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열린 SEK 2003 전시회 특징 중 하나는 여성벤처관이라는 특별관이 마련된 점이다. 여성벤처관은 여성 CEO가 이끄는 업체들로만 구성된 공간이다. 또한 한국IT여성기업인협회(KIBWA)는 26일 열린 여성IT벤처포럼에서 불황 속에서도 성공하고 있는 여성 IT벤처 대표로 홍미희 사이버디스티 사장과 허영희 유럽전자 대표, 박지영 컴투스 대표 등 3인을 선정했다.
홍미희 사장(42)은 온라인 사이트를 개설해 반도체 구매를 대행해주는 B2B사업을 벌이는 사업모델로 성공했다. 허영희 사장(32)은 휴대폰을 대면 현관문을 열 수 있는 아이디어 상품인 디지털 도어록으로 화제가 된 인물이다. 박지영 사장(29)은 모바일 게임업계 대표주자인 컴투스를 이끌고 있다.
이처럼 여성 CEO의 활동이 활발한 분야가 IT 분야다. 외국의 유명 여성 CEO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바로 HP의 칼리 피올리나 회장이다. 해외에서도 일반인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여성 CEO는 IT 기업에서 배출되고 있다. 요즘 유행하는 자바 언어 하면 제임스 고슬링만큼이나 유명한 킴 폴리세(미림바 사장)가 떠오른다.
국내에서도 여성 CEO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최근 국내 주식 시장과 뉴스에서 주목받는 온라인게임 뮤를 서비스하는 웹젠은 이수영 사장이 설립해 이끌었다. 현재 이수영 사장은 마이클럽의 CEO를 맡고 있는데, 발레리나 출신이라는 점에서 화제를 모았다. 온라인 게임 이전 시기까지 국내 패키지 게임 업계를 이끌었던 소프트맥스의 정영희 사장은 대학을 중퇴한 고졸 학력으로 게임회사를 만들어 성공 신화를 만들었다. 버추얼텍을 이끄는 서지현 사장은 여성 CEO로는 처음으로 코스닥에 등록했다. 서지현 사장은 1991년 후배와 함께 PC 3대로 회사를 설립해 성공신화를 이끌었다. 이수영, 정영희, 서지현 사장은 코스닥의 여성 CEO 3인방으로 알려진 유명 CEO다.
여성벤처협회를 이끌고 있는 이지디지탈의 이영남 사장은 지방대 출신이다. 이수복 에스오엔코리아 사장 역시 일류대 출신이 아니다. 그외 한미숙 헤리트 사장, 이포넷의 이수정 사장, 애드온의 최영선 사장 등 많은 여성 CEO가 활동하고 있다.
현재 IT 업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성 CEO는 약 400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는데, 전체 CEO의 5%에 해당한다. 그렇지만 이들 여성 CEO가 운영하는 기업이 대부분 큰 성장을 이루고 있어 IT 업계에서 차지하는 실질 비중이나 위상, 영향력은 이보다 훨씬 크다. 2000년 이후 각종 벤처기업 대상의 경영평가에서 여성CEO들이 정통부장관상 대통령상을 휩쓸고 있는 상황은 이를 뒷받침한다.
비율만 보면 IT 업계에서 여성 CEO의 비율은 아직 높지 않다. 그렇지만 일반인이 아는 여성 기업인 하면 대부분 IT 쪽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국내는 물론이고 외국에서도 전통적인 기업에서 여성 CEO가 나오는 경우는 많지 않다. 조선, 철강, 화학, 자동차 등은 물론이고 패션, 디자인, 광고 등의 여성 인력이 많이 종사하는 분야에서도 여성 CEO는 눈에 뜨이지 않는다. 과거 일반인에게 여성이 운영하는 기업으로 기억나는 회사를 물어보면 애경이나 김영사 정도를 거론했을 뿐이다.
