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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실록. 7월에 무슨 일이 있었나?

IT문화원 컬럼. 2005년 07월 09일. [갈래: ilovepc] URL: http://www.dal.kr/col/ilovepc/ilovepc200507_ithistory.html

PC사랑

PC사랑 컬럼. 2005년 07월. 김중태(www.dal.co.kr)


* 1980년: 삼보를 시작으로 한국의 PC산업 출발하다.

7월 2일. 이용태씨를 비롯한 7명의 젊은이에 의해 서울 청계천에서 자본금 1000만원으로 설립된 삼보엔지니어링을 통해 국내 PC산업이 출발했다. 이후 국내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인 SE-8001을 발표하면서 컴퓨터 전문업체로 성장한다. 그러나 삼보컴퓨터는 25년 만인 2005년 5월 18일에 법정관리를 발표하면서 국내 컴퓨터업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삼보컴퓨터

* 삼보컴퓨터의 출발은 한국 컴퓨터산업의 출발이기도 하다.(www.trigem.co.kr)


* 1981년: MS-DOS 1.0이 발표되다.

7월 1일에 발표된 MS-DOS 1.0은 IBM PC의 주요 운영체제로 채택되어 한 달 뒤인 8월 12일부터 PC-DOS 1.0으로 보급되기 시작한다. 인텔이 선보인 MS-DOS 1.0은 이후 MS를 세계 최고의 IT 기업으로 성장시킨 시금석이 된다. MS-DOS가 IBM-PC에 채택되는 과정을 복잡하고 극적이었으며 많은 기업과 사람의 인생을 바꾼 사건이 되었다.

당시 IBM의 접촉대상은 CP/M을 판매하는 디지탈리서치사(Digital Research Institute)의 제작자 게리 킬달이었다. 당시 DRI는 16비트 운영체제(OS)인 CP/M-86이 거의 완성되던 상태였기 때문에 IBM으로써는 DRI와 계약하는 것이 좋았다. 하지만 킬달의 전 부인이자 DRI의 공동대표인 도로시는 IBM의 비밀준수를 비롯한 계약 내용이 자신에게 불리하다며 이를 거절해 협상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편 MS사의 빌게이츠는 IBM이 운영체제를 필요로 한다는 정보를 듣고 IBM과 접촉을 시도한다. 당시 MS는 16비트 운영체제는 고사하고 8비트 운영체제조차 없었지만 IBM을 속이고 협력사가 될 수 있었다. 빌게이츠는 IBM을 안심시킨 후에 시애틀 컴퓨터(Seattle Computer Products)에서 만든 QDOS라는 프로그램을 찾아내 5만 달러에 구입하고 QDOS 제작자인 팀 패터슨을 고용해 IBM PC용으로 개조한다. 이것이 MS-DOS 1.0으로 발표된 것이다. QDOS는 이름 그대로 기능이 떨어진 제품이었으나 다급했던 IBM측에서는 MS-DOS를 지원할 수밖에 없었다. MS-DOS 1.0 발표 이후 DRI는 더 안정적이고 멋진 기능의 CP/M-86을 내놓았으나 60달러인 MS-DOS보다 네 배나 비싼 240달러나 했다. 이런 차이는 당시 소프트웨어 시장의 강자인 DRI를 물리치고 MS가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Microsoft.com

* 지금은 제국으로 부르는 마이크로소프트(www.microsoft.com)의 실질적인 성공은 DOS 1.0에서 시작했다.


* 1992년: 7월에 시작한 하이텔 7월에 파란닷컴으로 사라지다.

국내 PC통신망의 선두였던 하이텔은 유독 7월에 큰 사건이 일어났다. 케텔, 코텔을 거쳐 1992년 7월에 하이텔(Hitel)이라는 이름으로 정식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 몇 년 동안 국내 최고의 PC통신망으로 명성을 유지했다. 1996년 7월에는 하이텔 웹서비스를 시작했으나 웹에 대한 대응이 너무 늦어 점차 몰락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2004년 7월 17일에 KTH는 하이텔과 한미르 등의 서비스를 통합한 파란닷컴을 선보이면서 하이텔의 종말을 공식적으로 알린다.

Hitel

* PC통신 사용자에게 친숙한 하이텔 접속화면과 초기화면.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 1995년: 아마존닷컴의 신화가 시작되다.

