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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7년 한국 - 부도의 회오리 속에 해외진출의 가능성을 엿본 한 해



IT문화원 컬럼. 1998년 01월 01일. URL: http://www.dal.kr/col/britannica/bri1997.html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연감: 1997년 한국의 컴퓨터, 정보통신 분야 (글: 김중태)


1997년 한국의 컴퓨터 업계는 부도로 시작하여 부도로 끝난 사상 최악의 한 해로 기록될 것이다. 한보그룹 부도로 시작한 국내 그룹의 연쇄 부도와 어려운 경제 사정은 컴퓨터 업계를 연말까지 부도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1월 29일 한국 IPC의 부도를 시작으로 아프로만, 세양정보통신, 멀티그램, 한국소프트정보통신, 큐닉스컴퓨터, 선인교역, 뉴텍컴퓨터 등 대형 업체들이 계속해서 쓰러졌다. 일 천 개가 넘는 중소업체가 함께 쓰러졌고 5,000억 원이 훨씬 넘는 피해를 냈다. 이 여파로 3월 29일 서초동에 문을 연 국제전자센터는 입주업체도 채우지 못한 상태로 일 년을 보내야 했으며, 대우통신이 경영권을 완전히 인수한 세진컴퓨터랜드의 판매량도 작년보다 20% 정도가 줄어드는 등, 중견 업체 대부분은 판매량이 줄거나 부도의 회오리에 휘말려야 했다.


중견 업체의 연쇄 부도는 빠른 속도로 시장을 대기업 중심으로 재편했다. 그러나 대기업 역시 외형적인 성장과는 달리 실익이 적은 어려운 한 해를 보냈다. 삼성은 월 평균 5만 대 이상의 PC를 판매하며 국내 시장 1위를 차지했으나 경상 수지는 적자를 기록했다. 반면 지난해 말 합작한 LG-IBM은 IBM에 대한 기술 신뢰도와 LG의 유통망이 상승효과를 가져오면서 30% 이상 성장했으며, 브랜드 이미지도 높아졌다. 삼보, 대우, 현대 역시 10~30% 정도의 판매 성장을 기록했다.


전반적인 불황 속에서도 성장을 계속한 분야는 기업 전산화 부문과 PC통신, 홈쇼핑 분야였다. 1997년 한 해에만 100여 개가 넘는 홈쇼핑 몰이 인터넷에 개설되었는데, 롯데 백화점의 경우 하루 평균 5만 여건의 접속과 1억 원이 넘는 매출을 기록할 정도로 성장했다. 인트라넷을 이용한 사내 경영이 확산되면서 전자문서관리시스템(EDMS), 전사적 자료관리(ERP), 자료관리(DBMS), 그룹웨어 분야 업체들의 약진이 두드러졌고, 몇몇 업체는 이런 성장에 힘입어 해외 시장 진출을 위한 기반을 만들었다.


그러나 1997년 한 해 가장 잘 나간 분야는 PC통신 분야다. 데이콤, 한국PC통신, 나우콤, 삼성SDS 등 국내 4대 통신망은 모두 흑자를 기록했는데, 유료가입자가 전년 대비 50% 이상 증가하여 350만 명 이상의 유료 가입자를 확보한 것이 큰 힘이 되었다.


인터넷 가입자 역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한국통신은 지난 해보다 무려 100% 늘어난 3만2천 여명의 개인과 1천5백 개의 기관을 가입시켰으며, 데이콤, 아이네트, 현대정보기술, 한솔텔레콤 역시 100~500%라는 놀라운 가입자 증가를 보였다.


시장이 커지자 PC통신 사업에 뛰어드는 업체도 늘어났다. 특히 10월 28일 상용 서비스를 개시한 SK텔레콤의 네츠고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통신서비스를 시작했다는 점에서 주목받았으며, LG인터넷도 인터넷 기반으로 PC통신 시장에 참여할 것을 발표했다. PC통신 업체의 치열한 경쟁은 새로운 서비스 개발로 나타났다. 각 업체는 더욱 뛰어나고 편리한 전용 접속 프로그램을 만들었으며, 멀티미디어 기반으로 통신환경을 바꾸어나갔다. 4월에는 무선데이터통신 시장도 생겼다. 여기에 인터넷을 이용하여 싼 가격으로 국제전화와 국제팩스를 사용할 수 있는 인터넷폰과 인터넷팩스 시장의 성장은 기존의 국제전화 시장을 뒤흔들면서 PC통신과 전화 시장의 경계선을 허물었다. 7월 1일부터는 유니텔에서 고속 PC통신인 56K 회선 서비스를 개시했으나 56K 모뎀의 표준이 정해지지 않은 까닭에 US로보틱스사의 X2 진영과 록웰사의 K56Flex 진영이 시장선점을 위한 치열한 표준경쟁을 벌였다. 국내 통신망 역시 두 진영으로 나뉜 채 서비스를 제공하는 바람에 56K 표준 논쟁은 PC통신 업계의 골치거리로 대두되었다.