수나 비율로는 아직 남성 CEO에 비해 많이 부족하지만 여성 CEO는 모두 IT 분야에 몰려있다고 말할 정도로 IT 분야에서 여성 CEO의 활동은 점차 넓어지고 있다.
다른 산업과는 달리 IT 업계에서 여성 CEO가 많이 배출되고 여성 CEO가 크게 활약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학력과 성별 차이에 따른 진입 장벽이 낮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국내 유명 여성 CEO는 여성이라는 점 외에도 학력이 높지 않다는 특징이 있다. 고졸 출신 여성이 과연 다른 산업 분야에서 CEO로 성공할 수 있을까?
현재 웹젠을 맡고 있는 김남주 사장(미림예고)을 비롯해 벅스 뮤직의 박성훈 사장(밀양고)은 고졸 출신이고, 넷마블의 방준혁 사장, 하우리의 권석철 사장 등은 일류대 출신이 아닌 지방대 출신으로 성공을 거둔 CEO들이다.
IT 업계가 이처럼 일류대 출신이 아닌 사람이나 여성에게 진입 장벽이 낮은 이유는 학연, 지연, 경력보다는 능력 위주로 승부하기 좋은 여건을 가지고 있고, 창업이 쉬운 분야이기 때문이다. 즉 학력 경력보다는 실질적인 아이디어와 전문 지식이 더 요구되는 분야인 것이다.
전통적인 기업에서는 능력을 갖추어도 여성이나 고졸 출신이 승진하기란 매우 어렵다. 일단 전문 업무를 맡지 못하고 단순 업무나 사무 보조를 맡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철강, 화학, 자동차, 전자 등의 분야는 공장 연구소 등을 만드느라고 창업 비용이 많이 들어 능력이 있어도 쉽게 창업하지 못하는 분야에 속한다. 반면 IT 산업은 능력 위주로 운영되기 때문에 여성 인력이 쉽게 성장할 수 있고, PC 몇 대로도 창업이 가능한 분야라 여성 CEO가 많이 등장할 수 있는 것이다.
조그마한 배터리 회사를 하나 만들더라도 생산 시설인 공장이 필요하거나 시제품을 만들고 시험할 수 있는 시설이 필요하다. 반면 온라인 게임이나 모바일게임, 백신을 만들기 위해서는 PC 한 대와 아이디어만 있으면 가능하다. 때문에 여성이나 고졸 출신이라고 하더라도 능력만 있다면 게임이나 백신 프로그램을 개발해 판매할 수 있다. 실제로 국내는 물론이고 외국의 유명 IT 기업도 몇 명이 작은 방에서 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하면서 PC만 가지고 시작해 성공한 경우가 많다.
이처럼 IT는 다른 분야에 비하면 학력이나 성, 전공 차별이 적은 분야에 속한다. 비전공자나 여성들이 IT 분야에 많이 진출하려는 이유 또한 이 때문이다. 능력 위주의 IT 분야에서 여성 CEO들은 꾸준하게 파고든 전문성과 여성의 유연함, 감성을 결합해 IT 업계에서 성장하는 것이다.
이영남 여성벤처협회 회장은 "IT업계 여성 CEO들의 활약이 두드러진 것은 IT 문화 자체가 남녀차별에 익숙하지 않고 능력만으로 평가해주기 때문"이라며 "능력에 비해 저평가된 여성 인력들이 자기 능력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IT기업에 몰리고, 열심히 일하다 보니 인정을 받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IT 분야에서 여성의 CEO 활동은 더욱 활발해질 것이다. 이에 따라 여성과 남성의 차별도 줄어들 것이다. 여성 인력을 몇 퍼센트 고용하라는 강제적인 제도를 운영하는 것보다 성공하는 여성 CEO가 많이 배출될 때 성 차별은 줄어든다. IT 분야에서 더욱 많은 여성 CEO가 활동하고 그에 비례하여 성 차별도 점차 줄어드는 산업 분야가 되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