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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컴퓨터구입은 분수에 맞게



IT문화원 컬럼. 1995년 12월 01일. URL: http://www.dal.kr/col/songwon/songwon199512.html

송원백화점

송원백화점. 제 3의 물결. 1995년 12월. 김중태(www.dal.co.kr)


컴퓨터를 구입해달라고 떼를 쓰던 자녀들이 요즘은 컴퓨터를 더 좋은 것으로 바꾸어달라고 극성이다. 그러나 몇 십 만 원 하는 냉장고나 TV 한 대 바꾸는 일도 쉽지 않은 판국에 백만 원이 넘는 컴퓨터를 사주는 일이 어디 쉬운가. 그렇다고 해서 안사줄 수는 없고. 이래저래 부모들의 마음고생만 심하다.

하여간 어차피 사야 할 컴퓨터라면 잘 사는 문제만이 남은 셈이다. 잘못하면 비싼 컴퓨터를 사주고도 원망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전에 <베스트드라이버>라는 연극을 봤는데, 운전기사인 아버지가 어렵게 컴퓨터를 사주자 '요즘 누가 이런 중고286을 써요.' 하면서 투정을 부리는 장면이 있었다. 이처럼 큰 마음 먹고 사다준 선물이 불평불만의 대상이 된다면 얼마나 가슴 아프겠는가.

우리 사무실에서 함께 일하는 부장님도 선물을 잘못해서 한 동안 사모님의 원망을 들어야 했다. 여자들이 생일보다 중시한다는 결혼기념일을 매번 까먹던 이분이 작년에는 친구분이 알려준 덕에 결혼기념일임을 알았다. 그래서 무뚝뚝한 이분이 그날은 큰 마음 먹고 장미꽃 다발을 사가지고 집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깜짝 놀라면서 감격하던 사모님, 곧 장미꽃 송이를 세어보더니 표정이 차갑게 변하면서 말했다.

"이제는 우리가 언제 결혼했는지도 모른단 말여요?"

알고보니 결혼 구 주년인데 팔 주년으로 잘못 알고 장미꽃을 여덟 송이만 묶었던 것이다. 그일로 인하여 부장님은 한 동안 사모님과의 말싸움에서 밀려야 했다. 사모님은 심통이 날 때마다 '결혼한 해도 기억 못하는 사람이...'라는 말로 구박했기 때문이다.

비싼 돈 주고 산 장미꽃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할 수 없는 것처럼, 비싼 돈 주고 산 컴퓨터가 제대로 효과를 발휘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그럼 컴맹인 사람이 컴퓨터를 살 때 어떻게 사면 가장 잘 사는 것일까? 컴퓨터를 살 때 살펴봐야 할 주의사항은 수 백 가지가 넘지만 컴맹에게 그 내용을 모두 이야기해봐야 소 귀에 경읽기일 뿐이다. 그러므로 컴퓨터에 관해서 잘 모른다고 생각하는 분께 나는 한 가지 내용만 권한다. 그 내용은 한 물 가려는 기종으로 사라는 것이다.

컴퓨터 가격이 팍팍 내려간다고 해서 컴퓨터 가격이 내리기를 기다렸다 사는 일은 어리석은 일이다. 사기 전까지는 결국 아무 것도 사용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단은 컴퓨터를 사는 것이 좋다. 단 현재 나온 최고급 기종을 사지 말고 이제 한물 가려는 기종으로 사는 것이 좋다. 그럼 한 대의 가격으로 두 대를 살 수도 있다.

컴퓨터초보자가 최신형인 펜티엄-133 컴퓨터를 사용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단순하게 시디롬드라이브를 돌려보고 멀티미디어를 즐기기 위한 것이라면 486DX 기종으로도 충분하다. 현재 486DX-66 CPU와 주기판은 십오만 원이면 충분히 사지만, 펜티엄-133 CPU와 주기판을 사려면 팔십만 원 정도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일단은 486으로 구입한 후에 내년 초쯤에 펜티엄으로 바꾸는 것이 좋다. 몇 달이 지나면 펜티엄CPU의 가격이 몇 십 만 원 정도 내려갈텐데, 그 정도라면 지금 산 십오만 원짜리 486 CPU와 주기판을 그냥 버린다고 해도 훨씬 이득인 셈이다.

따라서 지금 컴퓨터를 살 때 부담이 적고, 내년초에는 지금 펜티엄컴퓨터를 산 사람보다 더 좋은 펜티엄컴퓨터로 바꿀 수 있다. 지금 비싼 돈 들여서 펜티엄75 컴퓨터를 산 사람은 내년초에 더 좋은 기종으로 바꿀 자금이 없지만 지금 486컴퓨터를 산 사람은 내년초에 펜티엄 120으로 바꿀 정도의 자금여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컴퓨터초보자가 컴퓨터를 살 때는 최상의 기종으로 사지 말고, 두 단계 쯤 낮은 기종으로 구입하는 것이 좋다. 사용하다가 컴퓨터실력이 늘면 꼭 필요한 제품만 제대로 구입할 수 있고, 그때는 가격도 떨어질테니 여러모로 이득이다. 또 만약 사다 놓고 사용하지 않는다 해도 싸게 구입한 제품이므로 크게 아까울 것도 없을 것이다.

특히 많은 사람들이 광고에 유혹되어 비싼 컴퓨터를 사는데 상당수의 광고가 허위과장광고이거나 사기광고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때문에 만약 부모가 자녀를 위해서 컴퓨터를 사는 경우라면 자녀들의 말을 들어보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컴퓨터는 다룰 사람의 의견을 들어보고 사는 것이 가장 좋기 때문이다. 적어도 컴퓨터에 대해서는 부모보다 아이들이 더 많이 아는 경우가 많으므로 아이들의 말이라고 해서 무시해서는 안된다.

컴퓨터를 꽤 다룬다는 내가 집에서 사용하고 있는 기종은 286컴퓨터다. 요즘 말로 그냥 줘도 안가진다는 기종이지만 나는 이 컴퓨터를 가지고 원고도 쓰고 통신도 하고, 자료도 관리하고 게임도 즐긴다. 그러나 컴퓨터를 모르는 내 선배들은 비싼 컴퓨터를 구석에 소중하게 모셔둔 뒤 가끔 먼지를 털면서 컴퓨터를 만져볼 뿐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점은 컴퓨터에 든 기능이 무엇이냐가 아니라,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기능이 무엇이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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