PC통신의 대중화는 사회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쳤다. 상반기에는 인터넷으로 유명해진 누드 모델 이승희 열풍이, 하반기에는 영화 '접속'의 열풍이 불었다. 삼성SDS가 유니텔 홍보를 위해 지원한 '접속'을 통해서 젊은이들은 PC통신을 더욱 환상적으로 인식하게 되었으며, PC통신 가입자가 갑자기 급증하는 현상을 보였다. 연말에는 대통령 선거와 대입 지원 기능의 일부를 PC통신이 맡으면서 PC통신은 사회 전 분야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매체로 위상이 더욱 높아졌다.


이처럼 PC통신이 일반인의 세계로 확장되자 가상현실과 실제 현실 세계의 가치관 혼돈 문제가 화두로 떠올랐다.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으로 이승희의 체모가 드러난 사진을 감상했으며 언론은 앞장 서서 이승희의 열풍을 부채질했으나, 정작 이승희 홈페이지를 개설한 개인은 음란물 게재 혐의로 입건되는 등 사이버 스페이스의 가치관과 현실의 가치관이 불일치하는 문제를 나타냈기 때문이다.


특히 현실 세계의 저작권 보호 문제와 PC통신의 정보공유 정신은 'MP3 파일 삭제 사건'을 계기로 정면 충돌했다. 통신인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MP3라는 형식의 파일로 만들어 통신을 통해 배포했고, MP3 음악파일은 통신인과 통신업체, 음악업계의 시비거리로 떠올랐다. 결국 대형 통신망의 모든 MP3 파일 삭제와 통신인들의 항의 사태, MP3 파일의 유료 제공으로 일단 매듭지어졌다. 그러나 통신인은 갖가지 편법을 이용하여 음악파일을 지속적으로 배포하는 등 아직까지도 저작권 문제에 대한 가상 세계의 가치관과 현실 세계의 가치관이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업계 전체의 전반적인 불황은 가격파괴와 지속적인 가격하락을 몰고 왔다. 반도체의 경우 12월 들어 국제시장에서 16M D램이 2달러까지 떨어지면서 국내시장에서도 가격이 폭락했고 채산성이 극도로 악화되었다. 부도 회사의 물건이 덤핑으로 시장에 흘러다녔고, 새로운 기술의 개발로 상품의 생명주기도 짧아졌다. 년초에 발표된 새 CPU인 MMX 칩은 연말 쯤 시장에 확산될 것으로 예상했으나 상반기 시장을 주도했으며, 하반기에는 펜티엄II로 시장의 흐름이 바뀌면서 CPU의 생명 주기가 극도로 짧아졌다. 한편 LG와 삼성전자에서 새로운 형태의 PC인 넷PC와 2세대 HPC를 선보였으나 일반인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의 관심은 멀티미디어와 컬러 구현 기술에 집중되었다. 이에 따라 24배속 시디롬드라이브와 고용량 하드디스크, 사진처럼 출력을 해주는 포토 잉크젯 프린터, 저렴한 가격의 600dpi 고해상도 레이저 프린터, 20만 원 대의 컬러 스캐너, 첨단 기능의 사운드카드와 그래픽 카드, 가격이 폭락한 램, 56K 고속모뎀 등이 인기를 끌었다. 컬러 스캐너와 컬러 프린터의 보급은 위조지폐범의 등장을 부추기는 역기능을 낳기도 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컴퓨터를 이용한 컬러 표현과 멀티미디어 구현에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반면 CD롬드라이브를 대체할 것이라던 차세대 미디어 DVD는 1997년에도 대중화에 실패했다. 더구나 32배속 CD롬드라이브 출시, 100MB의 저장용량을 가진 ZIP 드라이브의 보급 확산, 이지플라이어, 슈퍼디스크, 650MB 용량의 PD, 1.5GB 용량의 사이젯 등 새로운 고용량 저장장치가 자리를 잡아가는 현실과 비교해볼 때 DVD가 과연 다음 세대의 저장매체로 자리를 잡을 수 있는지조차 의심될 정도였다.


하드웨어와는 달리 소프트웨어 시장은 조용했다. 사무용 프로그램에서 '한컴오피스 97'과 국내 시장의 80%를 장악하고 있는 'MS 오피스 97', 인터넷 프로그램에서 '네트스케이프 커뮤니케이터 4.3'과 '익스플로러 4.0'이 경쟁했을 뿐이다. 게임분야가 인기 행진을 지속했으나 게임 시장의 수익금 대부분이 비싼 로열티로 지급된 까닭에 매출은 커진 반면 실익은 없다는 비평을 받았다.


전반적인 불황과 침체된 분위기 속에서도 통신 접속 프로그램인 '새롬 데이타맨 프로'는 PC통신에서 60만 명 이상이 받아가는 돌풍을 일으켰으며, 18세 소년이 만든 저작도구인 '칵테일 97' 역시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창세기전.2' 등의 국산 게임도 큰 성장을 이루었다. 그리고 이런 국산 소프트웨어의 새로운 돌풍을 바탕으로 '새롬기술' '화이트미디어' '핸디소프트' '나눔기술' 등 많은 벤처 기업들이 해외시장으로 진출한 일이 그나마 침체에 빠진 컴퓨터 업계의 큰 위안이 되었던 한 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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