큰 변화는 램에서 일어났다. 근 십 년 가까이 메가당 3~4만원을 유지하던 램 가격이 무려 십분의 일 가격으로 폭락하면서 16메가 램이 5만원대에 팔렸고, 소비자는 PC가 판매된 이후 처음으로 부담감 없이 메모리를 확장할 수 있었다.

하드웨어의 뜀박질에 비해 소프트웨어 쪽은 여전히 조용했다. 연초에 웹브라우저 시장에서 MS사의 익스플로러와 네트스케이프사의 네트스케이프가 치열한 경쟁을 벌이면서 프로그램을 무료로 공급했으나 3.0판 이후부터는 소강상태에 빠졌다. 단지 한글윈도우95가 컴퓨터 출하시에 기본적으로 탑재되어 팔려나갔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핸디소프트가 일본에 1천만달러 상당의 소프트웨어 수출계약을 체결한 일과 정부의 국산소프트웨어 지원책으로 인하여 정부의 국산 소프트웨어 구매규모가 종전보다 3배 이상 늘어나게 된 일은 침체된 소프트웨어 산업의 활력소가 되었다.

일반적인 소프트웨어의 침체와는 달리 대기업, 언론사, 기관, 대형출판사 등의 대형업체들이 참여한 씨디롬타이틀 시장은 양적인 면과 질적인 면에서 눈에 뜨일 정도로 성장했으나 대부분 교육용에만 치우쳤다는 아쉬움을 남겼다. 또한 시장은 크게 팽창했으나 경쟁이 치열해져 소비자 판매가격과 대리점 공급가격의 차이가 거의 없을 정도로 시장이 혼탁해졌다. 결국 매출만 늘고 이익이 줄어드는 바람에 씨디롬 관련 업체 대부분이 채산성이 더욱 나빠진 우울한 한 해를 보내야 했다.

1995년에 열병처럼 번지던 기업간의 입수나 합병은 거의 없었으나 11월에 설립된 LG-IBM사는 세계적인 업체와의 합작이라는 점에서 업계를 긴장시켰다. 이에 경쟁사인 삼성전자와 삼보컴퓨터는 이전의 경쟁사인 세진컴퓨터에 자사의 제품을 공급하는 전략으로 LG-IBM을 견제하기 시작했다.

전반적인 불황 속에서도 정보통신 쪽만은 크게 성장했다. 1996년에 모든 언론은 인터넷과 PC통신으로 지면을 채웠고, 기업들 역시 인터넷과 인트라넷에 관심을 보였다. 인터넷 이용자는 1995년말의 2배인 75만 여명이 되었고, 사용기관은 3배 이상 늘어난 2천 4백여 곳이 되었다. 도메인 개설 건수는 7만 개에 달했고, 2차 인터넷서비스제공업체(ISP)를 비롯한 ISP의 수가 늘면서 인터넷 사용요금의 인하 경쟁이 불붙었다.

또한 1996년 1월부터 영업을 시작한 삼성데이타시스템의 유니텔을 포함한 4대 PC통신사의 사용자도 170여만명으로 급속하게 늘어났다. 덕분에 10년 동안 적자에 허덕이던 PC통신사들은 처음으로 흑자로 돌아섰다.

사용자의 증가는 PC통신망을 새로운 압력단체로 부상시켰다. PC통신을 통해 밝혀진 룰라의 '천상유애'와 김민종의 '귀천도애' 표절 사건은 가수활동 중단으로 이어졌고 PC통신은 강력한 힘을 가진 새로운 매체로 떠올랐다. 영화광고는 PC통신인들의 소감을 실었고, PC통신을 이용한 방송 프로그램이 급속하게 증가했다. PC통신망의 게시판은 우스개와 소설의 새로운 창작 경연장이 되었으며 빠떼루 아저씨를 비롯하여 많은 대중스타를 배출하기도 했다. MS사의 씨디롬에서 독도를 일본 영토로 표시한 사건을 비롯하여 여러 사회현상과 사건이 PC통신을 통해서 토론되거나 제보되었고, 언론은 이를 적극 활용했다. 그러나 사용자의 증가로 인한 회선 부족, 속도 느려짐, 불안정성이 커지면서 사용자들의 불만 역시 점점 커지고 있다.

2조 6천 억원에 달하는 PC시장은 주요 가전제품을 합친 내수시장의 70%를 차지할 정도였고, 혼수품에 PC가 들어갈 정도로 PC는 가전제품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그러나 1996년에 가장 성공한 쪽은 PC판매가 아니라 인터넷과 PC통신이었다.

1996년 미국 - 웹의 확장과 회사간 합병 속에 크레이가 사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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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연감: 1996년 미국의 컴퓨터, 정보통신 분야 (옮김: 김중태)


The Internet.

It was the year of the Internet's World Wide Web, which by the end of 1996 had so permeated the public's consciousness that even nontechnical adults were likely to speak of the "Net" and the "Web." Companies large and small began including a Web-site address in their print advertising and television commercials. Big telecommunications firms such as AT&T and MCI Communications Corp. began offering their customers Internet access services, competing with America Online, Inc., CompuServe Inc., and hundreds of smaller firms that already did so.

1996년은 인터넷 월드 와이드 웹의 해였다. 1996년말에 이르러서는 심지어 비전문가인 일반 대중도 "넷"과 "웹"이란 단어를 스스럼없이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대중적 공감대가 확산되었다. 회사규모에 관계 없이 수 많은 회사들이 인쇄물과 TV광고에 자신들의 웹 사이트 주소를 넣기 시작했다. AT&T와 MCI 사와 같은 거대 전자통신기업들도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는 아메리카 온라인이나 컴퓨서브 또는 소규모의 수 백 개 기업과 경쟁하면서 자사의 고객들에게 인터넷 접속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Meanwhile, Internet access was no longer limited to computers. New smart telephones were able to send Internet E-mail messages, and televisions equipped with special set-top boxes were able to provide access to the Web.

한편, 컴퓨터로만 가능했던 인터넷 접속방식도 다양해졌다. 새로운 스마트 전화기를 이용하면 인터넷으로 전자우편을 보낼 수 있으며, 특수 셋탑 박스를 장착한 텔레비젼으로 웹에 접속할 수 있게 되었다.


As a result, some Internet-related companies had a big year in the stock market. Yahoo! Inc., an Internet search engine company that held its initial public stock offering in April, watched its stock rise from the offering price of $13 a share to $33 a share at the close of the next day's trading. It was the most closely watched high-tech public offering since the explosive 1995 debut of Netscape Communications Corp., the Web browser company founded by entrepreneur James Clark and software developer Mark Andreessen. (See BIOGRAPHIES.)

결국 몇몇 인터넷 관련 기업들은 주식시장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인터넷 검색 엔진으로 유명한 야후라는 기업은 4월에 자사의 주식을 주식시장에 공개했는데 공개 첫날 $13에 불과하던 주식가격이 그 다음날 $33로 급등하였다. 이런 성공은 기업가인 James Clark와 소프트웨어 개발자인 Mark Anderessen이 설립한 웹 브라우저 회사인 넷스케이프사가 1995년에 거둔 성공과 매우 닮았다.


Profitability, however, eluded most companies doing business on the Internet. While Web-site advertising grew by 83% in the first half of 1996, few commercial business operations on the Internet made money. In fact, most of the advertisers were high-tech companies buying advertising on each other's Web sites. Consumer product companies, the biggest financial support for conventional publications and television, continued to be cautious about Internet advertising.

그러나 인터넷를 통해 사업을 하는 기업 중 대부분의 기업은 수익을 낼 수 없었다. 1996년 전반기에 웹 사이트 광고 시장은 83% 정도 성장한 반면에 인터넷을 통해 사업을 하는 기업 중 수익을 낸 회사는 매우 적었다. 사실, 대부분의 인터넷 광고주는 다른 웹 사이트에도 광고를 내는 첨단기업들이었다. 그러나 기존의 광고매체(인쇄물과 텔레비전)에 큰 광고주였던 소비재 제품 기업들도 인터넷 광고에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Most advertisers were trying to capitalize on the Internet's strength--reaching narrowly defined audience groups. For example, the Discovery Channel Online--the Internet cousin of the cable TV Discovery channel--was concentrating on providing information on the Web that would appeal to the same demographic segment as its TV audience, mainly well-educated, upscale men aged 25 to 54.

대부분의 광고주는 인터넷의 장점인 세분화된 고객집단에 접근할 수 있는 특성을 이용하고자 했다. 예를 들어 디스커버리 채널 온라인사 - 케이블 TV사인 디스커버리 채널사의 자회사 -는 자사의 TV 시청자와 동일한 인구통계학적 구분을 통해 고학력이면서 고소득층인 25세에서 54세의 성인을 대상으로 웹을 통한 집중적 정보를 제공했다.


There was great interest in extending the Internet to more people. In March U.S. Pres. Bill Clinton participated in a new California school event that spawned subsequent efforts across the country. Called NetDay96, it was a grassroots volunteer campaign to wire schools for Internet access at little cost to the public. By the year's end other states were promoting similar efforts, but the Internet revolution still had not reached many public libraries and schools that could most benefit from easy access to a world of information. An amendment to the Telecommunications Act of 1996 authorized subsidies for information technology to libraries and schools, but late in the year the federal government was just receiving recommendations on how to make that happen.