아마존닷컴은(www.amazon.com)은 1995년 7월 시애틀의 창고에서 조촐하게 시작했다. 이후 계속된 성장에도 늘어나는 투자비 때문에 적자를 면치 못했으나, 지금은 세계 최고의 IT 기업이자 성공사례로 자리잡았다. 아마존닷컴은 결국 온라인서점과 온라인쇼핑몰 개척의 상징이 되었다.

Amzon.com

* 지금은 세계 최대 쇼핑몰인 아마존닷컴(www.amazon.com)도 시작은 조촐했다.


* 1996년: 한국에 PC방 문화가 생기다.

신림동의 60평 사무실에 컴퓨터 24대로 이루어진 '인터넷 매직플라자'란 PC방이 생겼다. 이강민 사장이 PC방을 만든 이유는 SI 관련 일을 하면서 밤마다 놀고 있는 컴퓨터를 가지고 할 수 있는 사업을 생각하다가 떠오른 것이 PC방이기 때문이다. 시간 당 3천 원이라는 조금 비싼 요금을 받았지만 초고속인터넷 서비스가 없던 시대라 PC방은 대성공을 거두고 3년만에 100여 개 가까운 체인점을 확보했다. 이후 PC방이 수 천 개로 증가하자 게임랭킹 서버 배틀탑을 만들고 국내 최초의 게임대회인 한국인터넷게임리그(KIGL)를 열기도 했다. 국내 최초 PC방과 PC방 체인점은 놀고 있는 컴퓨터의 활용이라는 작은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것이다.

IPCA
이강민사장

* 이제는 협회(www.ipca.or.kr)까지 생긴 PC방이지만, 처음은 이강민씨의 작은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 1998년: 한컴 파동으로 이찬진 사장 물러나다.

1998년 컴퓨터 업계를 강타한 최대 사건은 한글과컴퓨터사의 '한글' 파동이다. 경영난을 이유로 마이크로소프트로사로부터 2천만 달러를 지원받는 대신 '한글' 프로그램 개발과 판매를 포기하겠다는 한컴사의 발표는 정부와 사회, 국민에게 큰 파장을 일으켰다. 국민의 강력한 반발과 범국민 한글 살리기 운동, 반MS 운동이 벌어졌다. 결국 한컴은 애초의 발표를 철회하면서 7월 20일 한글지키기운동본부가 공개 제안한 투자제의를 수용했고, 10년 가까이 경영을 맡았던 이찬진 사장은 물러났다. 이후 한컴은 '한글815'판을 내놓으며 100만 가까운 회원을 모은 뒤에 유통 중심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haansoft

* 한글지키기운동본부의 운동 덕분에 한컴(www.haansoft.com)은 지금도 '한글' 프로그램을 내놓고 있다.


* 1998년: 두루넷이 초고속통신망 서비스를 시작하다.

ISDN의 보급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때인 1998년 7월 1일, 케이블TV망을 이용한 초고속통신망 서비스인 두루넷 서비스가 시작되었다. 이로써 한국은 56Kbps 모뎀시대에서 갑자기 수십 수백 배 빠른 초고속인터넷 시대로 넘어가기 시작했고 IT강국의 기초를 다지게 되었다.

두루넷광고

* 두루넷(www.thrunet.com)의 1998년 초고속통신망 광고.


* 1998년: 딴지일보 제1호 발간으로 패러디문화를 이끌다.

딴지일보 1호(http://www.ddanzi.com/ddanziilbo/1/1_main.html)는 신선한 충격으로 세상을 뒤흔들었다. 딴지일보를 보면 일반적인 용어와는 거리가 먼 낱말이 난무한다. '여론조사: 예, 아니오'를 '엽기투표: 그러췌,조까'라는 표현으로 바꾸는가 하면, '김데중' '기명사미 전통, 리인재 비밀회동' '일본은 망할 것인가...' '대통령 주디를 공업용 미싱으로..' '요술공주 쎄에리가' '고소용 벗었다' 등의 독특한 표현으로 1호부터 네티즌을 열광시켰다. 흩어져있던 소수 네티즌의 패러디문화의 종합판이라 할 수 있는 딴지일보는 이후 인터넷 패러디문화의 원형을 제시하며 승승장구 했다. 그러나 요즘은 그 위세가 크게 위축되어 후배들에게 점차 자리를 내주고 있다.

딴지일보1호

* 인터넷 패러디문화를 이끈 딴지일보 1호 모습.


* 2004년 : 문희준 기사를 통해 댓글문화, 성지순례, 사마 열풍 시작되다.

