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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일수록 아날로그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

IT문화원 컬럼. 2003년 09월 29일. [갈래: recruit] URL: http://www.dal.kr/col/recruit/recruit20030929.html

리크루트

리크루트 컬럼(26). 2003년 09월 29일 (글: 김중태)


디지털은 편하지만 만능이 아니다.

주변의 기기가 디지털 기기로 바뀌면서 생활 방식까지도 디지털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사람들은 디지털 방식의 편리함을 맛보면서 디지털 만능 시대에 취하고 있다. 그러나 디지털 방식은 편리하지만 만능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또한 디지털 방식은 아날로그 방식보다 우월하거나 강하지도 않다. 진짜로 강한 방식은 아날로그 방식이다. 이런 이유로 나는 수시로 디지털 기기가 지닌 위험성을 경고한다.

디지털 기기에 의존하는 것이 왜 위험할 수 있는지 설명하기 위해 나는 디지털로 저장된 매체의 단점을 예로 든다. 디지털로 저장된 매체의 단점은 매체를 재생하기 위한 환경을 갖추기가 쉽지 않은 점이다.

비디오CD를 생각해보자. 불과 몇 년 전에 유행한 사업 중의 하나가 결혼 사진이나 비디오를 CD롬이나 비디오CD로 만들어주는 사업이다. 당시 많은 신혼 부부가 수 십 만원이나 주고 결혼 사진과 비디오를 비디오CD나 CD롬타이틀로 만들었다. 이때 만든 CD롬은 멀티미디어 저작도구를 이용해 만든 것으로 윈도3.1 또는 윈도95에서 실행되도록 제작되었는데, 요즘 사용하는 윈도XP 환경에서는 실행되지 않는다. 몇 년 만에 결혼식 장면을 담은 CD롬은 무용지물이 되고 만 것이다.

이처럼 운영체제나 사용 환경이 바뀌면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디지털 방식의 매체가 지닌 단점이다. 디지털 방식의 매체는 저장방식이 계속 변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당시의 환경을 보존하지 못하면 훗날 사용할 방법이 없다.

불과 15년 전에 가장 많이 사용하던 애플 컴퓨터는 이제 아득한 구시대의 유물이 되었다. 당연히 애플 컴퓨터용으로 만들었던 그림 파일과 프로그램은 사용 불가능하다. 애플 컴퓨터에서 사용했던 저장매체인 테이프와 애플 컴퓨터용 플로피디스크를 읽을 수 있는 장비도 없다. 애플 컴퓨터로 만든 수 많은 프로그램과 그림 파일, 문서 파일을 읽을 방법이 없는 것이다.

10년 전에 사용하던 XT, 286 컴퓨터 역시 사라진지 오래다. 당시 인기를 끌던 닥터할로나 디럭스페인트로 그린 그림 파일이나 한글2000, 사임당, 문방사우 등으로 만든 문서 파일을 읽기 위해서는 해당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 물론 프로그램만 있다고 실행되는 것이 아니다. 허클리스용 프로그램을 실행하려면 허클리스 모드부터 만들어주어야 실행된다.

현재 사용하는 컴퓨터도 마찬가지다. 10년 뒤에도 CD롬드라이브가 계속 사용될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윈도98이라는 운영체제가 10년 뒤에도 계속 사용된다고 보거나 10년 뒤에도 셀러론 600MHz PC로 작업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다. 현재 사용 중인 컴퓨터 역시 계속 바뀔 것이고, 운영체제도 바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애플에서 사용하던 프로그램을 돌리기 위해 애플 컴퓨터를 보관하고, XT용 프로그램을 돌리기 위해 XT를 보관하고, 윈도95용 프로그램을 사용하기 위해 펜티엄 시스템과 윈도95를 보관할 수는 없는 일이다.


디지털은 아날로그를 보완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이처럼 디지털 방식은 의외로 단점과 한계가 많다. 많은 사람들이 디지털 방식의 자료는 영구 보존이 가능하다고 말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사진이나 필름은 앞으로 100년 후에도 판독이 가능하다. 눈으로도 판독이 가능하며 간단한 돋보기나 현상장치만으로도 판독이 가능한 것이 필름이다. 그러나 지금 사용하는 그림 파일 형식이나 CD롬, DVD롬은 불과 몇 년 후면 사용 불가능한 매체다. 소리 파일이나 동영상 파일 역시 몇 년만 지나면 읽지 못하는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이미 나는 이런 불편을 계속 겪고 있다. 오랜 만에 예전에 즐겼던 3D 게임을 실행하니 그래픽 카드가 너무 최신형이라 게임이 실행되지 않는다. OpenGL을 지원했던 게임이라 요즘 그래픽카드와 DirectX 환경에서 실행되지 않는 것이다. 불과 3년 만에 달라진 환경이다. 주요 장면만 잘라놓은 동영상 파일은 코덱이 다르다고 재생되지 않는다. 하루가 다르게 최신 코덱이 등장하고 재생 프로그램이 최신 코덱 위주로 지원되기 때문에 과거의 코덱으로 만든 동영상은 요즘 컴퓨터에서 재생되지 않는 것이다. 옛날에 많이 받아놓았던 implay용 소리 파일을 비롯해 각종 소리 파일과 그림 파일 역시 다시 즐기는 일이 쉽지 않다. 그나마 아직까지는 도스 환경을 지원하는 시스템을 사용 중이라 그럭저럭 볼 수 있지만 몇 년 후에도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물며 50년 뒤에도 요즘 내가 보고 있는 그림 파일과 동영상 파일을 컴퓨터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중요한 자료를 디지털 방식으로 보관하는 일은 신중하게 결정해야 하는 일이다.