인터넷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확산시키기 위한 노력도 있었다. 3월에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은 인터넷 대중화를 확산시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새로운 캘리포니아 학교 이벤트에 참가했다. "NetDay 96"이라고 부른 그 이벤트는 일반 대중들로 이루어진 자원봉사 캠페인이었다. 그 캠페인의 내용은 적은 비용으로 인터넷 접속을 일반대중에게 제공하라고 학교에 전보를 치는 것이었다. 그 해 연말에 다른 주들도 비슷한 노력을 했으나 인터넷 혁명은 아직도 수 많은 공공도서관과 학교에 확산되지 않았다. 1996년의 통신법 수정안에 의해 도서관과 학교의 정보기술 확산을 위해 장려금을 줄 수 있게 되었으나 연방정부는 그 해 말에야 비로소 어떠한 방식으로 장려금을 줄 것인가에 고민하면서 각종 권고안을 채택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Some studies suggested the Internet might facilitate learning. The Center for Applied Special Technology, based in Washington, D.C., reported that a study of urban school districts showed that elementary school students with access to the Internet had an advantage in learning over those without access. The study concentrated on 500 fourth- and sixth-grade students in Chicago, Ill.; Dayton, Ohio; Detroit, Mich.; Memphis, Tenn.; Miami, Fla.; Oakland, Calif.; and Washington, D.C. Its results showed that students who used the Internet scored higher on nine learning criteria, which included greater insight into a topic and accuracy in handling information.

한편 인터넷이 학습을 촉진시킨다는 연구가 있었다. 워싱턴 디씨에 있는 특수응용기술센터는 인터넷에 접속한 도시 소재의 초등학교 학생들이 인터넷에 접속할 수 없는 학생들보다 더 우수한 학습능력을 가질 수 있다고 보고했다. 그 연구는 일리노이즈주의 시카고, 오하이오의 데이톤, 미시간주의 디트로이트, 테네시주의 멤피스, 플로리다의 마이애미, 캘리포니아주의 오클랜트, 그리고 워싱턴 디씨에 있는 초등학교 4학년에서 6학년 학생 500명을 대상으로 했다. 그 연구의 결과는 인터넷을 사용하는 학생들의 점수가 9개 학습항목에서 더 높았는데, 주제에 대한 통찰력이 높았고 정보를 다루는 정확도가 우수했다는 것이다.


Meanwhile, the major telephone and cable television companies tried to participate in the Internet boom by offering Net access services at previously unheard-of speeds. A new high-speed cable modem that would allow a personal computer (PC) to access the Internet through the same fibre-optic cables that transmitted cable TV programs was introduced in selected cities. It offered access speeds more than 300 times faster than those of most consumer computer modems. Telephone companies spent the closing months of 1996 preparing to introduce "xDSL" transmission technologies, which would allow telephone lines to access the Internet more than 50 times faster than present modems. As the year ended, there were questions about how soon either telephone companies or cable TV companies could introduce the new services to the general population, since in many areas the transmission lines would need to be upgraded before consumers could take advantage of the new services.

한편, 주요 전화와 케이블 티브이 회사들은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속도로 네트워크 접속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인터넷 붐에 편승하고자 했다. 선택된 몇몇 도시에 국한된 것이기는 하지만 새로운 고속 케이블 모뎀은 케이블TV 프로그램을 전송하던 광섬유 케이블로 PC를 이용해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를 통해 사용자는 기존의 모뎀보다 300배나 빠른 속도를 제공받을 수 있게되었다. 전화회사들은 1996년의 마지막 달을 "xDSL" 전송기술을 도입하는데 보냈다. 이 기술을 이용하면 전화선을 통해 기존의 모뎀보다 50배나 빠르게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으나 1996년을 마감하면서 전화회사나 케이블 티브이 회사들이 얼마나 빨리 그들의 새로운 서비스를 정착시킬 수 있는가에 의문이 생겼다. 왜냐하면 많은 지역의 전송선로는 새로운 고객들이 새로운 서비스의 장점을 향유할 수 있을 정도의 고품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송 선로를 향상시킬 필요가 있었다.


Telecommunications reform became more controversial than ever before when the U.S. Congress early in 1996 approved a bill containing the hotly debated Communications Decency Act. The act provided for fines and jail sentences for Internet content providers who distributed "indecent materials" to minors. In June a three-judge federal panel ruled that the Communications Decency Act was unconstitutional. As part of the opinion, one judge wrote, "As the most participatory form of mass speech yet developed, the Internet deserves the highest protection from governmental intrusion."

전기통신 개혁안은 미 의회가 1996년에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통신예절에 관한 조례를 담고 있는 법안을 통과시켰을 때보다도 더 큰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그 법안은 음란물을 미성년자에게 배포한 인터넷 정보 제공자는 벌금형과 징역형에 처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6월에 세 명의 연방 법원 판사는 통신예절에 관한 조례가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그런 의견을 주장한 한 판사는 "대중연설이 가능한 최고의 참여민주주의 형태가 개발되고 있으므로 인터넷은 정부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야만 한다"고 판결문을 썼다.


That ruling faced federal court appeals, however, and, in the meantime, some states began passing their own restrictive laws governing on-line content. Connecticut, Maryland, New York, and Oklahoma passed laws that restricted the transmission of on-line material. This raised the possibility of widely varied regulations based on geographic boundaries.

그러나 이러한 법원판결에도 불구하고 어떤 주들은 온라인 내용을 규제하려는 자신들만의 엄격한 법을 통과시키기 시작했다. 코네티컷, 메릴랜드, 뉴욕과 오클라호마는 온라인 자료의 전송을 제한하려는 법을 통과시켰다. 이러한 법은 지역적 경계선을 기초로 하여 규제를 다양하게 강화시킬 가능성을 높였다.


Moral questions dogged other media as well. To deal with concerns about the content of television programs, work continued on technology that would allow in-home blocking of certain programs based on a system of ratings. Necessary for such blocking was computer circuitry called the V-chip, which would be built into TV sets. Proponents of the system continued to disagree over how to rate the programs and what kind of rating categories there should be.

마찬가지로 다른 매체에도 도덕적 문제들이 제기되었다. 텔레비젼 프로그램은 가정에서 그 프로그램의 등급에 따라 시청을 제한할 수 있는 기술 개발이 지속되어왔다. 프로그램 시청을 제한할 수 있는 기술로 TV에 내장할 수 있는 V-칩이라고 부르는 컴퓨터 회로가 만들어졌으나 그 시스템 제안자들도 프로그램의 등급을 어떻게 정할 것이며 어떤 종류의 등급이 있어야 하는가에 관해서는 의견을 서로 달리하고 있다.


Computer Consumer Technologies.

Digital video (or versatile) disc (DVD) was one of the most talked-about consumer computer technologies in 1996, even though most consumers had not yet seen it. A DVD player would read a shiny disc similar in appearance to a computer CD-ROM but able to hold about 4.7 billion bytes of data, compared with 650 million bytes on a CD-ROM. (Future DVD discs were expected to hold more than eight billion bytes.) The increased DVD storage capacity also would make possible higher-quality video and sound than could be obtained with a videocassette recorder tape and would make it feasible for a moviemaker to sell a single DVD containing several different endings to the same film or multiple versions of the same movie, each in a different language. The first consumer DVD players were expected to debut in the U.S. in early 1997.

디지털 비디오(혹은 다용도) 디스크(DVD)는 1996년의 컴퓨터 기술 중에서 가장 많이 소비자들의 입에 오르내렸던 화제거리 중 하나이다. 물론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아직 DVD를 구경하지 못했다. DVD 플레이어는 컴퓨터 씨디롬과 비슷한 얇은 디스크를 읽는 기계장치이다. 그러나 씨디롬이 650메가 정도를 저장하는데 비해 이 디스크는 4.7기가 바이트를 저장할 수 있다. (미래의 DVD는 아마도 8기가 바이트를 저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처럼 늘어난 DVD의 저장능력은 기존의 비디오 테이프가 제공했던 것보다 더 뛰어난 품질의 비디오와 사운드를 제공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또한 영화제작자들은 한 장의 DVD에 몇 개의 서로 다른 엔딩장면을 집어넣을 수 있게 될 것이며 동일한 영화를 서로 다른 언어로 만든 몇 개의 다국어 판을 동시에 집어넣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아마도 1997년 초에는 이 DVD 플레이어 첫 번째 소비자가 미국에서 출현하지 않을까 예상한다.


Digital photography, a marriage of computer chips and traditional cameras that could capture photos in electronic form, began to trickle into the U.S. market during 1996. These electronic cameras had previously cost from $1,500 to $30,000, but prices had dropped dramatically. Proponents hoped digital cameras costing less than $1,000 would compete for part of the $13 billion that U.S. consumers were expected to spend in 1996 on conventional cameras, film, film processing, and photographic accessories, while camera manufacturers and computer makers hoped that consumers would be interested in taking digital photos that could be edited on PC screens.

전자 방식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디지털 사진기는 컴퓨터 칩과 전통적인 카메라가 결합한 제품으로 1996년 한 해 동안 미국 시장에서 점차 보급이 확산되었다. 이 전자 카메라는 예전에는 $1500에서 $30000이었으나 현재는 가격이 많이 내려간 상태이다. $1000 이하로 가격이 내려갈 것이라고 기대하는 디지털 카메라 옹호론자들은 1996년에 160억 달러에 이르는 전통적인 카메라와 영화, 영화처리, 사진 악세서리 시장에서 충분히 경쟁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또한 카메라 제조회사와 컴퓨터 회사들 역시 소비자들이 디지털 사진을 찍어 PC 화면에서 편집하는데 관심이 높아지기를 희망하고 있다.


