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터넷정보센터(KRNIC)는 2001년 1월에 한글도메인 등록서비스를 연기한다고 밝히며 두 가지 연기 사유를 들었다. 기술적 사항으로는 다국어도메인 이름 관련 국제표준이 아직 확정되지 않아 국내에서 독자적으로 적용하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었다. 그러나 자국어 도메인 서비스는 국제 표준과 관련 없이 독자적으로 실시하는 서비스이므로 이유가 되기 어렵다. KRNIC는 얼마 전까지 계층적 방식과 키워드 방식 중에서 어떤 방식을 선택할 것인가를 고민했으며, 이미 민간업체에서는 키워드 방식의 자국어 도메인 서비스를 실시중이다. KRNIC에서도 키워드 방식을 선택했다면 국제표준 여부에 상관 없이 한글도메인 등록서비스를 실시했을 것이다.
두 번째 연기 이유는 제도적 사항으로 2단계 등록 방안(한글.kr)과 3단계 등록 방안(한글.기업.kr) 또는 병행 방안이 결정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마도 계층 단계를 결정하지 못한 두 번째 이유가 실질적인 연기 이유일 것이다.
2단계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실질적인 도메인 사용자들이다. 기업측에서는 '아가달.kr'과 같은 2단계를 원하고 있다. 기관 도메인을 삽입하여 '아가달.기업.kr'이라고 쓸 경우 도메인 이름이 길어진다. 이는 기억하기도 어려우며 입력시간도 늘어나 사용자의 불편과 경제적인 생산성 저하를 가져온다. 이에 비해 3단계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2단계를 사용할 경우 기관 분류가 어렵다는 논지를 내세운다. '청와대.kr'이라고 하면 청와대 식당인지 정부기관인지 구별이 안되므로, '청와대.기업.kr'과 '청와대.정부.kr'로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두 주장 모두 틀리지 않다. 이름만으로는 기관 분류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도서관에 가보면 정보통신연구원이라는 민간 출판사에서 나온 책을 정부간행물로 분류해놓은 경우를 볼 수 있다. 시공사라는 출판사의 시도별 대리점이 앞에 지역명을 덧붙여 도메인을 신청하면 '서울시공사.kr' '부산시공사.kr'이라는 도메인 이름이 되는데, 이름만 보면 서울시의 공사(공기업) 관련 사이트로 착각할 것이다.
최근까지도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 구권화폐 사기사건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정부기관이나 종교단체를 사칭한 대규모 사기극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2단계 도메인 이름은 변별력 저하를 이용한 악용의 위험성이 있다. 반면 3단계를 사용할 경우에는 경제적인 효율성이 떨어진다.
결국 두 가지 방법 모두 큰 단점을 가지고 있다. 일각에서 내놓은 동시 병행방법 역시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이다. 2단계와 3단계를 함께 서비스하고 동시에 등록해 사용하는 방법이 있다. 예컨대 아가달이라는 회사가 '아가달.kr'과 '아가달.기업.kr'로 등록해 사용자가 어떤 도메인을 입력하더라도 아가달 사이트로 접속이 될 수 있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사용자가 이중으로 등록 관리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지만 '청와대.kr'이 '청와대.기업.kr'과 '청와대.정부.kr' 중에서 어느 쪽의 도메인이냐는 혼란을 가져오므로 앞의 두 방법보다 더 혼란스럽다.
그렇다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내가 제시하는 방법은 기업은 2단계로, 기타 기관은 3단계로 등록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이미 국제 도메인 체계에서 사용하고 있는 방법이다.
현재 인터넷 도메인은 ccTLD(.kr, .jp)와 iTLD(.int), gTLD(.com, .net, .org, edu), sTLD(.gov, .mil)로 구분된다. 처음에는 gTLD도 미국의 기관만 사용했던 도메인이다. 몇 년 전만 해도 미국의 회사는 국가도메인을 붙이지 않고 기관 도메인인 '.com'으로 끝난 반면, 미국 외의 국가는 ccTLD 방식에 따라 국가 도메인까지 덧붙여야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기업은 '.기업'이라는 기관 도메인을 붙이지 않고 사용하며, 기타 기관만 '.종교' '.정부' 등의 기관 도메인을 붙이는 방법이 효율적이다.
'기업 2단계, 기타 기관 3단계' 방식의 효율성을 통계로 살펴보자. 2000년 12월 31일 기준으로 KRNIC에 등록된 co.kr 도메인의 수는 454,597개로 85.86%를 차지하고 있다. 기타 도메인은 pe가 31,891개로 6.16%, ac 831개(0.16%), re 992개(0.18%), ne 5991개(1.16%), or 16,127개(3.12%), go 699개(0.14%), region 6,296개(1.22%) 등이다.
가장 많은 우려를 표시하는 정부기관의 도메인 등록 수는 불과 0.14%에 불과하다. 기타 도메인 역시 개설된 홈페이지는 적으며, 접속자 수나 페이지뷰를 기준으로 한다면 상업적인 몇 개 사이트의 접속자 수와 페이지뷰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기타 도메인의 등록비율이 14%에 달하지만 실제로 인터넷 사용자의 사용시간 비율로 따지면 그보다 한참 떨어지는 미미한 수준이다. 어쩌다 사용하는 도메인의 기관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3단계를 채택하는 것은 분명 비효율적이다. 그러나 사용 비율을 떠나 기관 도메인의 변별력을 높이는 일 역시 중요하다.
상업적 사이트는 2단계로 등록하고 다른 기관은 3단계로 등록하는 방법은 그래서 가장 적합한 방식이다. 이 방식을 사용하면 변별력과 경제성을 모두 얻을 수 있다. 상업적 사이트는 '청와대.kr'이나 '서울시공사.kr'처럼 2단계를 사용하므로 경제적 효율성을 살릴 수 있다. 그리고 다른 기관은 '청와대.정부.kr' '불국사.종교.kr'처럼 기관 도메인 여부로 쉽게 구분할 수 있다.
한글도메인 등록 서비스는 토론을 거쳐 다시 시행될 것이다. 이때 KRNIC가 2단계나 3단계 중의 하나를 선택하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한다. '기업 2단계, 기타 기관 3단계'의 등록 방식을 채택하는 현명한 결론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