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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역사. 그해 3월에 일어난 일들

IT문화원 컬럼. 2006년 03월 01일. [갈래: ilovepc] URL: http://www.dal.kr/col/ilovepc/ilovepc200603_ithistory.html

PC사랑

PC사랑. 2006년 03월. 김중태(www.dal.kr)
IT역사. 그해 3월에 일어난 일들

3월은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라는 시적 표현처럼 IT 분야에서도 새로운 기운이 꿈틀대는 달이다. 한국 최초의 인터넷망인 SDN, 최초의 사설BBS인 'The FIRST', 첫 웹 워크샵 등이 3월에 열렸다. 그외 안철수연구소, 중앙 JOINS, 컴퓨터만화 잡지, 케이블TV, KBS 등도 3월에 출발하면서 3월은 IT분야에서도 새로움이 가득한 달로 다가온다.

- 김중태(IT컬럼니스트. www.dal.kr)


1982년 : SDN이 만들어지면서 한국 인터넷이 시작되다.
1982년 3월 2일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과의 중형 컴퓨터와 당시 구미에 있었던 전자기술연구소(KIET, 현재 전자통신연구소)의 중형컴퓨터를 1200bps 전용선으로 연결했다. 이 전산망을 SDN(System Development Network)이라 불렀고 이것이 한국 전산망의 시작이자 한국 인터넷의 시초다. SDN이 한국 인터넷의 시초인 이유는, SDN이 인터넷의 근간을 이루는 TCP/IP 및 FTP, Telnet 등의 응용 프로토콜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1988년 : 최초의 사설BBS인 퍼스트가 개설되다.
1988년 3월에 전자게시판(BBS)인 'The FIRST'가 문을 열었다. 이름 그대로 한국 최초의 사설 전자게시판이다. 당시 연세대 학생이었던 이주희씨가 개설한 'The FIRST'는 RBBS-PC라는 영문 호스트에 한글 처리를 해서 사용했는데 조합형 한글을 사용한 점이 돋보인다. 처음에는 저녁 시간부터 아침시간까지 집에서 운영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후 명동에서 회원의 사무실을 빌려서 운영한다. 아마 이 장소는 최초의 국내 사설 BBS가 운영된 자리로 깊은 의미를 가질 것이다. 이후 1988년 5월 바이트네트, 달구벌, 그리고 1989년 5월 엠팔 게시판(EMPAL BBS)이 생겨나면서 본격적으로 한국에도 PC통신이 보급되기 시작한다.

1991년 : 만화로 컴퓨터를 배우는 컴퓨터만화 창간
1991년 3월에 '도서출판 일우'에 의해 '컴퓨터만화' 잡지가 창간됐다. 컴퓨터만화는 책의 절반 정도를 컴퓨터 관련 만화로 채웠다. 컴퓨터만화 창간호는 김형배, 박문윤, 신문수 씨와 같은 유명만화가를 비롯해 여러 만화가가 참여해 컴퓨터 관련 만화를 실었다. 내용은 컴퓨터의 역사, 컴퓨터 입문, 컴퓨터게임을 만화로 설명하는 형태가 주를 이루었으며, 컴퓨터 세계와 관련된 SF물 등이 포함되었다. 광고 포함 290여 쪽 되는 분량에서 114~241쪽까지 만화였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책의 절반 이상이 만화로 채워진 셈이다. 만화로 컴퓨터를 알려주는 교육적 효과와 재미를 동시에 잡겠다는 컴퓨터만화는 당시 학생들에게 큰 주목을 받으며 화제가 되었으나 오래 버티지 못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컴퓨터만화에 실린 만화
컴퓨터만화에 실린 만화

* 01.02. 컴퓨터만화 잡지와 잡지에 실린 만화

1995년 : 3월 1일 케이블TV 본방송 시작
통신개방 압력이 증가하자 정부에서는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다양한 형태로 시도했다. 1995년 3월 1일 본방송에 들어간 케이블TV도 그 중 하나다. 케이블TV는 우리 국민의 TV방송에 대한 개념을 바꾸어놓았다. 이전까지 우리나라 방송은 KBS, MBC, SBS의 공중파만 존재했었고 바둑TV, 게임TV, 여성TV와 같은 전문화된 TV방송은 존재하지 않았다. 수 십 개의 채널을 갖추고 문을 연 케이블TV는 다양한 볼거리로 사용자를 유혹했고 24시간 골라보는 TV시대를 열었다. 또한 케이블TV로 인해 갖추어진 동축케이블망은 나중에 초고속인터넷망의 보급에도 유용하게 사용되면서 국내 정보통신문화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잡는다.