Industry Developments.

The computer industry's Internet obsession also fueled competition. The biggest rivalry in 1996 may well have been the one between software giant Microsoft Corp. and Netscape. In a battle for "mind share" in the Internet market, each company pitted its free Internet browser software against the other's. The war between Netscape Navigator and Microsoft Internet Explorer was fought mainly in the reviewers' columns of computer trade journals, and for most consumers choosing a winner was largely subjective. The contest was important to Netscape, which was trying to maintain its lead as the most innovative Internet communications firm as well as its 80% market share, and to Microsoft, which was trying to convince the world that it had abandoned its reluctance to develop for the on-line world.

컴퓨터 산업계의 인터넷 집중현상은 경쟁을 가열시켰다. 1996년의 가장 큰 라이벌경쟁은 아마도 소프트웨어의 공룡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사와 넷스케이프사 간의 경쟁일 것이다. 인터넷 시장의 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전쟁에서 두 회사는 자사의 인터넷 브라우저 소프트웨어를 무료로 공급하는 방법으로 경쟁했다. 넷스케이프 네비케이터와 마이크로소프트 인터넷 익스플로러간의 전쟁은 주로 컴퓨터 상업 잡지의 비평란을 통해 이루어졌으며 승자를 선택했던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다분히 주관적이었다. 그 경쟁은 넷스케이프 사에게 더욱 중요했다. 왜냐하면 넷스케이프사는 80%에 달하는 시장을 점유하고 있으며 가장 혁신적인 인터넷 통신사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계속 그 우위를 지켜나가고자 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마이크로소프트사는 온라인 세계에서 마지 못해 경쟁하려 한다는 일부의 의심을 불식시키고자 애를 썼다.


The battle became a legal one as well. In August Netscape sent a letter to the U.S. Justice Department accusing Microsoft of deliberately preventing companies such as Netscape from running some types of Internet server software on Microsoft's Windows NT 4.0 Workstation operating system software. Microsoft responded that the NT Workstation software was not appropriate for the use Netscape intended.

마침내 이 싸움은 법정문제로 비화했다. 8월에 넷스케이프사는 미국 법무성에 넷스케이프사와 같은 기업이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윈도우즈 NT 4.0 워크스테이션 운영체제 상에서 특정 종류의 인터넷 서버 소프트웨어를 실행시키는 것을 마이크로소프트사가 고의로 막는다는 서한을 보냈다. 이에 대해 마이크로소프트사는 NT 워크스테이션 소프트웨어는 넷스케이프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One of the major new markets for the computer industry in 1996 was the Intranet, an internal company version of the Internet. Intranets allowed workers with PCs to access information from company computers via the same user-friendly browsing software used on the Internet. Corporations that adopted this approach said Intranets simplified employees' work and thus led to higher worker productivity and lower frustration levels.

1996년에 컴퓨터 업계에 등장한 새로운 주요 시장 가운데 하나는 인트라넷으로 인트라넷은 인터넷의 기업 내부용이다. 인트라넷은 작업자가 PC로 인터넷에서 사용하는 웹 브라우저와 동일한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기업 컴퓨터의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러한 방식을 채용한 기업은 인트라넷이 종업원의 작업을 단순화시켜 작업자의 생산성을 높이고 실패를 줄인다고 말한다.


Computer-security experts continued to worry about on-line hackers who attacked corporate computers. One of the newest trends was the "denial-of-service" attack, in which a series of phony messages were sent to the target computer via the Internet. This kept the computer so busy that legitimate users could not gain access to it. One victim, the Internet Chess Club, which counted among its members some of the staff of Carnegie Mellon University, Pittsburgh, Pa., said the source of the attack was difficult to trace through the labyrinthine Internet. The potential for such attacks was intensified by the ease with which hackers could learn to become attackers. Anyone could learn denial-of-service techniques simply by visiting Web sites that published information of interest to hackers.

한편 컴퓨터 보안 전문가들은 기업의 컴퓨터를 공격하는 온라인 해커에 대해 염려해왔다. 이들 해킹 방식 중 가장 새로운 방식 중의 하나는 "서비스 거부"형 공격인데 이 방식은 일련의 거부 메시지를 인터넷을 통해 목표 컴퓨터에 보내는 것이다. 이 방식은 목표 컴퓨터를 바쁘게 해 다른 사용자가 그 컴퓨터에 접속할 수 없게 만든다. 그중 한 희생자인 인터넷 체스 클럽-피츠버그에 있는 카네기 멜버른 대학의 직원 몇 명이 회원임-은 미로같이 복잡한 인터넷을 통해 그 해커를 추적하기란 어려운 일이라 말했다. 또한 이런 공격의 가능성은 해커가 그러한 공격방식을 배우는 것이 쉬워짐에 따라 매우 높아지고 있다. 해커방식에 관한 기술을 담아놓은 웹 사이트를 방문하면 누구나 손쉽게 "서비스 거부"형 배울 수가 있기 때문이다.


One of the most talked-about new computer products of 1996 was the "network computer," a stripped-down machine intended to replace the limited-function computer terminals used by corporate workers such as bank tellers, retail clerks, and airline ticketing agents. Priced in the range of $700 without a computer screen, the network computer was designed for users who did not need the complexity of a PC and its software. IBM's first such machine, the Network Station, was to use only browsing software for accessing the Internet or an Intranet. Other companies--notably Sun Microsystems, Inc., and Oracle Corp.--quickly announced their own network computers. To some extent, the network computer threatened to undermine the PC market by providing a lower-cost alternative for some types of work.

1996년에 가장 많이 화제거리가 되었던 컴퓨터 신제품은 "네트워크 컴퓨터"이다. 네트워크 컴퓨터란 은행원이나 소매점의 직원 또는 비행기 발권 창구의 직원들이 사용하던 제한된 기능의 컴퓨터 단말기를 대체하기 위해 생겨난 것이다. 모니터 없이 약 $700 정도의 가격을 형성하고 있는 이 네트워크 컴퓨터는 복잡한 PC와 소프트웨어가 필요없는 사용자들을 위한 것이다. IBM의 첫 번째 네트워크 컴퓨터인 네트워크 스테이션은 인터넷이나 인트라넷에 접속하기 위한 브라우저만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선 마이트로시스템즈사와 오라클사와 같은 유명한 기업들도 재빨리 자신들이 만든 네트워크 컴퓨터를 발표했다. 이 네트워크 컴퓨터가 저가격대로 공급되면서 어느 정도는 특정 종류의 작업 대체용으로 PC 시장을 위협했다.


Intel Corp., which manufactured the microprocessor chips that controlled most PCs, launched a counterattack by declaring that it would make PCs more affordable by lowering the costs of using them in computer networks. For instance, it said it would offer products that made it easier to diagnose PC problems remotely over a network. The aim was to make PCs more competitive with network computers, which were relatively low-maintenance devices.

그러자 대부분의 PC에 장착된 CPU 칩을 제조하는 인텔사는 PC를 컴퓨터 네트워크 상에서 훨씬 더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겠다고 선언함으로서 이 도전에 반격을 가했다. 예를 들어 네트워크 상에서 원격지의 문제가 있는 PC를 더 쉽게 진단할 수 있는 제품을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를 통해 상대적으로 유지 보수의 필요성이 적은 네트워크 컴퓨터와 경쟁할 수 있는 PC를 만들려는 것이 인텔의 의도인 것이다.


Windows 95, which was heavily promoted by Microsoft during the summer of 1995, sold 40 million copies in its first 12 months, which made it a success by any standard. Some software companies that wrote programs for Windows 95 had expected even greater sales of the upgraded operating system and were disappointed. Sales were slowest among corporations, which typically were reluctant to replace the previous version of Windows, which seemed to be working well. Most Windows 95 sales were made through the sale of new PCs that came equipped with the software. Another Microsoft product, the Windows NT operating system, continued to sell briskly, and analysts estimated that by year's end it would outsell all types of the Unix operating software.

1995년 여름에 마이크로소프트사가 가장 많은 홍보를 한 윈도우즈 95는 12개월 동안 약 4천만 카피가 팔렸다. 윈도우즈 95용 프로그램을 제작한 몇몇 소프트웨어 회사는 이보다 더 많이 팔릴 것으로 예상다가 실망했다. 탐탁치 않은 기분으로 윈도우즈용으로 개발한 프로그램을 윈도우즈95용으로 바꾼 기업들의 매출액은 최악이었다. 오히려 윈도우즈용 프로그램이 더 잘 작동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윈도우즈95의 매출액 중 대부분은 새로운 PC의 판매 때 탑재됨으로써 이루어졌다. 반면에 또 다른 마이크로소프트사 제품인 윈도우즈 NT는 계속 엄청난 판매고를 기록했다. 분석가들은 96년말에 그 프로그램은 모든 형태의 유닉스 운영체제보다 더 많이 팔렸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Meanwhile, the PC increased in power in 1996 to 200 MHz, nearly twice the speed of the fastest consumer computer a year earlier. At the same time, next-generation PCs were being developed that would raise performance to the range of entry-level supercomputers, the high-performance machines used in science and industry. The new high-speed PCs could be based on Intel's planned model P7 microprocessor chip, which would process instructions 64 bits at a time rather than 32 bits at a time, as did the microprocessors used in 1996 PCs.

