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나는 사이버스페이스의 특징, 대처방안 등에 관한 글을 많이 발표했는데, 내가 일관되게 이야기했던 주장이 있다. 음란물보다 폭력물이 훨씬 위험하며, 사이버스페이스와 현실공간의 경계를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문화적 기준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7년 전에 '에이텔'의 사보에 연재했던 컬럼의 일부를 살펴보자.
- 컴퓨터로 야한 그림을 본다고 해서 범죄에 물드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폭력비디오를 보고 살인을 모방하는 것처럼, 폭력적인 컴퓨터게임을 보고 모방할 가능성은 많으며, '참아닌 공간(사이버 스페이스)'에서 이루어지는 일을 실제 현실처럼 여기고, 방구석에서 컴퓨터만 만지면서 만족감을 얻으려는 폐쇄적인 청소년들이 많아질 것으로 생각한다. 음란한 그림보다 '모탈컴배트'와 같은 잔인한 폭력게임이나 일본서 유행하는 'PC9800' 호환 기종의 성폭력게임을 더욱 우려하는 까닭은, 현실과 참아닌 현실의 구별을 못하는 데서 오는 강한 모방충동의 욕구를 염려하기 때문이다. -
옛글을 다시 꺼내는 이유는 내가 예상하고 염려했던 사건들이 오늘날 계속 발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이버중독증에 대한 일반인의 경계심이 아직도 둔하며, 대부분의 부모들이 대처방법을 모르고 우왕좌왕하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2001년 3월 5일, 게임에 빠져있던 14살 중학생이 10살 짜리 동생을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게임 속 아이템인 도끼를 구해 날을 세운 뒤에 살해한 사건으로 사회에 충격을 주었다. 물론 그전에도 온라인 게임 상의 싸움이 번져 아이템을 뺏긴 사용자가 상대방을 찾아가 폭행한 사건 등 많은 폭력사건이 있었다. 그러나 초등학생 살인 사건은 '사이버스페이스와 현실을 구분하지 못한 모방충동의 욕구'에 의해 청소년이 저지른 범죄사건이라는 점에서 매우 심각하다.
이번의 살인 사건 외에도 자살 사이트를 통한 청부살인, 청소년의 연쇄 자살, 폭탄 제조 사이트를 통해 익힌 폭탄의 실제 적용 등, 최근 들어 '참아닌 공간(사이버 스페이스)'과 참 공간(현실 공간)의 경계를 명확하게 파악하지 못하는 청소년들의 모방충동 욕구가 현실 세계에서 지속적으로 실천에 옮겨지고 있다.
사건이 터지고 언론에서 사이버중독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지만 많이 늦었다. 인터넷이 아직 전문가의 영역이던 1990년대 초반부터 내가 이 문제를 줄기차게 제기했던 이유는 사이버중독증이 광우병처럼 잠복기간이 있는 병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최근 일어난 일련의 사건은 몇 달 또는 몇 년 전부터 점차적으로 사이버세계에 중독된 결과 발생한 일이며, 몇 시간 동안 게임을 했다고 발생하는 사건이 아닌 것이다. '살인을 해볼까? 폭탄을 만들어볼까?'라는 욕구를 처음에는 억제할 수 있지만 매일매일 게임을 하면서 욕구를 키우다보면 어느새 욕구가 억제력과 판단력보다 더 커지는 시기로 변환되는 것이다. 물론 이번 살인사건처럼 극단적인 사건이 자주 일어나지는 않겠지만 다양한 형태로 사이버중독증의 피해가 발생할 것이다.
사이버중독증의 잠복기간과 피해 정도는 사람에 따라서 조금씩 다르다. 따라서 단기간에 해결될 문제도 아니고 모든 어린이를 사이버 중독증으로부터 보호할 수도 없다. 다만 지금부터라도 대안을 마련하고 실천함으로써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피해를 최대한 예방하고 줄일 수 있을 뿐이다.
현재로서는 사이버중독증을 예방하는 최선의 방법은 부모들의 적절한 관심과 애정 뿐이다. 간혹 'PC를 거실에 놓고 쓰게 하라. 음란물 차단 소프트웨어를 설치하라'는 등의 방법을 제시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비현실적인 탁상공론이다. 어떤 학생들이 거실에서 음란물을 구경할 것이며 피가 흐르는 게임을 즐기겠는가. 그들은 부모가 없는 틈을 이용하거나 그들만의 은밀한 공간을 찾아서 PC를 사용할 것이다. PC나 인터넷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청소년을 음란 폭력물로부터 격리시키는 일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을 잘 안다. 또한 막을 수도 없지만 막아서 해결될 일도 아니다. 최선의 방법은 '참'인 현실과 '참아닌' 세계를 명확하게 구별해주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는 부모가 컴퓨터를 배우고 자녀의 시간표를 조정함으로써 가능해진다.
앞서 최선의 예방법이 '부모의 적절한 애정과 관심'이라고 했지만 이는 너무 막연한 소리이다. 어떻게 해야 '적절한 애정과 관심'을 보이는 것이냐고 물을텐데 가정마다 다른 환경을 고려할 때 명확한 모범답안은 없다. 따라서 차선책으로 모든 가정에 적용되는 실천적인 예방법을 몇 가지 제시한다.
아이들이 사달라는대로 '바이오하자드'와 같은 피가 흐르는 게임을 사주고는 '내 아이는 게임을 잘 해서 컴퓨터도 잘 할거야'라고 자랑하는 부모라면 자녀의 사이버중독증에 무관심한 부모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바이오하자드'라는 게임을 안사준다고 해서 해결될 일도 아니며, 또한 평생 게임을 못하도록 막을 수도 없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 번째로 바둑, 음악, 프라모델과 같은 좀더 생산적인 취미생활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도록 유도함으로써 게임 붙드는 시간을 최대한 줄인다. 두 번째로 자녀들이 '바이오하자드' 류의 게임을 할 때 폭력성이 지나치다는 사실과 현실 세계에서 살인이 얼마나 큰 범죄인지를 자주 상기시켜줘야 한다. 세 번째로 게임을 일정 시간 할 수 있도록 허락하는 대신 책을 많이 읽도록 조건을 걸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부모들이 단기간에 컴퓨터를 배우기도 쉽지 않으며, 아이들을 바둑 등의 다른 취미로 유도하기도 어렵다. 결국 현재 한국의 부모들이 할 수 있으며 또한 가장 손쉬운 방법은 아이들의 독서량을 늘리는 것이다. 컴퓨터를 다루는 시간보다 동화나 소설책을 들고 있는 시간이 더 많게 만드는 부모라면 자녀의 사이버중독증에 슬기롭게 대처하고 있는 부모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