1995년 : 국내 첫 웹 워크샵 열리다
1995년 2월에 만들어진 '가자 웹의 세계로'라는 전자책을 통해 웹이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되면서 국내 관계자의 반응이 뜨거워졌다. 그래서 웹을 공부하자는 의견이 나왔고 아예 공개 세미나를 열어 보는 게 어떻겠냐는 의견이 올라왔다. 얼굴도 한번 보지 못했던 사람들이 인터넷으로 일을 꾸민다는 것은 정말 즐거운 경험이었기 때문에 모두 찬성하는 분위기였고, 그 결과 탄생한 것이 국내 최초의 웹 워크샵이다.
1995년 3월에 충남대학교에서 열린 첫 워크샵은 100여명 정도 모일 거라고 예상을 깨고 600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가해 자리가 부족할 정도로 호평을 받았다. 인터넷 접속 방법, HTML 소개, 웹브라우저 사용 방법, 웹서버 설치 방법 등 지금 보면 아주 기초적인 주제들이지만 당시 첫 워크샵에 참가한 사람들에게는 모두 신선한 내용이다. 열기도 매우 뜨거워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웹이 매우 인기있는 컴퓨팅 기술이 될 거라는 공통된 인식을 얻을 수 있었다. 한국에 웹이 본격적으로 연구되고 보급된 것은 이 워크샵 이후부터라고 볼 수 있다.

1995년 : 크레이사가 파산하다.
윈도95가 출시되면서 개인용컴퓨터(PC)와 PC용 운영체제의 보급이 더욱 확산되는 가운데 덩치 큰 대형컴퓨터는 계속 몰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슈퍼컴퓨터의 대명사였던 크레이사가 파산한 것은 대형컴퓨터, 메인프레임 시대의 종말을 상징하는 사건이 되었다. 크레이사의 파산은 마크 와이저가 말한 것처럼 수 백 명이 한 대의 컴퓨터를 쓰는 메인프레임 시대에서 한 사람 당 한 대의 컴퓨터를 쓰는 PC시대로 변화를 상징적인 사건이 되었다.

슈퍼컴퓨터인 Cray-1

* 03. 크레이사에서 만든 대표적인 슈퍼컴퓨터인 Cray-1

1997년 : 상점 입점이 안 된 상태로 국제전자센터 개장
1997년 한국의 컴퓨터 업계는 부도로 시작하여 부도로 끝난 사상 최악의 한 해였다. 1월 29일 한국 IPC의 부도를 시작으로 아프로만, 세양정보통신, 멀티그램, 한국소프트정보통신, 큐닉스컴퓨터, 선인교역, 뉴텍컴퓨터 등 대형 업체들이 계속해서 쓰러졌다. 일 천 개가 넘는 중소업체가 함께 쓰러졌고 5,000억 원이 훨씬 넘는 피해를 냈다. 이 여파로 3월 29일 서초동에 문을 연 국제전자센터는 입주업체도 채우지 못한 상태로 일 년을 보내야 했다. 하필 3월 개장 전후로 부도사태가 나기 시작해, IMF까지 겹치면서 국제전자센터는 강남이라는 좋은 위치에도 불구하고 전자센터로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것이다.

국제전자센터

* 04. 좋은 상권에도 불구하고 거래가 활발하지 않았던 국제전자센터

2005년 : 플릭커를 인수하며 야후가 웹2.0 시대의 선두주자로 떠오르다.
야후가 이메일 업체인 Oddpost(www.oddpost.com)를 인수할 때만 해도 야후가 웹2.0 기업의 선두로 떠오를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2005년 3월 21일에 야후가 플릭커(www.flickr.com)를 인수하면서 상황은 갑자기 달라진다. 플릭커는 꼬리표(tag) 기반의 사진 사이트로 웹2.0을 대표하는 사이트다. 세계 10대 사이트에 선정되는 등 각종 상과 평판을 휩쓸다가 야후에 인수되었는데, 구글이 온라인 사진 사이트인 피카사(http://picasa.google.com/)를 인수한 것에 대응해 인수했다고 볼 수 있다. 웹2.0의 가장 대표적인 기업인 플릭커가 야후에 인수되면서 웹2.0 사이트의 가치가 폭등하기 시작했고 본격적으로 대형 포탈들이 웹2.0 기업 합병에 나서며 웹2.0 물결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이후 야후는 인터넷전화(VoIP) 업체인 다이얼패드(www.dialpad.com), 위젯 사이트인 콘파뷸레이터(www.konfabulator.com), 일정 추적관리 사이트인 업커밍(www.upcoming.org), 소셜북마크 사이트인 델리셔스(http://del.icio.us/)를 인수하면서 웹2.0시대의 선두주자로 떠오른다.

Yahoo Flickr

* 05. 야후가 인수한 플릭커. 사이트 아래에 야후 로고가 보인다.

2005년 : 안철수 사장의 화려한 퇴임과 권석철 사장의 쓸쓸한 퇴임
2005년 3월에는 IT인물 동정에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특히 컴퓨터보안업체의 인물 변화가 많았다. 가장 눈에 뜨이는 변화는 안철수 사장의 퇴임이다. 3월 18일 안철수연구소가 김철수 사장으로 체제를 바꾸었고, 한국트렌드마이크로는 3월 23일 최성환 사장을 선임했다. 또한 코스닥 퇴출이 결정된 하우리 역시 3월 23일 권석철 사장이 퇴임했다.
안철수연구소와 하우리는 국내 양대 백신업체인 동시에 자수성가형 CEO로 늘 화제가 되었다. 그러나 안철수 사장은 회사를 탄탄한 기반 위에 올려놓고 주변의 존경과 박수를 받으며 화려하게 일선에서 물러난 반면, 하우리의 권석철 사장은 회사가 코스닥에서 퇴출된 이후 쓸쓸하게 물러나면서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오로지 백신이라는 한 우물만을 파면서 열심히 노력했던 두 사람이건만 물러나는 모습은 서로 달라 묘한 느낌을 주변사람에게 전달했다.