한편, 1996년의 PC는 일 년 전에 가장 빠른 PC보다 거의 두 배나 빠른 속도를 가진 200MHZ의 속도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차세대의 PC는 과학기술계에서 사용되는 고성능의 엔트리 레벨 수준의 슈퍼 컴퓨터 정도로 강력한 성능을 갖게될 것이다. 새로운 고속 PC는 96년 PC에 이용되어 왔던 마이크로프로세서가 동시에 32비트씩 처리했던 것에 비해 동시에 64비트씩을 처리하는 인텔의 P7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사용할 것이다.


No matter how powerful computers became, the human mind could still withstand their challenge. In February 1996 Russian chess champion Garry Kasparov defeated Deep Blue, an IBM machine touted as the world's best chess computer. (See SIDEBAR.) IBM's Deep Blue programmers, claiming they had learned hard lessons through defeat, were anxious for a rematch, which was scheduled for May 1997 in New York City. IBM put up a $1.1 million prize fund for the rematch, with $700,000 to go to the winner. IBM scientists said they would invent programming tools that would allow Deep Blue to adapt to Kasparov's changes in strategy from one game to the next, an ability that helped Kasparov win in 1996.

그러나 아무리 강력한 컴퓨터가 되어도 인간은 여전히 그들의 도전을 잘 견디어 낼 것이다. 96년 2월 러시아 체스 챔피언인 Garry Kasparov는 세계 최고의 체스 컴퓨터인 IBM사의 "Deep Blue"란 컴퓨터를 무찔렀다. 딥 블루의 컴퓨터 프로그래머는 그 시합에서 패배한 후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뉴욕시에서 열릴 97년 5월의 재대전을 고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IBM은 그 재대결에 110만불의 상금을 걸었으며 그중 70만불은 우승자에게 돌아갈 것이다. IBM 과학자들은 딥 블루 컴퓨터에 96년 우승자인 Kasparov가 사용했던 능력을 집어넣음으로써, 이 컴퓨터가 Kasparov를 이길 수 있는 새로운 프로그래밍 도구를 개발했다고 주장했다.


Some traditional computer suppliers suffered in 1996. The year ended with the future of PC industry pioneer Apple Computer, Inc., still in doubt. While the company reported a $25 million profit in the last quarter of its 1996 fiscal year, which ended in late September, its sales declined by almost $700 million compared with the same period a year earlier. In addition, Apple lost more than $800 million during its fiscal year. Apple said it expected to lay off 1,500 people by early 1997, although that was fewer than the 2,800 originally planned, because more people had voluntarily left the company than expected.

96년은 몇몇 컴퓨터 업자들에게 매우 어려웠던 해였다. PC업계의 개척자인 애플사의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한 채로 96년이 저물었다. 애플사는 96년 4분기(96년 9월 기준)에 2500만불의 수익을 냈다고 보고했으나 전년 대비 매출액은 거의 7억불 정도 감소했다. 또한 애플사는 회계연도 중에 8억불 정도 줄었다. 애플사는 97년 초에 원래 계획했던 2,800명 보다 적은 1,500명의 직원을 해고할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해고 인원이 줄어든 것은 회사 경영이 나아져서가 아니라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회사를 그만둘 것이라고 예측되기 때문이다.


Gilbert F. Amelio, Apple's chairman since early 1996, was engaged in what was to be a three-year corporate turnaround. Late in the year Apple announced price cuts designed to make its Macintosh computers more competitive with the Windows-based PCs that so outnumbered the Macintosh in the market.

96년 초부터 애플사의 회장을 맡고 있는 Gilbert F. Amelio는 3년에 걸친 애플사의 전향계획을 추진중이다. 96년 말에 애플은 PC시장에서 매킨토시를 눌러버린 윈도우즈용 PC에 대항하기 위해 매킨토시의 가격을 내렸다.


Apple's greatest asset appeared to be the loyalty of its Macintosh customers; one study found that nearly 90% of Macintosh users bought another Apple when they purchased a new computer. Apple also hoped to get a boost from the decision of Motorola, Inc., which manufactured the PowerPC microprocessor chips used in recent Macintosh computers, to begin making "clones," PCs that would run the Macintosh operating system (Mac OS). Although Apple had previously been reluctant to license the Mac OS, in 1996 licensed clone makers included Power Computing Corp., DayStar Digital, Inc., and the Taiwanese manufacturer Umax Data Systems, Inc.

애플의 가장 큰 자산은 매킨토시 사용자들의 충성심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매킨토시 사용자의 거의 90%가 그들이 새로운 컴퓨터를 살 때 매킨토시를 재구매했다는 사실을 밝혀졌다. 애플사는 또한 최근의 매킨토시 컴퓨터에서 사용하기 시작한 파워PC 칩을 제조하는 모토롤라사의 결정에 많이 고무되어 있다. 모토롤라사는 매킨토시 운영체제인 Mac OS를 실행시킬 수 있는 PC인 "clones"를 만들기 시작했다. 또한 애플사는 이전에는 Mac OS의 사용 허가를 꺼려했으나 96년에는 파워 컴퓨팅사, 데이스타 디지탈사 그리고 대만 제조업체인 유맥스 데이터 시스템즈사에 맥 OS의 사용을 허가했다.


Digital Equipment Corp. also continued to be troubled, losing $433 million in the fiscal year ended in mid-1996 and announcing it would eliminate 7,000 jobs. In its following quarter DEC lost another $66 million, disappointing Wall Street with a decline that was far larger than expected.

한편 디지탈 이퀴브먼트사는 96년 중반에 끝난 회계연도 중에 4억 3천 3백만불 정도의 매출 손실을 기록했으며 약 7천 명을 감원한다고 발표했다. 마지막 4/4 분기에 동사는 다시 6천 6백만불의 손해를 봤으며 월 스트리트는 예상했던 것보다 더 늘어난 손실에 실망했다.


It also was a year for consolidation in the PC industry. In June U.S. PC manufacturer Packard Bell said it would merge with the PC operations of Japanese computer manufacturer NEC. The $300 million deal would create the largest PC firm in the U.S., which would be headed by Packard Bell management. NEC previously had been a major shareholder in Packard Bell.

1996년은 또한 PC 업계 합병의 해였다. 6월에 미국의 PC 제조사인 패커드 벨사와 일본의 컴퓨터 제조회사인 NEC 사이에 합병이 있었다. 3억불에 달하는 이 합병은 미국에서 가장 큰 PC 회사를 탄생시켰는데 그 회사의 관리는 패커드 벨이 책임지고 NEC는 패커드 벨의 대주주가 되었다.


The computer industry lost a major talent when computer pioneer Seymour Cray (see OBITUARIES) died of injuries suffered in an automobile accident in Colorado Springs, Colo. Known as the father of the supercomputer, Cray in 1972 had founded Cray Research, Inc., which grew to dominate the world market for high-speed scientific computers. Cray left his namesake firm in 1989 and founded the Cray Computer Corp. to develop the Cray-3 supercomputer. That company was forced to file for bankruptcy in 1995. Cray Research, facing uncertain future financial prospects, was acquired in 1996 by Silicon Graphics.

컴퓨터 업계는 컴퓨터 개척자인 Seymour Cray(사망자 약력 참조)라는 걸출한 인재를 잃었다. 그는 콜로라도주의 콜로라도 스프링스에서 자동차 사고로 고통을 받다 죽었다. 슈퍼컴퓨터 아버지로 알려진 Cray는 1972년에 Cray Research사를 설립해서 세계의 고속 과학 컴퓨터 시장을 지배했다. 크레이는 1989년에 그의 이름을 따서 만든 크레이 컴퓨터사를 떠났다. 크레이 컴퓨터사는 크레이-3 슈퍼컴퓨터를 개발했으나 95년에 도산하여 강제로 정리되었다. 불확실한 미래의 재무상황에 직면한 크레이 리서치사는 96년에 실리콘 그래픽스사에 흡수되었다.


During 1996 government agencies and corporations appeared to be taking a more serious look at the computer problems posed by the approaching end of the century. Because of a flaw in the way some computer programs handled calendar dates, many programs would cease functioning or give wrong answers in the year 2000. For more than 30 years, most computer programmers had been abbreviating calendar-date years as the last two digits--a shortcut that originally served the purpose of saving expensive computer memory capacity but continued as common practice long after computer memory had become relatively cheap. As a result, while all computer programs could recognize that "96" meant 1996, most either could not make sense of the year 2000 abbreviated as "00" or else concluded that it meant 1900. The problem was complicated by the ingenuity of the original computer programmers, who hid date calculations inside programs in clever and unexpected ways and thus made it difficult for modern programmers to locate and change all two-digit dates to four-digit ones. Some analysts calculated that the cost of finding and fixing all "year 2000 problem" flaws would be between $300 billion and $600 billion worldwide by the end of the decade.