아마 몇 년 지나지 않아 대부분의 사람들이 디지털 카메라와 디지털 캠코더로 촬영한 사진이나 동영상을 0과 1로 된 디지털 파일로 저장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저장한 파일을 몇 십 년 뒤에도 읽을 수 있을 것인지 여부를 생각해보면 디지털 방식으로 기록하는 일이 결코 좋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느낄 것이다.

100년 전에 나온 책의 내용은 지금도 누구나 눈으로 바로 확인할 수 있고, 인화지로 뽑은 사진이나 필름은 언제 어디서나 즉시 확인이 가능하다. 아마 수 십년이 지나도 사진 필름을 이용해 사진을 출력하는 일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사진 필름에 어떤 내용이 기록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사람의 눈만 있으면 된다. 아이들의 재롱을 담은 비디오테이프를 재생하기 위해서는 테이프를 재생할 수 있는 캠코더나 VTR만 있으면 충분하다. 50년 전에도 50년 후에도 전축만 보관하면 LP판을 재생할 수 있다. 또 VTR만 있으면 비디오테이프 재생이 가능하다. 그렇지만 VTR과 비슷한 시기에 등장해 전 세계인이 사용했던 애플 컴퓨터용 프로그램과 애플 컴퓨터로 만든 자료들은 이제 박물관에 있는 애플 컴퓨터를 작동시켜야 겨우 확인이 가능하다.

요즘 우리가 사용하는 프로그램이나 자료를 다시 재생하려면 요즘 사용하는 PC와 운영체제를 동시에 보관해야 한다. 윈도95와 같은 구형 운영체제는 최신형 하드웨어를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운영체제만 보관해 나중에 작동시킬 수 없다. 때문에 컴퓨터 환경을 보존하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1~2년 간격으로 바뀌는 PC와 운영체제를 계속 보관할 공간은 없기 때문이다. 도스 3.0, 윈도 3.1, 윈도95, 윈도98, 윈도ME, 윈도2000, 윈도XP로 계속 바뀌는 OS에 맞추어 XT, AT, 286, 386, 펜티엄, 펜티엄MMX, 펜티엄4로 계속 바뀌는 HW를 보관할 일반인은 없다.

물론 디지털 방식은 매우 편리하다. 즉석에서 찍은 사진을 인화하지 않고 바로 파일로 저장하고 인터넷을 통해 동시에 수 많은 사람에게 전송할 수 있다는 점은 디지털 방식이 가진 장점이다. 또한 수 만 번을 복사해도 원본의 내용 그대로 유지하는 점도 디지털 방식이 가진 장점이다. 그렇지만 일반인이 알고 있는 것처럼 디지털 방식의 자료가 영구 보존되는 것도 아니며 보존성이 아날로그 제품보다 우수한 것도 아니라는 점은 명심해야 한다. 때문에 몇 십 년 뒤에 노인이 되어 자녀의 돌잔치 비디오를 보는 것을 낙으로 살고 싶다면 어떤 기기로 사진을 찍고 어떤 기기로 동영상을 촬영할 것인가 신중하게 고민해야 한다.

결국 디지털 방식은 아날로그를 대체할 수 있는 방식이 아니다. 아날로그를 보완할 수 있는 방식이다. 자연과 우주는 아날로그로 구성되었으며 무한대의 신비와 무한대의 자료를 담고 있다. 이를 유한한 디지털로 대체하거나 디지털 방식으로 저장하는 일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디지털 시대라고 해서 디지털만 잘 다루어서는 안된다. 아날로그 시대에는 컴퓨터를 잘 다루는 디지털 사용자가 희소성이 높아 전문가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에는 아날로그를 잘 다루는 사용자가 희소성을 인정받게 될 것이다. 디지털 시대가 될수록 아날로그에 대한 관심을 더욱 많이 가져야 하는 까닭은 이 때문이다.
리크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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