바이로봇

* 06. 장영실상까지 수상하며 하우리와 권석철씨를 키운 바이로봇이지만 하우리의 몰락을 막지 못했다.

2005년 : 회원수 5000명 스와핑 사이트 적발
2005년 3월 22일에 5000 명의 회원을 거느린 스와핑 사이트가 경찰에 적발됐다. 부산 강서경찰서는 인터넷에 음란사이트를 개설해 회원을 모집한 뒤 스와핑을 주선한 혐의로 유모(37)씨를 구속했다. 2003년 9월 '부부플러스'란 인터넷 음란사이트를 개설한 뒤 입소문만으로 회원 5천 여명을 모았고, 유료회원에 대해서는 2개월에 3만2천 원의 회비를 받고 스와핑 및 2대1, 3대1 변태 성관계 등을 알선했다. 이 사이트 유료회원 1천여 명은 스와핑 상대를 찾기 위해 자신의 알몸을 찍은 나체사진이나 동영상, 다른 회원과의 스와핑 장면을 담은 동영상을 아무 스스럼 없이 사이트에 올린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유료회원들은 이렇게 올려진 사진과 동영상 형태의 상대방 알몸을 보고 마음에 들면 만나 모텔 등지에서 2대 1, 3대1 성관계나 스와핑 등 변태적인 성관계를 가져온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 사이트는 전국에 6개 지부를 두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스와핑을 비롯한 변태 성관계가 전국 규모로 거행된 것으로 드러났으며, 회원들 중 사회지도층과 부유층도 다수 있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사회적 충격을 주었다.

부부플러스

* 07. 사회지도층을 포함한 수 천명이 가입해 스와핑 거래로 충격을 부부플러스

그외 3월의 IT소사
1971년 : 3월 31일. 서울 부산 사이 자동전화 개통
1973년 : 3월 3일. 문화공보부 소속의 국영 중앙방송국과 16개 지방방송국을 공영체제로 전환시키는 '한국방송공사법'에 따라 한국방송공사(KBS)가 설립됐다.
1977년 : 3월 4일. 로스 알라모스 실험실에 1900만달러 상당의 첫 번째 프레온 냉각방식을 적용한 크레이-1 슈퍼컴퓨터가 마련됐다.
1988년 : KREN(한국교육전산망)이 BITNET에 연결된다.
1992년 : 1991년 설립된 한국PC통신이 케텔을 인수하여 1992년 3월 코텔(KORTEL)로 변경한다. 이후 코텔은 하이텔을 거쳐 파란으로 통합되었다.
1992년 : 포스데이타가 국내 최초로 정보검색전문교육과정을 개설한다.
1993년 : 3월 2일. 중국과학원 고에너지 물리학 연구소가 AT&T 국제위성을 임대해 64kbps의 전용선을 정식 개통함으로써 중국 최초의 인터넷이 연결된다.
1994년 : 3월 10일 오후 4시쯤 서울 종로구 종로5가의 지하 5m 한국통신 통신구 케이블선로에서 불이나 전국적인 통신두절 사태가 빚어졌다.
1994년 : 3월 15일. 초고속정보통신기반구축 기본계획 수립되었다.
1994년 : 3월 9일에 컴퓨터 통신 동호회원이 컴퓨터통신망에 이적표현물 게재혐의로 구속된다.
1995년 : 3월 15일. 안철수연구소가 설립되었다.
1995년 : 3월 2일부터 중앙일보가 중앙언론사로는 처음으로 인터넷 전자신문인 '중앙일보 JOINS를 시작한다.
1995년 : 한국전산원의 인터넷정보센터(KRNIC)을 중심으로 아이네트, 나우콤 등 상용 ISP 11개 기관이 연동된다.
1996년 : 3월 18일. 국내 최초의 통신 방송 복합위성인 무궁화 1호가 상용서비스를 위한 첫 전파를 발사했다.
1997년 : (사)한국인터넷협회(KRIA, Korea Internet Association of Korea)'이 사단법인으로 공식 등록되었다.
1999년 : 3월 15일. 한국 최초 인증기관 한국전자인증이 설립되었다.
2000년 : 3월 15일. 국내 117개 온라인 및 오프라인 기업이 참가한 초대형 인터넷 연합체 '예카'가 출범했다.
2000년 : 한국전산원이 한국 인터넷 백서를 발간했다.
2002년 : 3월 13일. '인터넷국가검열반대공동대책위원회'가 구성되었다.
2002년 : 3월 25일. 정부, 교육정보시스템 구축 추진을 발표했다.
2003년 : 3월 25일. 미국 LA법원이 스팸메일에 첫 실형을 선고했다.
2003년 : 3월 2일. 엠파스가 디비딕을 인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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