96년에 정부기관과 기업들은 다가오는 20세기말에 나타날 컴퓨터 문제들에 많은 진지한 관심을 보였다. 특정 컴퓨터들이 갖고 있는 날짜 계산 방식의 오류로 인해 많은 프로그램들이 2000년에는 그 기능을 다해 많은 오류를 낼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30년 이상동안 대부분의 컴퓨터 프로그래머들은 달력 년도를 마지막 두 자리로 생략해 사용했다. 컴퓨터의 메모리를 아끼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컴퓨터 메모리 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면서 4자리로 달력 년도를 표시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모든 컴퓨터 프로그램은 "96"을 "1996"으로 인식하지만 상당수의 프로그램과 컴퓨터는 "00"을 2000이라고 인식하지 못하고 1900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엉뚱한 방식으로 프로그램 내부에 날짜 계산 방식을 숨겼던 옛날 컴퓨터 프로그래머들의 독창성 덕분에 이 문제는 복잡하게 되었으며 그 결과 오늘날의 프로그래머들이 모든 두 자리의 날짜를 찾아 4자리로 바꾸는 일을 매우 어렵게 만들었다. 어떤 분석가들에 의하여 이 '2000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10년간 약 3천억불에서 6천억불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전세계적으로 소모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In a sense, the year 2000 problem had already arrived by 1996, because forward-looking business programs, such as those that calculated home mortgages or interest or that did sales forecasting, already had bumped up against the year 2000 in their daily tasks. As a result, a mini-industry of year 2000 consulting and programming services was growing up to help corporate and government computer users solve their problems. (STEVE ALEXANDER)

어떤 의미에서 2000년의 문제는 이미 1966년에 시작되었다. 왜냐하면 예상매출액이나 이자를 계산하는 것과 같은 업무 프로그램들의 경우에는 이미 2000년의 문제가 일상업무화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2000년의 문제를 컨설팅해주고 프로그래밍 서비스를 해주는 미니 산업이 기업과 정부의 컴퓨터 사용자들에게 그 문제를 푸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계속 성장할 것이다.(Steve Alexander)


This article updates the Macrop dia articles COMPUTERS; INFORMATION PROCESSING AND INFORMATION SYSTEMS.


** 번역에 도움을 선배에게 감사드립니다.

1996년 스페셜리포트 - Deep Blue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연감: 1996년 컴퓨터와 정보통신 분야 스페셜 리포트 (옮김: 김중태)


In February 1996 Garry Kasparov, the world's best chess-playing human, sat down against Deep Blue, the world's best chess-playing computer, for the start of a six-game match. When Deep Blue defeated Kasparov in the first game, the shock was felt around the world. Had machines finally reached the same level of intelligence as humans?

1996년 2월에 세계 최고의 체스 선수인 개리 카스파로프(Garry Ksaparov)와 세계 최고의 체스 경기 컴퓨터인 "Deep Blue"는 6번의 체스 대국 중 첫 번째 판을 두었는데, 딥 블루가 그 첫 번째 경기에서 카스파로프를 이김으로써 전 세계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마침내 기계가 인간과 같은 지능 수준에 도달했다는 것일까?


The interest in having computers play chess began in about 1950. The first step was the development of an algorithm for constructing chess programs. Programmers "told" the computer certain rules it should follow (e.g., develop its pieces toward the centre of the board, get its king into safety, and attack its opponents' king). Further enhancements came with the ability of the computer to analyze numerous positions quickly.

컴퓨터 체스 경기에 대한 관심은 대략 1950년부터 시작되었으며, 그 첫 걸음은 체스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한 알고리즘의 개발이었다. 프로그래머들은 컴퓨터에게 컴퓨터가 지켜야 할 게임의 규칙(예를 들어, 보드 중앙으로 피스를 움직이거나 왕의 안전을 지키는 일, 또는 적의 왕을 공격하는 일 등)을 "학습"시켰다. 그리고 좀더 빠르게 수 많은 위치를 분석할 수 있도록 컴퓨터의 능력은 더욱 더 향상되었다.


By the mid-1980s a computer called Hitech was strong enough to be rated in the lower ranks of the world's grand masters. In 1988 Deep Thought, the predecessor of Deep Blue, became the first computer to defeat a grand master. Deep Thought was soon capable of searching 750,000 positions per second (compared with one or two positions for humans). In 1989 Kasparov, world champion at that time, played Deep Thought in a two-game match and won both games.

마침내 1980년대 중반에 만들어진 Hitech라는 컴퓨터는 세계 그랜드 마스터 경기의 참가자 중에서 실력이 떨어지는 사람과 비슷한 정도의 실력을 갖게 되었다. 딥 블루의 아버지 뻘인 Deep Thought란 컴퓨터는 1988년에 초당 75만개의 위치를 검색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는 체스 선수로서 일류나 이류에 해당하는 수준이었다. 1989년 세계 챔피언이었던 카스파로프는 Deep Thought와 두 번 겨루어 모두 승리했다.


That same year a new project began at IBM, headed by Chung-Jen Tan. He was assisted by Feng-Hsiung Hsu, Murray Campbell, A. Joseph Hoane, and Gershon Brody. (Hsu and Campbell had worked on Deep Thought.) The result was Deep Blue, a 32-node IBM PowerParallel SP2 high-performance computer with 256 microprocessors working in tandem. The team improved the calculating speed so that Deep Blue could look at more than one billion positions per second. It also had a massive opening database based on one million games from the past 100 years and an endgame database (which was activated when only five chess pieces remained) holding billions of scenarios.

같은 해에 Chung-Jen Tan을 책임자로 하는 새로운 프로젝트가 IBM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Feng-Hsiung Hsu, Murray Campbell, A. Joseph Hoane 그리고 Gershon Brody의 도움을 받았다. (Hsu와 Campbell은 Deep Thought 개발에 참여한 사람이다.) 그 연구결과가 256 직렬 마이크로프로세서를 가진 32-노드 IBM PowerParaller SP2 고성능 컴퓨터인 딥 블루이다. 그 팀은 초당 10억 개의 위치를 찾을 수 있도록 계산속도를 개선했다. 또한 과거 100년 동안 열렸던 백 만 번의 경기 기록과 10억 개의 시나리오를 가진 막바지 게임(5개의 피스만이 남았을 때만 작동함)을 데이터베이스화 했다.


In 1995 a match between Deep Blue and Kasparov was negotiated. Each participant would have two hours to make the first 40 moves, a common rate of play in human competition, and the winner would receive $400,000 out of a $500,000 purse. Experts were astounded when the computer beat back a dubious attack by Kasparov and made him resign on the 37th move in the first game. At first Kasparov was demoralized by the defeat, but, as he admitted later, it was the best thing that could have happened, because it forced him to treat Deep Blue as an opponent instead of just a machine.

1995년의 대국에서 딥 블루와 카스파로프는 하나의 합의를 보았다. 각 참가자는 인간들간의 통상적인 룰인 처음 40번의 체스 이동에 두 시간을 쓸 수 있으며, 승리자는 50만불의 상금 중 40만불을 갖는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컴퓨터가 카스파로프의 놀라운 공격을 막아내면서 그를 37번째의 이동에서 패배시킨 첫 번째 경기 결과에 매우 놀랐다. 카스파로프는 첫 번째 경기에서 패한 후 당황했으나 곧 그 게임이 최고였다는 것을 인정했다. 왜냐하면 이때부터 그는 딥 블루를 기계가 아닌 적으로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As the match progressed, Kasparov changed his strategy. He played sound chess and avoided weaknesses in his position, limiting Deep Blue's potential to attack his king. He aimed for positions that would cause the computer to have trouble in analyzing the position and force it to make weak moves. Kasparov then built up a superior position that enabled him to defeat Deep Blue. After the initial loss, Kasparov won three and drew two for a 4-2 victory.

경기가 계속되면서 카스파로프는 그의 전략을 수정했다. 그는 단순명료한 게임방식을 취하고 자기 위치의 약점을 없애는 것에 주력함으로써, 딥 블루가 그의 왕을 공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줄였다. 그는 컴퓨터가 쉽게 분석할 수 없는 위치를 찾기 시작해 컴퓨터의 체스 이동을 어렵게 만들었고, 그 결과 카스파로프는 딥 블루를 물리칠 수 있는 우세한 위치에 서게 되었다. 첫 판을 진 이후 카스파로프는 세 번을 이기고 두 번을 비겨 최종적으로 4-2로 승리했다.


Kasparov and the programmers for Deep Blue agreed to a rematch and scheduled it for May 1997. The programmers planned to upgrade the machine's sense of positional strategy so that Deep Blue could better analyze positions and be more flexible, but they admitted it would be a painstaking process.

카스파로프와 딥 블루의 프로그래머들은 1997년 5월에 재대결을 하기로 했다. 그 프로그래머들은 딥블루의 위치 전략을 수정해 말의 위치를 좀더 잘 분석하고 더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컴퓨터를 수정할 계획이다. 그러나 그 작업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그들도 인정하고 있다.


In the end, Kasparov demonstrated the flexibility and adaptability of human reasoning. Whether Deep Blue, or any machine, would ever be able to match that, only time would tell. (STEVEN MONTI)

결국 카스파로프는 인간 합리성의 유연성과 적응성을 과시했다. 그러나 딥 블루나 또는 다른 기계가 언젠가는 인간의 능력을 갖게될 것이며, 여기에는 단지 시간이 문제될 뿐이다.
(Steven Monti)


** 번역에 도움을 준 선배에게 감사드립니다.

January 1, 1998

1997년 한국 - 부도의 회오리 속에 해외진출의 가능성을 엿본 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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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연감: 1997년 한국의 컴퓨터, 정보통신 분야 (글: 김중태)


김중태 사진1997년 한국의 컴퓨터 업계는 부도로 시작하여 부도로 끝난 사상 최악의 한 해로 기록될 것이다. 한보그룹 부도로 시작한 국내 그룹의 연쇄 부도와 어려운 경제 사정은 컴퓨터 업계를 연말까지 부도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1월 29일 한국 IPC의 부도를 시작으로 아프로만, 세양정보통신, 멀티그램, 한국소프트정보통신, 큐닉스컴퓨터, 선인교역, 뉴텍컴퓨터 등 대형 업체들이 계속해서 쓰러졌다. 일 천 개가 넘는 중소업체가 함께 쓰러졌고 5,000억 원이 훨씬 넘는 피해를 냈다. 이 여파로 3월 29일 서초동에 문을 연 국제전자센터는 입주업체도 채우지 못한 상태로 일 년을 보내야 했으며, 대우통신이 경영권을 완전히 인수한 세진컴퓨터랜드의 판매량도 작년보다 20% 정도가 줄어드는 등, 중견 업체 대부분은 판매량이 줄거나 부도의 회오리에 휘말려야 했다.


