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한국 - 모든 분야가 인터넷 기반으로 재편된 한 해
1999년 한 해 동안 컴퓨터와 정보통신업계는 지난 몇 년 동안의 변화보다 훨씬 많은 변화를 겪었다. 변화의 주역은 인터넷이며, 산업과 생활 모든 분야가 인터넷의 영향권에 들었다.
... 특히 4월에 하나로통신이 시내전화 시장에 진입해 ADSL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초고속인터넷 서비스 경쟁에 본격적인 불이 붙었다. 그 결과 5만 명에 불과하던 초고속 인터넷 사용자 수가 연말에는 60여만 명에 이르렀다. 국내 인터넷의 속도가 Kbps 시대를 마감하고 Mbps 시대로 훌쩍 건너뛴 것이다.
1998년 한국 - 시련극복 속에 내실 성장을 이룬 1998년
1997년의 부도 여파가 진정되기도 전에 또 다시 IMF 체제를 맞이한 1998년의 컴퓨터 산업은 이익을 내기에 앞서 살아남는 것이 최우선 목표가 되었다.
... 1998년 컴퓨터 업계를 강타한 최대 사건은 한컴사의 '한글' 파동이다. 경영난을 이유로 마이크로소프트로사로부터 2천만 달러를 지원받는 대신 '한글' 프로그램 개발과 판매를 포기하겠다는 한컴사의 발표는 정부와 사회, 국민 전체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1997년 한국 - 부도의 회오리 속에 해외진출의 가능성을 엿본 한 해
1997년 한국의 컴퓨터 업계는 부도로 시작하여 부도로 끝난 사상 최악의 한 해로 기록될 것이다. 한보그룹 부도로 시작한 국내 그룹의 연쇄 부도와 어려운 경제 사정은 컴퓨터 업계를 연말까지 부도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1월 29일 한국 IPC의 부도를 시작으로 아프로만, 세양정보통신, 멀티그램, 한국소프트정보통신, 큐닉스컴퓨터, 선인교역, 뉴텍컴퓨터 등 대형 업체들이 계속해서 쓰러졌다. 일 천 개가 넘는 중소업체가 함께 쓰러졌고 5,000억 원이 훨씬 넘는 피해를 냈다.
1996년 스페셜리포트 - Deep Blue
1996년 2월에 세계 최고의 체스 선수인 개리 카스파로프(Garry Ksaparov)와 세계 최고의 체스 경기 컴퓨터인 "Deep Blue"는 6번의 체스 대국 중 첫 번째 판을 두었는데, 딥 블루가 그 첫 번째 경기에서 카스파로프를 이김으로써 전 세계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마침내 기계가 인간과 같은 지능 수준에 도달했다는 것일까?
1996년 미국 - 웹의 확장과 회사간 합병 속에 크레이가 사망하다
1996년은 인터넷 월드 와이드 웹의 해였다. 1996년말에 이르러서는 심지어 비전문가인 일반 대중도 "넷"과 "웹"이란 단어를 스스럼없이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대중적 공감대가 확산되었다. 회사규모에 관계 없이 수 많은 회사들이 인쇄물과 TV광고에 자신들의 웹 사이트 주소를 넣기 시작했다. AT&T와 MCI 사와 같은 거대 전자통신기업들도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는 아메리카 온라인이나 컴퓨서브 또는 소규모의 수 백 개 기업과 경쟁하면서 자사의 고객들에게 인터넷 접속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1996년 한국 - 가전제품이 된 PC와 압력단체로 부상한 PC통신인
사용자의 증가는 PC통신망을 새로운 압력단체로 부상시켰다. PC통신을 통해 밝혀진 룰라의 '천상유애'와 김민종의 '귀천도애' 표절 사건은 가수활동 중단으로 이어졌고 PC통신은 강력한 힘을 가진 새로운 매체로 떠올랐다. 영화광고는 PC통신인들의 소감을 실었고, PC통신을 이용한 방송 프로그램이 급속하게 증가했다. PC통신망의 게시판은 우스개와 소설의 새로운 창작 경연장이 되었으며 빠떼루 아저씨를 비롯하여 많은 대중스타를 배출하기도 했다.
1995년 스페셜리포트 - 사이버스페이스(참아닌공간)
사이버스페이스란 낱말은 꿈과 현실 양 쪽에서 오늘날의 기술 역할에 관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현재의 통신수단을 지배하는 사회와 경제적 이론에 관해 새로운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사이버스페이스가 우리의 경제구조와 사회개발 그리고 자유시민으로서의 권리확보에 중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하나의 분야가 되었다는 사실에 의견의 일치를 보게 된 때는 1995년초다.
1995년 미국 - 월드와이드 웹의 세력이 강화된 해
1995년에 컴퓨터 업계를 주도한 두 가지 흐름은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새로운 퍼스널 컴퓨터 운영체제인 윈도우즈 95의 출시와 인터네트 월드 와이드 웹의 세력 강화다.
윈도우즈와 인터네트 웹은 1995년 내내 엄청난 관심을 불러 일으켰으며 그 결과 95년 말에 이르러서는 텔레비전 리모트 컨트롤만큼이나 마우스란 컴퓨터제품도 전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잘 알게 되었다.
1995년 한국 - 떠오르는 인터넷, 변화하는 유통체계, 변함 없는 한글 논쟁
매년 논쟁이 끊이지 않는 한글코드 문제는 마이크로소프트사 덕분에 연초부터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았다. 마이크로소프트사가 한글윈도95에서 조합형을 지원하기로 했던 약속을 저버리고 자사의 이익을 위해 완성형을 채택한 일이 문제였다. 사용자의 반발에 밀린 마이크로소프트사는 완성형을 수정한 확장완성형코드를 들고 나왔지만 한글 창제원리에 맞지 않는다는 기본적인 문제를 그대로 지녔기 때문에 사용자와 언론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