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트: 바람 난 남자
강한돌씨가 PC통신을 시작한지도 벌써 삼 개월이 되었다. 이제는 제법 숙달된 솜씨로 여기저기 게시판도 살펴본다. 우스개 게시판에서 본 우스개를 이용해서 직장동료를 웃기는 일도 큰 즐거움이고, 팝니다 게시판을 통해서 이런저런 물건을 구입하는 일도 재미있다. 가끔은 황당한 광고가 올라오기도 한다. '노트북 공짜로 드려요.'라는 광고를 보고 노트북컴퓨터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하여 재빨리 게시판을 보면, '제가 쓰다 남은 노트북이 몇 권 있습니다. 낙서 안한 것이니 와서 가져가세요'라고 써있다. 또 어떤 날은 '그동안 보던 비디오를 공짜로 드립니다.'라는 광고가 올라왔다. 이번에는 안속아 하면서도 혹시나 하고 게시판을 봤더니, '제가 보던 [비디오]를 공짜로 드립니다. 아시죠? 월간지로 나오는 그 잡지. 와서 가져가세요.'라고 써있다. 이렇게 황당한 글과 사기성 글에 몇 번 속은 후로는 앞으로 절대 속지 말아야지 하고 단단하게 마음먹은 터였다.
하여간 이렇게 게시판과 대화방을 들락거리면서 새벽까지 통신을 하니 아내의 불평불만이 대단하다. 아내가 최대한 사랑스러운 목소리를 내서 "여보 이제 그만 불 끄고 자요."라고 말하면 강한돌씨는 "당신 먼저 자!"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한다. 자신의 대답이 아내를 얼마나 비참하게 만드는지 생각하지 않는 태도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답하는 남편의 뒤통수를 바라보면서 아내는 화가 머리 끝까지 올랐다.
"당신 나하고 결혼한거여요? 컴퓨터하고 결혼한거여요?"
"거참, 남편이 미래의 발전을 위해서 새로운 지식을 배우는데 왜 그렇게 짜증이야. 그렇게 짜증 나면 당신도 통신하면 될 것 아냐."
처음 한 달은 아내가 참아주었지만 두 달 째부터는 허구헌날 독수공방하는 아내의 불평이 대단해졌다. 그러나 그렇게 떠들어도 강한돌씨가 굳세게 통신을 하자 요새는 아내도 포기했는지 혼자 일찍 잠자리에 든다.
어쨌거나 오늘은 상쾌한 월요일. 아침부터 싱글벙글거리는 김대리가 수상해서 다그쳤더니 눈이 번쩍 뜨이는 이야기를 해준다. 대화방제목을 '자동차와 드라이브'라고 해놓으면 끼 있는 여자들을 쉽게 낚을 수 있는데, 그렇게 만난 여자랑 주말에 하룻밤을 보냈다는 것이다. 이말을 들은 강한돌씨 침을 꿀꺽 삼키면서 자세한 내용을 물어보더니 당장 통신망에 접속해 대화방을 만들었다.
조금 후에 '안녕하세요? 방에 초청해주시면 안되나요?'라는 내용으로 쪽지가 날아왔다. 송이송이(한송이)? 틀림 없는 여자다. 그러나 혹시 실수할지 모르니 pf 명령어로 신상소개를 살펴본다. '얼굴만 예쁜 여자 한송이랍니다'라고 써있다. 순간 흥분이 되는 강한돌씨. 재빨리 초대를 한다. 몇 마디 소개를 하면서 탐색전을 마친 강한돌씨 마침내 슬슬 늑대기질을 발휘한다.
돌돌돌돌(강한돌): 심청토끼 이야기 아세요?
송이송이(한송이): 모르는데요? 해주세요.
돌돌돌돌(강한돌): 하얀 심청토끼가 위독한 아빠토끼를 위해서 산신령이 알려준 산을 찾아가서 산삼을 구했답니다. 그런데 너무 깊은 산 속이라서 그만 길을 잃어버렸어요. 아빠토끼를 살리려면 하루가 급한데. 마침 빨간토끼가 지나가길래 물었죠. '빨간토끼야 우리 집으로 가는 길 좀 알려줄래?' 그러자 빨간토끼가 '맨 입으로?' 이렇게 말하더래요. 그래서 하얀토끼는 빨간토끼랑 하루밤을 잤습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 다시 길을 잃었어요. 마침 파란토끼가 지나가길래 또 물었죠. '파란토끼야 우리 집으로 가는 길 좀 알려줄래?' 그러자 파란토끼가 말했어요. '맨 입으로?' 그래서 하얀토끼는 파란토끼랑 또 하룻밤을 잤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아버지를 살려냈지만 얼마 후 산속에서의 일로 인해서 아기토끼를 낳았답니다. 그럼 여기서 문제. 과연 태어난 아기토끼는 어떤 색일까요?
송이송이(한송이): 흰색? 파란색? 아니면 얼룩무늬?
돌돌돌돌(강한돌): 아뇨. 아뇨.
송이송이(한송이): 음. 모르겠다. 답이 뭐여요?
돌돌돌돌(강한돌): 맨 입으로?
송이송이(한송이): 예? 어머! 호호호... 그럼 저도 하룻밤 같이 자면 정답 알려주실거여요?
김대리 말대로 여자가 의외로 쉽게 끌려오자 강한돌씨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면서 계속 수작을 펴 마침내 함께 드라이브 하기로 약속을 정했다. 퇴근시간이 되자 집에 전화를 걸어, 동창과 술약속이 있어서 일찍 못들어가니 먼저 저녁 들라고 한 뒤에 들뜬 기분으로 약속한 카페에 나가서 기다리고 있는 강한돌씨. 그런데 조금 후에 카페문을 열고 낯익은 여자가 들어서길래 살펴보니 아내가 아닌가. 아니 이럴 수가? 아내가 무슨 일로 여기 왔지. 큰일이다. 동창이 아니라 여자와 만나는 것을 알게된다면 난리가 날텐데. 간이 콩알만해졌지만 최대한 태연한 모습으로 가장한다. 아내가 강한돌씨를 발견하자 반가운 얼굴로 다가와 말을 건넨다.
"당신 동창과 술 드신다더니 이 카페에는 어쩐 일이세요?"
"응? 으응. 여기서 만나 이동할거야? 근데 당신은 여기 웬 일이야?"
"호호. 제가 이 시간에 여기 왜 왔는지 궁금해요?"
"응. 그래. 집에 있을 줄 알았는데. 무슨 일로 온거야?"
그러자 아내가 야릇한 표정으로 싱긋 웃으면서 강한돌씨에게 대답했다.
"맨 입으로?"
"어? 다 다 당신? 그럼?"
"호호호. 숭악스러운 인간 같으니. 당신 소원대로 내 친구인 송이에게 통신을 배워서 당신 깜짝 놀라게 하려고 그 친구 ID를 빌려서 들어간 거여요. 당신이 접속한 것을 보고 반가와서 뭐 하나 봤더니 바람을 피고 다녀? 컴퓨터를 배운다면서 나를 구박하더니, 뭐? 드라이브가 어쩌고 하룻밤이 어째? 이런 간 큰 남자 같으니라고."
'아차, ID사용자가 본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내가 왜 깜박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