중견 업체의 연쇄 부도는 빠른 속도로 시장을 대기업 중심으로 재편했다. 그러나 대기업 역시 외형적인 성장과는 달리 실익이 적은 어려운 한 해를 보냈다. 삼성은 월 평균 5만 대 이상의 PC를 판매하며 국내 시장 1위를 차지했으나 경상 수지는 적자를 기록했다. 반면 지난해 말 합작한 LG-IBM은 IBM에 대한 기술 신뢰도와 LG의 유통망이 상승효과를 가져오면서 30% 이상 성장했으며, 브랜드 이미지도 높아졌다. 삼보, 대우, 현대 역시 10~30% 정도의 판매 성장을 기록했다.


전반적인 불황 속에서도 성장을 계속한 분야는 기업 전산화 부문과 PC통신, 홈쇼핑 분야였다. 1997년 한 해에만 100여 개가 넘는 홈쇼핑 몰이 인터넷에 개설되었는데, 롯데 백화점의 경우 하루 평균 5만 여건의 접속과 1억 원이 넘는 매출을 기록할 정도로 성장했다. 인트라넷을 이용한 사내 경영이 확산되면서 전자문서관리시스템(EDMS), 전사적 자료관리(ERP), 자료관리(DBMS), 그룹웨어 분야 업체들의 약진이 두드러졌고, 몇몇 업체는 이런 성장에 힘입어 해외 시장 진출을 위한 기반을 만들었다.


그러나 1997년 한 해 가장 잘 나간 분야는 PC통신 분야다. 데이콤, 한국PC통신, 나우콤, 삼성SDS 등 국내 4대 통신망은 모두 흑자를 기록했는데, 유료가입자가 전년 대비 50% 이상 증가하여 350만 명 이상의 유료 가입자를 확보한 것이 큰 힘이 되었다.


인터넷 가입자 역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한국통신은 지난 해보다 무려 100% 늘어난 3만2천 여명의 개인과 1천5백 개의 기관을 가입시켰으며, 데이콤, 아이네트, 현대정보기술, 한솔텔레콤 역시 100~500%라는 놀라운 가입자 증가를 보였다.


시장이 커지자 PC통신 사업에 뛰어드는 업체도 늘어났다. 특히 10월 28일 상용 서비스를 개시한 SK텔레콤의 네츠고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통신서비스를 시작했다는 점에서 주목받았으며, LG인터넷도 인터넷 기반으로 PC통신 시장에 참여할 것을 발표했다. PC통신 업체의 치열한 경쟁은 새로운 서비스 개발로 나타났다. 각 업체는 더욱 뛰어나고 편리한 전용 접속 프로그램을 만들었으며, 멀티미디어 기반으로 통신환경을 바꾸어나갔다. 4월에는 무선데이터통신 시장도 생겼다. 여기에 인터넷을 이용하여 싼 가격으로 국제전화와 국제팩스를 사용할 수 있는 인터넷폰과 인터넷팩스 시장의 성장은 기존의 국제전화 시장을 뒤흔들면서 PC통신과 전화 시장의 경계선을 허물었다. 7월 1일부터는 유니텔에서 고속 PC통신인 56K 회선 서비스를 개시했으나 56K 모뎀의 표준이 정해지지 않은 까닭에 US로보틱스사의 X2 진영과 록웰사의 K56Flex 진영이 시장선점을 위한 치열한 표준경쟁을 벌였다. 국내 통신망 역시 두 진영으로 나뉜 채 서비스를 제공하는 바람에 56K 표준 논쟁은 PC통신 업계의 골치거리로 대두되었다.


PC통신의 대중화는 사회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쳤다. 상반기에는 인터넷으로 유명해진 누드 모델 이승희 열풍이, 하반기에는 영화 '접속'의 열풍이 불었다. 삼성SDS가 유니텔 홍보를 위해 지원한 '접속'을 통해서 젊은이들은 PC통신을 더욱 환상적으로 인식하게 되었으며, PC통신 가입자가 갑자기 급증하는 현상을 보였다. 연말에는 대통령 선거와 대입 지원 기능의 일부를 PC통신이 맡으면서 PC통신은 사회 전 분야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매체로 위상이 더욱 높아졌다.


이처럼 PC통신이 일반인의 세계로 확장되자 가상현실과 실제 현실 세계의 가치관 혼돈 문제가 화두로 떠올랐다.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으로 이승희의 체모가 드러난 사진을 감상했으며 언론은 앞장 서서 이승희의 열풍을 부채질했으나, 정작 이승희 홈페이지를 개설한 개인은 음란물 게재 혐의로 입건되는 등 사이버 스페이스의 가치관과 현실의 가치관이 불일치하는 문제를 나타냈기 때문이다.


특히 현실 세계의 저작권 보호 문제와 PC통신의 정보공유 정신은 'MP3 파일 삭제 사건'을 계기로 정면 충돌했다. 통신인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MP3라는 형식의 파일로 만들어 통신을 통해 배포했고, MP3 음악파일은 통신인과 통신업체, 음악업계의 시비거리로 떠올랐다. 결국 대형 통신망의 모든 MP3 파일 삭제와 통신인들의 항의 사태, MP3 파일의 유료 제공으로 일단 매듭지어졌다. 그러나 통신인은 갖가지 편법을 이용하여 음악파일을 지속적으로 배포하는 등 아직까지도 저작권 문제에 대한 가상 세계의 가치관과 현실 세계의 가치관이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업계 전체의 전반적인 불황은 가격파괴와 지속적인 가격하락을 몰고 왔다. 반도체의 경우 12월 들어 국제시장에서 16M D램이 2달러까지 떨어지면서 국내시장에서도 가격이 폭락했고 채산성이 극도로 악화되었다. 부도 회사의 물건이 덤핑으로 시장에 흘러다녔고, 새로운 기술의 개발로 상품의 생명주기도 짧아졌다. 년초에 발표된 새 CPU인 MMX 칩은 연말 쯤 시장에 확산될 것으로 예상했으나 상반기 시장을 주도했으며, 하반기에는 펜티엄II로 시장의 흐름이 바뀌면서 CPU의 생명 주기가 극도로 짧아졌다. 한편 LG와 삼성전자에서 새로운 형태의 PC인 넷PC와 2세대 HPC를 선보였으나 일반인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의 관심은 멀티미디어와 컬러 구현 기술에 집중되었다. 이에 따라 24배속 시디롬드라이브와 고용량 하드디스크, 사진처럼 출력을 해주는 포토 잉크젯 프린터, 저렴한 가격의 600dpi 고해상도 레이저 프린터, 20만 원 대의 컬러 스캐너, 첨단 기능의 사운드카드와 그래픽 카드, 가격이 폭락한 램, 56K 고속모뎀 등이 인기를 끌었다. 컬러 스캐너와 컬러 프린터의 보급은 위조지폐범의 등장을 부추기는 역기능을 낳기도 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컴퓨터를 이용한 컬러 표현과 멀티미디어 구현에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반면 CD롬드라이브를 대체할 것이라던 차세대 미디어 DVD는 1997년에도 대중화에 실패했다. 더구나 32배속 CD롬드라이브 출시, 100MB의 저장용량을 가진 ZIP 드라이브의 보급 확산, 이지플라이어, 슈퍼디스크, 650MB 용량의 PD, 1.5GB 용량의 사이젯 등 새로운 고용량 저장장치가 자리를 잡아가는 현실과 비교해볼 때 DVD가 과연 다음 세대의 저장매체로 자리를 잡을 수 있는지조차 의심될 정도였다.


하드웨어와는 달리 소프트웨어 시장은 조용했다. 사무용 프로그램에서 '한컴오피스 97'과 국내 시장의 80%를 장악하고 있는 'MS 오피스 97', 인터넷 프로그램에서 '네트스케이프 커뮤니케이터 4.3'과 '익스플로러 4.0'이 경쟁했을 뿐이다. 게임분야가 인기 행진을 지속했으나 게임 시장의 수익금 대부분이 비싼 로열티로 지급된 까닭에 매출은 커진 반면 실익은 없다는 비평을 받았다.


전반적인 불황과 침체된 분위기 속에서도 통신 접속 프로그램인 '새롬 데이타맨 프로'는 PC통신에서 60만 명 이상이 받아가는 돌풍을 일으켰으며, 18세 소년이 만든 저작도구인 '칵테일 97' 역시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창세기전.2' 등의 국산 게임도 큰 성장을 이루었다. 그리고 이런 국산 소프트웨어의 새로운 돌풍을 바탕으로 '새롬기술' '화이트미디어' '핸디소프트' '나눔기술' 등 많은 벤처 기업들이 해외시장으로 진출한 일이 그나마 침체에 빠진 컴퓨터 업계의 큰 위안이 되었던 한 해였다.

