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주부들의 컴퓨터 배움열이 매우 높다. 얼마 전에 동료집에 저녁식사를 얻어먹으러 갔는데, 그집 마나님께서 요즘 컴퓨터통신에 한창 빠져있다고 한다. 하루에도 몇 시간씩 컴퓨터통신을 하는데 대화방에서 만난 남자들이 꽃도 보내주고 편지도 보내준다며 함박 웃는다. 이럴 때 속 좁은 남편이라면 '아니? 이 여자가 나를 놔두고 외간남정네와 편지를 주고 받으며 희희덕거려? 당장 통신 끊어!'라고 말하겠지만 맘 좋은 내 동료는 '요즘 신여사님 신났어. 아줌씨한테 꽃을 주는 남자도 생기고.'하면서 빙긋 웃기만 한다. 단말기로 불편하게 통신하는 부인을 위해서 컴퓨터 한 대 사주는게 어떠냐고 말했더니, 부인이 '조금만 더 기다려보고요. 꽃을 선물해주는 사람이 생겼으니 컴퓨터를 선물하는 사람이 생길지도 모르잖아요.' 하고 말해 모두 크게 웃었다.
어떤 때는 통신망에서 대화를 하는 중에 갑자기 상대편 보고 '뭐야? 당신 이리로 와 봐'하고 말하는 사람을 본다. 갑자기 말투가 바뀌면 사람들이 깜짝 놀라는데, 이때 상대편이 '흥! 싫어요. 당신이 이리로 와요.'하고 말해 사람들을 더욱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는 부부가 함께 통신을 하는 경우다. 컴퓨터도 두 대, 전화번호도 두 개. 이것이 요즘 컴퓨터세대의 신혼부부 모습이다. 이들이 책상을 나란히 하거나 벽을 사이에 두고 따로 접속해서 대화방에서 달콤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느 순간 티격태격 부부싸움을 하는 모습을 가끔 보여주는 것이다.
사실 자기 부인이 통신으로 연애편지를 주고받고, 모임에 나가서 밤 늦게 술을 마시고 들어오는데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할 남편은 드물 것이다. 다만 마나님께 얻어맞을까 싶어서 내색을 못하는 것이다. 요즘 결혼하는 남자 중에 부인 보고 '당장 통신 그만 두지 못해!'라고 말할 수 있는 간 큰 남자는 드문 것이다.
그럼 요즘 주부들이 컴퓨터를 배우고 컴퓨터통신을 배우는 이유가 어떤 노래제목처럼 '바람 난 여자'가 되기 위해서인가? 물론 아니다. 주부들이 컴퓨터통신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생활범위를 넓히기 위해서다. 우리나라 여성은 결혼을 하면서부터 생활범위가 집으로 한정된다. 바깥 출입도 적고 많은 사람을 만날 기회도 적어진다. 그러던 주부들이 요즘은 컴퓨터통신을 통해서 자신이 개발하지 못했던 능력을 개발할 기회를 가진다.
지방과 서울사람이 여러 명 모여 동시에 대화를 나누면서 새로운 세계의 소식을 듣기도 하고, 해외통신망에 접속해서 다른 나라 모습을 감상하기도 한다. 발표할 곳이 없어서 글을 쓸 수 없었던 사람은 통신망의 게시판을 발표무대로 삼아 글을 쓰기도 한다. 직접 독자들의 애정어린 충고와 격려를 들을 수 있기 때문에 글을 다듬어가는 입장에서 보면 지면을 통한 글쓰기보다 나은 점도 있다. 이렇게 쓴 글이 인기를 끌게 되어 책으로 내고,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모습도 가끔 본다. 연극도 만들어보고, 연주회도 가져보고 영화에 대해서 신나게 토론을 할 수 있는 기회도 가질 수 있다. 무엇보다 좋은 점은 인간과 단절된 현대사회에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부류의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학교와 집, 직장과 집, 또는 집안에서 늘 보는 얼굴만 보던 현대인들이 통신을 통해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 교류를 할 수 있고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다는 점은 통신이 지닌 가장 큰 매력일 것이다.
물론 컴퓨터통신 외에도 컴퓨터가 할 수 있는 무궁무진하다. 컴퓨터를 통해서 가계부를 정리하면 수 없이 계산기를 두드려야 했던 불편함도 사라지고, 타자기를 사용할 때는 만들 수 없는 예쁜 문서도 만들 수 있다. 집안을 돌보다가 심심할 때면 게임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공주만들기'라는 게임을 통해서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이 필요한가 점검해볼 수도 있다. 또 옛날과 달리 요즘은 교육용프로그램이나 가족들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많이 나오고 있다. 시디롬이라는 매체를 이용해서 나오는 이런 프로그램들은 오디오테이프나 비디오테이프에 비해 몇 배의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자녀교육을 위해서도 컴퓨터는 배울 만하다. 컴퓨터는 조금만 배워두면 이처럼 재미있고 편리하며 유용한 기계다.
그러나 어머니나 아버지가 컴퓨터를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이유는 자녀가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기 위해서다. 요즘도 언론에서는 매일 같이 컴퓨터를 통한 폭력물과 음란물의 유입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사실 우리가 자라던 시기에도 새로운 매체인 음란비디오의 문제를 심각하게 이야기했고, 앞선 선배들의 시기에는 음란 카세트테이프와 만화, 잡지에 대해서 큰 문제라고 근심을 표시했다. 그러나 장발에 나팔바지, 미니스커트를 입던 그들은 지금 우리나라의 건실한 주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매체를 통해서 음란물을 접한다는 사실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니다. 컴퓨터에만 빠져 다른 일에는 무기력증 또는 거부감을 보이는 폐쇄적인 인간이 되거나 컴퓨터를 통해서 잘못된 이성교제, 잘못된 성취방법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이 더 큰 문제다. 그러나 컴퓨터를 모르고서는 자녀들이 컴퓨터를 통해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더구나 앞으로 자녀들은 점점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질 것이다. 이런 자녀들과 함께 하기 위해서 부모들은 컴퓨터를 배워야 하는 것이다. 자신의 생활범위를 넓히기 위해서, 잊고 지내던 꿈을 살리기 위해, 그리고 현실처럼 자라나는 아이들의 건강한 삶을 위해서 컴퓨터는 배워둘만 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