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퍼시대가 점들의 집합을 강화하고 있지만 개별 점의 능력은 약화시키는 시대일 수도 있다. 하이퍼시대로 변화하면서 기억문화는 검색문화로 바뀌고 있고, 기억은 점차 소멸되고 있다. 지식의 소유에서 지식의 접근으로 변화화면서 기억 훈련을 받는 계층과 그렇지 않은 계층의 지식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으며 이는 사회구조와 경제구조의 변화로 나타나고 있다. 부의 근원은 '지식'이고, 하이퍼시대는 누구나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시대다. 상류층만이 가지고 있던 부와 권력의 근원을 하위계층조차 마음대로 접근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하이퍼시대는 혁명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하이퍼시대에서 정보와 지식의 격차는 더욱 커질 수 있다. 과거에는 정보격차가 컴퓨터와 모뎀이 있느냐 하는 '접근의 격차'였으나 이제는 '양과 질의 격차'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정보격차가 없어진다 해도 문제는 남는다. 정보를 대하는 방법에서 상류층과 하류층이 다른 태도를 보이기 때문이다. 상류층은 정보를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기억하는 훈련을 받는다. 반면 하류층은 정보를 검색해서 사용한 후에는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기억하지 않는다.
과거에는 숙제를 베끼는 과정에서 한 번 눈으로 보는 목독(目讀)과 손으로 베끼는 필사(筆寫)의 과정을 거쳐야 했기 때문에 공부에 관심이 없는 친구들도 최소한의 기본지식을 머리에 축적했다. 연필로 지도를 그리며 선을 그은 덕분에 적어도 고구려, 백제, 신라의 위치 정도는 알았다. 반면 요즘은 검색 사이트에서 자료를 검색한 다음에 마우스로 긁어서 붙이면 끝이다. 결국 '주몽'이나 '이성계'에 관한 숙제를 하고도 머리 속에는 아무런 기억이 없는 텅빈 머리가 된다. 기억된 지식이 없으니 의문이 없다. 붙여넣기만 하느라고 '위화도 회군' 내용을 모르니 '이성계가 왜 위화도 회군을 했을까? 그때 그냥 중국으로 진군했으면 역사가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의문이 안 생긴다. 의문이 없으니 창조가 없다. 기억과 지식이 없으니 의문이 없고, 의문이 없으니 창조가 없고, 창조를 위한 지식찾기가 없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처럼 기술의 발달은 사람을 편하게 하지만 기억을 소멸시킨다. 노래방 자막이 없으면 1절도 소화하지 못 하는 요즘 세대는 가사를 기억하지 않는 세대다. 자동차 내비게이션이 시키는대로 좌회전과 직진을 하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하는 요즘 세대는 중간에 스쳐간 것들을 기억하지 못 한다.
과거에는 모든 과정을 머리에 담았다. 그 과정에 일어난 사건도 멋진 추억이 된다. "아, 저기서 좌회전해야 하는데, 그때 지나치는 바람에 30분이나 고생했잖아." "맞아. 덕분에 좀더 가다가 길을 묻기 위해 주차했던 막국수 집에서 막국수를 맛있게 먹었지. 저 건물 다음에 큰 정자 나오고." 이런 성공과 실패, 길 하나와 골목 하나에 얽힌 기억을 간직한다. 현재 위치와 남은 거리를 알려면 지금까지 지나온 길을 연속적으로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과거의 여행은 선의 여행이다.
하지만 내비게이션을 달고 가는 동안에는 이런 실패의 기억이 없다. 시작점에서 도착점을 찍고 점에서 점까지만 쭉 이동하면 목적지에 도착한다. 중간중간 궁금해도 화면만 보면 현재 점의 위치가 표시되는 점의 여행이 디지털사회의 여행이다. 편리함을 얻고 추억을 잃는 현상은 요즘 우리 곳곳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현상인 것이다.
과거에는 많은 지식을 외운 사람이 똑똑한 사람이었다. 성문종합영어 문장과 '한국인이 알아야 할 야생화'를 달달달 외운 친구가 똑똑한 사람으로 추앙받으며 상류층으로 진입했다. 그러나 모바일기술이 발전하면서 더 이상 꽃 이름을 외우거나 영어문장을 외울 필요가 없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길거리나 산에서 보는 꽃이름을 몰라서 고민했다. 그러나 증강현실이 보급되면서 처음 본 꽃이라도 휴대폰카메라만 대면 꽃이름을 알려준다. 일본에서 선보인 '꽃검색(花Search)'는 꽃에 휴대폰카메라를 대면 꽃을 인식해 꽃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서비스다.