January 1, 1999

1998년 한국 - 시련극복 속에 내실 성장을 이룬 199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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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연감: 1998년 한국의 컴퓨터, 정보통신 분야 (글: 김중태)


김중태 사진1997년의 부도 여파가 진정되기도 전에 또 다시 IMF 체제를 맞이한 1998년의 컴퓨터 산업은 이익을 내기에 앞서 살아남는 것이 최우선 목표가 되었다.


1998년 컴퓨터 업계를 강타한 최대 사건은 한컴사의 '한글' 파동이다. 경영난을 이유로 마이크로소프트로사로부터 2천만 달러를 지원받는 대신 '한글' 프로그램 개발과 판매를 포기하겠다는 한컴사의 발표는 정부와 사회, 국민 전체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국민 전체의 강력한 반발 속에 범국민 한글 살리기 운동과 반MS 운동이 벌어졌다. 결국 한컴은 애초의 발표를 철회하면서 7월 20일 한글지키기운동본부가 공개제안한 투자제의를 수용하고, 10년 가까이 경영을 맡았던 이찬진 사장이 물러나는 것으로 매듭지었다. 이후 한컴은 '한글815'판을 내놓으며 100만 가까운 회원을 모은 뒤에 유통 중심으로 방향을 전환하며 한 해를 마무리지었다.


자금난, 경영난은 한컴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연초에는 한메소프트가 자금난 해소를 위하여 사원들의 주식을 팔려고 내놓았으나 법률적인 문제로 인하여 뜻을 이루지 못했다. 3월 18일에는 현대전자가 PC사업을 포기한다고 밝혔으며, 삼성전자 역시 3월부터 1천명의 명예퇴직을 통한 구조조정을 시작하는 등 컴퓨터 업체 대부분이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9월 30일에는 통합카드의 선두주자 두인전자가, 10월 8일에는 국내 최대의 멀티미디어 보드 생산업체인 가산전자가 부도를 냄으로써 국내 그래픽카드의 쌍두 마차가 모두 무너졌다.


업계는 마이크로소프트사가 8월 11일 출시한 '한글윈도우 98'의 영향력에 한 가닥 희망을 걸었지만 기대와는 달리 '한글윈도우 98'은 별 다른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으며 소비자들도 '한글윈도우 98'의 출시에 무관심했다.


구매심리는 얼어붙었고 소비자의 컴퓨터 구입성향은 저가형과 중고, 리필 제품으로만 움직였다. 특히 리필제품에 대한 관심과 구매가 크게 늘었다. 연초에는 펜티엄MMX 계열의 저가형 PC, 하반기에는 셀러론를 장착한 저가형 PC가 시장을 주도했으며, 1997년에 이어 1998년에도 펜티엄2 컴퓨터는 시장에 진입하지 못했다.


PC와 달리 입출력기 시장에서는 디지털카메라, PC카메라, 포토프린터, 스캐너 등이 큰 폭으로 성장했다. 이는 스티커자판기의 열풍이 불면서 스티커 제작에 대한 관심이 커졌기 때문이다.


불안하고 어수선한 봄 여름을 보내고 많은 업체들이 도산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가을이 왔으나 시장은 오히려 활기에 넘쳤다. PC게임방의 증가가 주요 원인이었다. 한컴사태와 함께 1998년 최대의 화제는 '스타크래프트'와 PC게임방이라고 할 수 있다.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인 스타크래프트는 이상할 정도의 인기 과열 상태에 도달했다. 특히 인터넷을 통한 배틀넷을 즐기기 위해서는 고속의 전용선이 필요했고 이런 수요에 힘입어 전용선을 설치한 PC게임방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이다. PC 게임방 사용자의 80% 정도가 스타크래프트를 하고 있을 정도로 스타크래프트의 인기는 폭발적이었으며 스타크래프트 하나로 게임방이 먹고산다는 말을 누구도 부정하지 않았다. 세계인이 겨루는 배틀넷의 순위 10위 안에 절반 이상이 한국인이며, 정품 CD의 판매량 역시 날마다 국내 게임CD 판매 신기록을 갱신해 나갔다.


PC게임방의 확산과 게임에 대한 관심 고조 속에 국산게임도 크게 발전했다. '템페스트'를 비롯한 국산게임은 높은 완성도로 좋은 반응을 얻어 판매 순위에서도 외국의 게임을 앞질렀던 것이다.


게임방의 급성장은 PC 수요 뿐만이 아니고 관련 분야도 함께 성장하는 토대를 마련했다. 특히 3D그래픽카드, 대형 모니터, PC카메라, 컴퓨터 가구, LAN, 전용선의 수요가 크게 증가했다.


또한 개인용 전용선과 초고속 통신망 사용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덕분에 몇 년 동안 부진하던 ISDN의 보급이 갑자기 증가했으며, 7월 1일부터는 케이블TV망을 이용한 최고 10Mbps의 초고속통신망 서비스인 두루넷 서비스가 시작되었다.


PC통신사 역시 56K 모뎀, 전용선, ISDN의 보급에 발맞추어 전용망인 014xx망의 확충에 나섰다. 인터페이스도 인터넷과 통합된 멀티미디어 통신으로 변화되었다. 또한 PC통신 사업자는 가입자를 한 명 유치할 때마다 1만원을 주는 만원사례, 모뎀 무료 증정 등의 서비스를 앞세워 경쟁적으로 가입자 유치에 나섰다. 그 결과 PC통신사는 가입자 400만, 500만명을 돌파하는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며 놀라운 흑자행진을 계속했다.


그러나 모기업의 경영압박 때문에 각 PC통신사는 홀로서기에 나서며 외자유치에 힘썼다. 10월 9일에는 국내 인터넷 서비스 중견업체인 아이네트가 미국의 PSINet사에 3,400만 달러를 받고 100% 완전 매각됐다고 공식 발표해 외자 유치를 하려는 관련 업계에 충격을 던졌다. 부분적인 외자 유치가 아니라 매각을 통해 미국회사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PSINet은 미국 내에서도 인터넷 접속의 40%를 점유하는 초대형 인터넷 서비스 업체로, 앞으로 국내 인터넷 서비스 업체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통신인구가 늘자 소자본으로 창업할 수 있는 IP 사업 열풍이 불었으며, 음악파일인 MP3 파일을 제공하는 IP들이 큰 인기를 끌었다. MP3 시장이 커지자 새한정보시스템은 2월 12일 세계 최초로 개발한 MP3 플레이어인 MPMAN을 발표하며 판매에 나섰다. 연말에는 삼성전자를 비롯한 여러 회사가 MP3 플레이어의 개발에 참여하면서 다음 세대의 오디오 시장을 MP3 관련 산업이 주도할 것임을 예고했다.


3D 기술의 발전과 PC통신의 보급은 국내에서도 사이버인간을 등장시켰다. 1월 15일 20세의 나이로 데뷔한 사이버 남자가수 아담은 국내에서 만든 사이버인간 1호가 되었다. 이어서 여자 가수 류시아를 비롯하여 스노우, 라이언, 사이다 등 많은 사이버인간이 등장했다.


PC통신의 급성장과 비례하여 어두운 그늘도 많이 자랐다. PC통신을 통한 불법소프트웨어와 매춘 거래가 급증한 것이다. 익명성을 무기로 PC통신의 대화방에서는 성을 거래하는 행위가 성행했으며, 멀티미디어 통신의 장점을 살려 사진을 보고 상대방을 고르는 매춘중개업이 자라났다. 인터넷을 통한 음란물도 홍수를 이루었다. 과거에는 비싼 돈을 주고 매우 어렵게 구입할 수 있던 음란물을 이제는 PC통신을 통하여 쉽게 구할 수 있게 되면서 여러 가지 사회문제가 발생했다. 1998년 한 해 동안 빨간마후라, 몰래카메라, 탤런트L양의 비디오를 비롯한 수 많은 음란물이 PC통신을 통하여 거래되었고 사회적인 문제가 되었다. 불법 소프트웨어의 거래도 대폭 증가했다. 특히 CD레코더와 공CD가 크게 보급되면서 불법제품과 음란물의 복제 거래가 성행했다.


이 때문에 소프트웨어 제작 회사는 불법복제품 사용이 어려운 학교와 공공기관을 시장으로 잡고 개발에 나섰다. 그 결과 초중고등학교용 수업교재나 교사들을 위한 교재 프로그램이 가장 활발하게 개발 판매되었다. 그러나 학교정보화 사업과 관련하여 업자들에게 뇌물을 받은 교사는 물론 교장들까지 무더기로 연루되는 등 학교정보화 관련 비리가 곳곳에서 밝혀지면서 학교정보화사업이 시련을 겪기도 한 해다.


이처럼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거원 오디오제트, 나모의 나모웹에디터, 새롬 데이타맨프로와 같은 프로그램이 외국의 프로그램을 제치고 국내 사용자의 사랑을 받은 것은 큰 위안이 되었다.


1998년 한 해 동안 컴퓨터 업계는 많은 시련을 겪었으나 생각보다 훨씬 슬기롭게 이겨냈다. 1997년에 대부분의 중견업체가 쓰러질 때 내실을 다진 것이 도움이 되었는지 IMF 체제로 무척이나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부도난 회사가 거의 없었다. 가산전자와 두인전자 외에 부도난 업체가 없다는 점은 의외의 결과로 평가되고 있다. 오히려 PC통신시장을 주축으로 정보관련 분야와 멀티미디어 분야가 급성장했으며 구조조정을 통하여 경영내실이 더욱 탄탄해지는 한 해를 보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January 1, 2000

1999년 한국 - 모든 분야가 인터넷 기반으로 재편된 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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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연감: 1999년 한국의 컴퓨터, 정보통신 분야 (글: 김중태)


김중태 사진1999년 한 해 동안 컴퓨터와 정보통신업계는 지난 몇 년 동안의 변화보다 훨씬 많은 변화를 겪었다. 변화의 주역은 인터넷이며, 산업과 생활 모든 분야가 인터넷의 영향권에 들었다.