7월 1일 저녁에 '문희준 "록 자격증이라도 따고 싶어요"'라는 제목으로 "40만 장 팔린 록 음반 봤느냐?"는 문희준의 인터뷰 내용이 담긴 기사가 올라왔다. 이 기사가 나가자 문희준 안티팬들이 우르르 몰려가 댓글(reply)을 달기 시작했고 하루만에 댓글 수 십 만 개가 달리는 사상 초유의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기사가 뜬 네이버는 네티즌이 쓴 악성 댓글을 계속 지우기 시작했다. 댓글의 수는 늘었다가 다시 숫자가 줄어드는 기이한 현상을 반복하면서 마침내 10만, 20만을 돌파했고 30만 개를 돌파했다. 삭제된 댓글을 포함하면 50~100만 개 이상의 댓글이 달렸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사건을 통해 네티즌의 댓글문화가 더욱 부각되기 시작했다. 이후 주요 사건이 생길 때마다 몰려다니는 네티즌에 의해 수 만 개의 댓글이 달리는 일이 일어났고, 신조어가 탄생하기 시작했다. 네티즌의 댓글은 언론에 인용되는 수준을 벗어나 사회와 정책에 영향을 주는 요인 중 하나로 자리잡기 시작했으나 지나치게 편향적이라는 부정적인 면도 있어 새로운 방향 모색이 필요한 상황이다.

한편 댓글 30만 시대를 연 문희준 기사를 시작으로 댓글이 많이 달린 기사를 순례하는 '성지순례'라는 네티즌문화가 발생했다. 또한 문희준을 비하하는 '무뇌충'이라는 별명에서 딴 '뇌사마'를 시작으로 '철사마 떡사마 뺑사마 묵사마' 등의 각종 '사마, 히메'로 비꼬는 신조어가 속속 등장했다.

문희준 록자격증 관련기사

* 30만개가 넘는 댓글이 달리며 성지로 떠오른 문희준 관련 기사.


* 그외 7월에 일어난 일들

1945년: MIT의 바네바 부시교수가 메멕스라는 장치를 제안했다.
1968년: 실리콘밸리의 대표주자인 인텔이 창립되었다.
1980년: IBM은 '프로젝트 체스(Project Chess)'라는 암호명으로 PC 5150인 어콘(Acorn)의 개발에 착수했다.
1983년: '국가5대기간전산망사업' 계획안이 수립되었다.
1986년: 한국 최초의 IP주소(128.134.0.0)를 할당받았다.
1987년: 파워포인트 개발사인 Forethought, Inc을 MS사가 인수해 파워포인트를 손에 넣었다.
1991년: 윈텔진영에 위기를 느낀 IBM, 애플, 모토롤라는 파워PC라는 새로운 CPU를 개발하기로 제휴한다.
1992년: 정보윤리위원회 계획안이 결정되었다. CERN은 월드와이드웹의 라이브러리를 발표했다.
1993년: KRNET'93 제1회 한국학술전산망워크숍이 열렸다.
1994년: 청와대 홈페이지(www.bluehouse.go.kr)를 비롯해 공공기관 홈페이지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1995년: 인텔은 사업다각화의 하나로 기존의 AT형 배열을 바꾼 케이스인 ATX형을 발표했다.
1996년: (주)한글과컴퓨터가 검색엔진 심마니를 발표했다.
1997년: 유니텔이 국내 최초로 56Kbps 모뎀을 지원하기 시작했으나 불과 1년 뒤에 두루넷이 초고속인터넷 서비스를 실시하는 바람에 56Kbps 고속모뎀시대는 얼마 가지 못 했다.
1999년: 정치인 증권시장인 포스닥이 개장했다. 미국에서는 'NewYork Times'에 'Lemonyellow'가 소개되면서 블로그가 대중매체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2000년: 1GHz 제품을 AMD보다 늦게 발표함으로써 클럭 속도 신화가 깨진 인텔은 급하게 1GHz보다 더 빠른 1.13GHz의 펜티엄III를 출시했으나 결함이 많았다. 처음에는 결함을 부정했으나 결국은 결함이 있음을 인정하고 제품 생산을 중단과 리콜의 치욕을 당함으로써 CPU 맹주의 위치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2002년: 7월 31일에 소리바다 검색서비스가 저작권 침해 소지가 있다는 법원의 서비스 중지 가처분결정이 내려졌다.
2004년: 스타크래프트의 열풍에 힘입어 마침내 광안리 해변에서 열린 스카이 프로리그 결승전에는 10만 명의 관객이 입장해 e스포츠의 위력을 보여주었다.
PC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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