'꽃검색'은 꽃에 휴대폰카메라를 대면 꽃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프로그램이다
결국 모바일시대에 지식은 더 이상 암기의 대상이 아니다. 지식을 암기하던 산업사회에서는 사회구조가 마름모꼴을 보였다. 잘 암기하는 소수와 적당히 암기하는 중간층, 공부 못 하는 소수의 구조였다. 그러나 미래사회에 사람은 지식을 창조하는 사람과 지식을 소비하는 사람으로 나누어질 것이며, 사회구조는 상층부 일부에 중간부가 좁고 하층부가 넓은 호리병 구조를 보일 것이다.
이는 피라밋꼴이나 마름모꼴을 보이던 전통적인 지식구조와 많이 다르다. 농경사회에서 사회 구조는 피라밋 구조를 가졌다. 봉건시대의 동서양에서는 아래는 노예와 평민이 중간은 관리와 기사가, 위에 왕이나 성직자가 있는 삼각형 구조였다.
하지만 미래의 지식구조가 호리병 구조로 바뀌면서 부의 구조도 호리병형으로 바뀔 가능성이 많아졌다. 중간층이 많은 사회에서 중간층이 엷어지는 사회로 양극화 되는 것이다. 이는 지식을 외우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되면서 소수의 지식 생산자와 소비자로 나누어지기 때문이다.

지식구조의 변화. 삼각형에서 마름모꼴, 호리병꼴로 바뀌고 있다
기술의 발전은 지식을 외우는 시대에서 창조하는 시대로 바꾸어가고 있다. 킨들(Kindle)과 같은 전자책단말기(e-book 리더기) 안에는 수 천 권의 책을 넣을 수 있다. 아이폰과 같은 스마트폰에도 수 천 권의 책을 넣을 수 있다. 내가 들고다니는 휴대폰에도 수 십 권의 여행책과 수 십 권의 사전이 들어있지만 무게는 0그램이다. 이전 시대라면 여행책 10권 들고다는 것만으로도 허리가 휘었을 것이다. 여기에 언제 어디서나 웹에 접속할 수 있는 스마트폰 덕분에 구글 도서관의 책도 언제나 볼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수 백 만 권을 들고다니는 셈이다.
이미 우리는 수첩에 적던 주소록을 휴대폰에 넣어서 가지고 다니는 시대를 살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중요한 전화번호 몇 십 개 정도는 달달달 외워야 했던 영업사원도 이제는 전화번호를 외우지 않는다. 영어공부용 동영상 역시 테이프가 아닌 휴대폰에 넣고 다닌다. 종이로 가지고 다니던 지하철노선도는 일반폰에 포함되었다가, 이제는 정거장 수와 환승할 차량 번호와 문 번호까지 알려주는 똑똑한 지하철 앱(apps)으로 대체되었다.
휴대폰카메라만 대면 건물 설명이 나오는 세상은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몇 달씩 훈련받고도 잊어버리던 장비사용법도 증강현실 기술 덕에 휴대폰만 대면 알려준다. 지식과 정보에 기반한 많은 직업이 사라질 것이고 새로운 직업이 탄생할 것이다.
미래의 지식은 휴대하는 것도 아니고 검색하는 것도 아니다. 보면 바로 알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지식을 습득하고 활용하는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지식을 암기시키는 현재의 교육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과 대책 마련이 필요한 것이다.
또한 개별 점인 한 인간의 의미에 대한 철학적 고찰과 이들이 모여서 이룩하는 창발의 세계에 대한 관계도 좀더 심도 있게 연구하고 활용법을 고민해야 한다. 개인화된 기기인 스마트폰은 점문화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점문화가 인류 문화를 더욱 발전시키고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문화가 되려면 개별 점을 구성하는 개인의 능력부터 발전시키고, 행복하게 만드는 문화여야 한다.
[디지에코. Issue & Trend. 2010.06.21.] 하이퍼시대와 점문화가 만드는 창발, 지식구조의 변화 [1] [2] [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