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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6년 한국 - 가전제품이 된 PC와 압력단체로 부상한 PC통신인



IT문화원 컬럼. 1997년 01월 01일. URL: http://www.dal.kr/col/britannica/bri1996.html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연감: 1996년 한국의 컴퓨터, 정보통신 분야 (글: 김중태)


486컴퓨터의 단종으로 시작한 1996년의 PC시장은 연말에 펜티엄프로 시장으로 변화했으나 컴퓨터시장의 세계적인 불황과 한국 경제의 침체로 인한 불황의 늪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이 와중에 삼성전자는 업계 최초로 PC부문 매출 1조 원을 돌파하면서 시장점유율이 늘어난 유일한 업체가 되었는데, 본격적으로 형성된 노트북시장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또 이런 국산노트북의 활약에 힘입어 저가의 대만산 노트북컴퓨터는 시장에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네트워크컴퓨터(NC)와 휴대형PC(HPC), PDA, TTS 등의 음성인식 기술을 이용한 PC, 3D 그래픽카드 등의 신제품이 시장에 출시되었으나 사람들은 신기술보다 속도 향상과 용량 증대에 더 힘을 쏟았다. 좀더 빠른 인터넷에 대한 욕구는 33600bps급의 모뎀이 등장하자마자 28800bps급 모뎀을 순식간에 몰아냈으며, 씨디롬드라이브는 4배속에서 6배, 8배, 10배, 12배속을 거쳐 16배속 제품까지 출시되었다. 하드디스크는 2~3기가바이트급이 팔려나갔고, 300만대나 판매된 ZIP드라이브와 JAZZ 드라이브는 플로피디스크 드라이브를 대체할 고용량 저장매체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반면 1996년 초부터 출시되어 씨디롬을 대체할 것이라는 DVD의 시장진입은 1996년에도 실패했다. 연말이 되었을 때 DVD가 출시되었으나 사람들은 오히려 씨디롬드라이브의 속도경쟁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고, 8배속이나 10배속에서 씨디롬드라이브 생산을 중지하려던 국내 업체들은 16배속까지 만들어냈다.

가장 큰 변화는 램에서 일어났다. 근 십 년 가까이 메가당 3~4만원을 유지하던 램 가격이 무려 십분의 일 가격으로 폭락하면서 16메가 램이 5만원대에 팔렸고, 소비자는 PC가 판매된 이후 처음으로 부담감 없이 메모리를 확장할 수 있었다.

하드웨어의 뜀박질에 비해 소프트웨어 쪽은 여전히 조용했다. 연초에 웹브라우저 시장에서 MS사의 익스플로러와 네트스케이프사의 네트스케이프가 치열한 경쟁을 벌이면서 프로그램을 무료로 공급했으나 3.0판 이후부터는 소강상태에 빠졌다. 단지 한글윈도우95가 컴퓨터 출하시에 기본적으로 탑재되어 팔려나갔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핸디소프트가 일본에 1천만달러 상당의 소프트웨어 수출계약을 체결한 일과 정부의 국산소프트웨어 지원책으로 인하여 정부의 국산 소프트웨어 구매규모가 종전보다 3배 이상 늘어나게 된 일은 침체된 소프트웨어 산업의 활력소가 되었다.

일반적인 소프트웨어의 침체와는 달리 대기업, 언론사, 기관, 대형출판사 등의 대형업체들이 참여한 씨디롬타이틀 시장은 양적인 면과 질적인 면에서 눈에 뜨일 정도로 성장했으나 대부분 교육용에만 치우쳤다는 아쉬움을 남겼다. 또한 시장은 크게 팽창했으나 경쟁이 치열해져 소비자 판매가격과 대리점 공급가격의 차이가 거의 없을 정도로 시장이 혼탁해졌다. 결국 매출만 늘고 이익이 줄어드는 바람에 씨디롬 관련 업체 대부분이 채산성이 더욱 나빠진 우울한 한 해를 보내야 했다.

1995년에 열병처럼 번지던 기업간의 입수나 합병은 거의 없었으나 11월에 설립된 LG-IBM사는 세계적인 업체와의 합작이라는 점에서 업계를 긴장시켰다. 이에 경쟁사인 삼성전자와 삼보컴퓨터는 이전의 경쟁사인 세진컴퓨터에 자사의 제품을 공급하는 전략으로 LG-IBM을 견제하기 시작했다.

전반적인 불황 속에서도 정보통신 쪽만은 크게 성장했다. 1996년에 모든 언론은 인터넷과 PC통신으로 지면을 채웠고, 기업들 역시 인터넷과 인트라넷에 관심을 보였다. 인터넷 이용자는 1995년말의 2배인 75만 여명이 되었고, 사용기관은 3배 이상 늘어난 2천 4백여 곳이 되었다. 도메인 개설 건수는 7만 개에 달했고, 2차 인터넷서비스제공업체(ISP)를 비롯한 ISP의 수가 늘면서 인터넷 사용요금의 인하 경쟁이 불붙었다.

또한 1996년 1월부터 영업을 시작한 삼성데이타시스템의 유니텔을 포함한 4대 PC통신사의 사용자도 170여만명으로 급속하게 늘어났다. 덕분에 10년 동안 적자에 허덕이던 PC통신사들은 처음으로 흑자로 돌아섰다.

사용자의 증가는 PC통신망을 새로운 압력단체로 부상시켰다. PC통신을 통해 밝혀진 룰라의 '천상유애'와 김민종의 '귀천도애' 표절 사건은 가수활동 중단으로 이어졌고 PC통신은 강력한 힘을 가진 새로운 매체로 떠올랐다. 영화광고는 PC통신인들의 소감을 실었고, PC통신을 이용한 방송 프로그램이 급속하게 증가했다. PC통신망의 게시판은 우스개와 소설의 새로운 창작 경연장이 되었으며 빠떼루 아저씨를 비롯하여 많은 대중스타를 배출하기도 했다. MS사의 씨디롬에서 독도를 일본 영토로 표시한 사건을 비롯하여 여러 사회현상과 사건이 PC통신을 통해서 토론되거나 제보되었고, 언론은 이를 적극 활용했다. 그러나 사용자의 증가로 인한 회선 부족, 속도 느려짐, 불안정성이 커지면서 사용자들의 불만 역시 점점 커지고 있다.

2조 6천 억원에 달하는 PC시장은 주요 가전제품을 합친 내수시장의 70%를 차지할 정도였고, 혼수품에 PC가 들어갈 정도로 PC는 가전제품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그러나 1996년에 가장 성공한 쪽은 PC판매가 아니라 인터넷과 PC통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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