인터넷 사용자 수는 약 700만 명으로 일 년 사이에 400만 명이 증가했다. 이에 따라 인터넷 사이트의 회원 수도 백 만 단위를 넘어섰다. 다음의 회원 수가 500만 명을 넘은 것을 비롯해, 하늘사랑, 네띠앙, 골드뱅크, 야후코리아 등 100만 명 이상의 회원을 돌파한 인터넷 사이트가 속속 등장했다.


특히 4월에 하나로통신이 시내전화 시장에 진입해 ADSL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초고속인터넷 서비스 경쟁에 본격적인 불이 붙었다. 그 결과 5만 명에 불과하던 초고속 인터넷 사용자 수가 연말에는 60여만 명에 이르렀다. 국내 인터넷의 속도가 Kbps 시대를 마감하고 Mbps 시대로 훌쩍 건너뛴 것이다.


인터넷 인구의 증가에는 정보통신 관련업체의 치열한 광고전과 PC방 보급이 큰 역할을 했다. 1998년초 몇 백 개에 불과하던 전국의 PC방은 1만 5천개 이상으로 크게 증가했다. 특히 3만 여개의 인터넷 전용선 중 절반 정도를 사용하고 있는 PC방은 초고속 통신망이 설치되지 않은 지역의 인터넷 보급에 큰 공헌을 했다.


얄궂은 일이지만 인터넷을 통한 음란물 유통도 인터넷의 열기를 높이는데 일조했다. 연초에 유명 여자 탤런트의 성행위가 담긴 'O양의 비디오'가 인터넷을 통해 유포되면서 전국이 떠들썩했다. 이후로도 인터넷을 이용한 음란물 유통방법과 원조교제, 몰래카메라에 대한 문제가 계속해서 언론을 장식했으며 사회적인 문제로 떠올랐다.


6월 30일부터는 기업이 아닌 개인도 인터넷 주소인 도메인 등록이 가능해졌으며, 9월부터는 정부가 품질을 보장하는 싼 가격의 인터넷PC가 선보였다. 인터넷PC는 PC 가격 하락을 부채질했으며, 인터넷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더욱 확산시켰다.


인터넷 열기는 다양한 사회현상을 만들었다. 그 중에서도 1999년 한 해 동안 전국을 뜨겁게 달군 범국민적 관심사는 정보통신업체를 중심으로 한 주가상승 현상이다. IMF의 터널을 빠져나오는 시기와 정부의 벤처기업 지원정책이 맞물리면서 벤처창업 열기가 전국을 휩쓸었고, 인터넷 인구의 증가와 초고속인터넷 서비스 시장의 확산, 코스닥 시장의 활황으로 인해 벤처기업의 주가가 끝없이 상승했다. 그 결과 수 천 억 원을 순식간에 거머쥔 벤처재벌이 속속 탄생했다.


전년에 부도 위기까지 몰렸던 한글과컴퓨터는 시장가치 40억의 회사에서 1조원에 육박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자본금 14억에 불과했던 다음커뮤니케이션 역시 11월 초에 코스닥에 등록하자마자 한 달 이상 상한가를 계속해 순식간에 주식가치가 1조원에 육박했다. 벤처업체라면 회사 가치가 상승했으며, 인터넷 관련업체라면 무조건 투자하는 '묻지마 투자'도 성행했다. 거품론의 우려 속에서도 인터넷 관련업체는 기록적인 성장신화를 남겼으며 투자 자금도 증권거래소에서 정보통신업체가 등록되어 있는 코스닥 시장으로 점차 넘어갔다.


인터넷은 전통적인 컴퓨터 분류법도 변화시켰다. 하드웨어와 소트프웨어의 양분법은 의미를 잃었다. 소프트웨어를 포장해 판매하는 대신 인터넷을 통해 빌려쓸 수 있는 ASP(Application Software Provider)사업이 새로운 소프트웨어 유통방법으로 정착되기 시작했다. 더 나아가 소프트웨어 시장은 포장상품의 개념이 축소되고 인터넷을 통해 제공되는 서비스의 개념으로 바뀌었다.


사람들은 인터넷에 접속된 상태에서 문서나 연하장을 만들어 발송했다. 인터넷을 이용한 무료전화, 쪽지 보내기, 화상대화, 온라인 게임 등 많은 서비스가 새롭게 선보였다. 연하장 만드는 프로그램을 통신으로 받은 뒤에 연하장을 만들어 전자우편으로 보내는 방식은 구식이 된 것이다.


온라인 게임 시장도 크게 성장했으며, 새로 출시된 대부분의 게임은 온라인 게임을 지원했다. 프로그램을 만들어 파는 과거의 소프트웨어 시장 대신 인터넷에서 모든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서비스 시장으로 바뀌어간 것이다.


인터넷은 컴퓨터업계와 다른 업계의 경계선도 무너뜨렸다. 9월에는 무선전화 가입자 수가 2103만 명으로 늘어나 2078만 명의 유선전화 가입자 수를 추월했는데, 이들 무선전화 업체들은 전화회사가 아닌 무선인터넷 회사를 표방했다. 유선전화 회사도 초고속인터넷 서비스 회사임을 내세웠다. 이동전화 단말기 역시 인터넷 검색 기능이 추가된 신제품이 봇물처럼 출시되었다. 심지어는 인터넷 검색기능이 추가된 가전제품이 출시될 정도였다. 따라서 인터넷 검색 기능이 든 제품을 컴퓨터 제품이냐 아니냐로 분류하는 일은 매우 어려워졌으며, 더 나아가 이런 분류작업의 의미조차 없어졌다. 컴퓨터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인터넷 검색 제품이냐 아니냐가 더 중요한 분류 기준이기 때문이다.


인터넷의 생활화는 이처럼 모든 분야를 인터넷 기반으로 재편시켰다. 각 기관의 서비스가 온라인화되었고, 전자상거래가 활성화되었다. 기업간 전자상거래는 물론, 기업과 소비자, 개인간의 전자상거래도 크게 늘어 생산 유통 서비스의 모든 과정에 대대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인터넷을 통해 쇼핑 경매 은행업무 주식거래를 하는 인구도 크게 늘었다. 사이버 쇼핑몰은 전 년의 4백 개에서 1200개로 늘어났다. 12월에는 사이버거래가 증권거래의 40.2%를 차지했으며, 이중에서 91%가 인터넷을 이용했다. 생활정보지의 의존도가 크던 중고용품 매매나 경매도 인터넷 기반으로 재편되었다. 택배로 보낸 물건의 배송경로를 인터넷을 통해 확인해볼 수 있으며, 창고의 필요성도 크게 줄었다. 전통적인 편지, 팩스, 연하장의 수요는 줄어든 반면 전자우편과 인터넷 쪽지 기능, 인터넷 채팅, 인터넷 카드, 인터넷 팩스, 인터넷폰 등의 수요는 크게 늘었다.


불과 일 년 사이에 생산, 유통, 서비스, 금융, 공공기관의 서비스 등 모든 분야가 인터넷 기반으로 재편되거나 재편 과정에 들어간 것이다.


인터넷과 함께 1999년 한 해 동안 정부와 기업, 국민의 관심을 집중시킨 주제는 Y2K 문제다. 정부와 기업은 컴퓨터의 날짜 인식에 오류가 생겨 컴퓨터 오동작이 일어날 수 있다는 '2천년(Y2K) 인식 오류 문제'의 예방책에 모든 역량을 집중시켰다. 4월에는 전 세계를 강타한 멜리사 바이러스와 CIH 바이러스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국내에서도 많은 피해가 발생했다. 바이러스 피해 사건은 Y2K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더욱 고조시킨 계기가 되었다.
소프트웨어 쪽의 가장 큰 변화는 리눅스의 강력한 세력화다. 리눅스가 한글화되어 보급되었고, 리눅스 관련업체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컴퓨터 잡지의 리눅스 관련 기사 비중도 높아졌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윈도 계열 운영체제의 대안으로 리눅스가 큰 세력을 형성하며 떠오른 것이다.


기업간의 대형 인수합병도 있었다. 8월 26일 대우그룹 12개사에 대한 정부의 워크아웃 결정이 내려짐에 따라 오랜 기간 동안 국내 전자산업의 한 축을 담당하던 대우전자가 무너졌다. 또한 현대전자가 LG반도체를 인수해 D램시장 점유율 20.8%의 세계 시장 1위의 메모리 반도체 업체로 재탄생했다. 9월 21에는 대만에서 지진이 발생해 반도체와 각종 부품 공급에 문제가 발생했다. 국내의 메모리 가격도 3배 이상 폭등했으며 대만산 부품 의존도가 높은 전자상가와 중소업체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이처럼 굵직한 소식이 많은 한 해였지만 1999년은 인터넷 생활화와 초고속 통신망 보급이 본격화된 해이며, 모든 생활과 산업이 인터넷 기반으로 재편된 한 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인터넷 중심의 변화는 2000년에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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