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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문화 속의 삶

IT문화원 컬럼. 1996년 05월 20일. [갈래: newspaper] URL: http://www.dal.kr/col/newspaper/19960520_gwangun.html

신문 컬럼

광운공대 신문. 1996년 5월 20일 김중태(www.dal.co.kr)


인간의 역사를 살펴보면 한 시대를 이끄는 새로운 문화가 창조되고 소멸된다. 요즘도 새롭게 창조되는 문화가 많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줄기는 사이버문화다. 사이버문화(cyberculture)를 사전에서는 '컴퓨터에 의한 자동제어(cybernation)에 의한 문화'라고 정의내리는데 이는 '컴퓨터문화'의 설명에 더욱 가깝다. 요즘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사이버문화의 개념은 '참 아닌 문화'다. 실체가 있는 참된 문화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짜도 아니고, 실제로 분명 존재하는 문화이기 때문이다.

사이버문화의 대표는 사이버스페이스(참 아닌 공간=cyberspace)문화로 이 낱말은 윌리암 깁슨이 쓴 '뉴로망서(Neromancer)'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다. 또 다른 형태의 문화인 사이버펑크(Cyberpunk)문화는 브루스 베스케가 쓴 '사이버펑크'에서 유래한다. 그동안 사람들은 '블레이드 러너' '가상현실' '토탈리콜' '터미네이터' '론머맨' '코드명 J' 등의 영화를 통해서 사이버문화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왔다.

현재 우리가 사이버스페이스로 손꼽는 대표적인 공간은 천리안, 하이텔과 같은 통신망이다. 좀더 넓게 보면 인터넷을 들 수 있다. 수 십 만 명의 사람들이 하이텔이라는 PC통신 공간 속에서 편지를 주고받고 물건을 사고 팔며, 동아리 활동도 하고, 대화를 나눈다. 실제로 일상생활과 같은 거래가 이루어지고 의사결정과 행위들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눈에 잡히는 실체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거짓도 아니지만 참된 공간도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집에 있는 편지함의 편지는 사라지지 않는다. 불에 타서 없어질 경우 재라도 남는다. 그러나 하이텔의 시스템이 고장이 날 경우에는 내 편지뿐만 아니라 수 십 만 명의 전자우편이 연기처럼 사라져버린다. 하이텔의 하드디스크 하나가 고장나는 것만으로 수 십 만 명이 바쁘게 움직이던 사이버스페이스가 사라지고 마는 것이며, 그 공간에 존재했던 시장, 홈쇼핑회사, 동아리들도 물거품처럼 사라진다. 그래서 나는 참아닌 공간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사이버스페이스를 실제의 현실 공간보다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PC통신과 인터넷 열풍이 불고 있으며 사이버스페이스를 개척하는 직업이 최고의 직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PC통신에 중독된 학생이 자살하기도 하며, 밤을 샌 직장인들은 회사근무에 지장을 주기도 한다. 물론 이런 현상이 새로운 문화가 정착되기 전까지의 초기 혼돈현상이라면 큰 문제가 아니지만 단순한 초기현상이 아니고 앞으로 더욱 더 심해질 것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왜 그런가? 없어도 좋은 문화, 참여하지 않아도 좋은 문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결정적인 이유는 사이버문화가 참아닌 문화임에도 불구하고 실제생활의 생산을 주도하는 생산문화라는데 있다. 그것도 고도의 학습능력을 요구하는 문화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최첨단 문명이기들을 살펴보자. 라디오공포증, 라디오맹, TV공포증, TV맹, 팩스공포증, 팩스맹이라는 말은 없다. 라디오나 TV는 20세기를 움직이는 놀라온 매체로 지금도 20세기 문화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지만 즐기는 도구에 불과하다. 안 사거나 안 보면 된다. 전화나 팩스는 업무에 꼭 필요한 도구라서 사용해야 하지만 사용법이 무척 쉽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매일 새롭게 쏟아져나오는 첨단 전자제품을 편하게 대한다. 새로운 제품일수록 더욱 환영한다. 그러나 컴퓨터나 컴퓨터와 관련한 행위에 대해서는 불안감과 경계심을 가지고 있으며, 심지어는 컴퓨터공포증(cyberphobia)에 걸려 있는 상태다. 컴퓨터공포증이니 컴맹이니 인터네트맹이니 하는 낱말 속에는 많은 사람의 고통이 들어 있다.

문서편집 프로그램(글틀)을 사용할 줄 모르면 문서 한 장 만들지 못하는 것이 요즘 직장과 학교다. 손으로 문서를 만드는 시절은 이미 지나갔다. 컴퓨터를 다루지 못하면 경리도 보지 못하고, 회계도 보지 못하고 통게도 내지 못하며, 주민등록 등본 하나 만들어주지 못하는 동사무소 직원이 되고 만다.

점차 많은 사람들이 PC통신망을 통해서 상거래를 하고 있으며, 인터넷에 연결하여 도박을 즐기고, 섹스도구를 구입하고 있다. 사이버섹스, 사이버뮤직, 사이버무역 문화가 파도처럼 밀려온다. 사이버문화는 참아닌문화로 시작했지만 앞으로는 우리의 실제 현실생활과 구별이 점점 어려워질 것이다. 가상현실(Virtual Reality) 기술이 발전할수록 사이버문화는 더욱 현실과 분리되기 힘들 것이다. 아마도 사이버문화라는 말 자체가 필요 없어질 것이다. 이미 통신을 이용해서 편지를 주고받거나 물건을 구입하는 일은 일상적인 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내가 쓰는 이 글조차도 우체부가 배달하지 않고 사이버스페이스에 존재한 편집부원의 편지함으로 배달될 것이다. 전자우편을 사용하지 못한다면 편집부 기자가 내 사무실을 찾아오던지 내가 편집부로 찾아가서 원고를 건네주어야 한다. 참아닌 공간이 참된 공간과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는 것이다. 이미 사이버문화는 우리의 시간과 공간적인 제약을 극복하는 새로운 문화로 생활 속에 자리 잡아가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는 사이버문화가 어떤 영향력을 미칠 것인가에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전화나 TV처럼 얼마나 쉽게 사이버문화를 학습할 수 있느냐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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