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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ctools] 미리 가보는 노년의 추억



2005.03.23 URL: http://www.dal.kr/data/humor/pctools_preview_silver_age.html

글: 김현국(Hitel ID=pctools)


김현국 (pctools )
-미리 가보는 노년의 추억- 10/07 10:04 499 line


- 노년의 추억 (1부 )

여름을 씻어 내는 소나기가 내린다. 벌써 또 한번의 여름이 간다.내가
몇번의 여름을 보냈던가 ? 손꼽아 보니 벌써 60번의 여름을 보냈다. 내
나이가 벌써 60살이 되었다니..벌써 서기 2022년이다.

다리위의 난간에 무심코 손을 얹자 전자 감응장치가 작동하여 삐이익
~ 삐이익 ~ 하고 경보음이 요란하게 울린다.

" 이놈의 세상 참말로 많이도 바뀌었구나."

세월은 다리 이름마저 바꾸어 놓았다. 마포 귀빈로에서 여의도광장으로
통하는 이 다리는 맨처음에는 서울대교 였고 나중에는 마포 대교라고
불리웠다가 몇십년이 지난 지금에는 <마포 스테이션 -제 9 브릿지> 라
는 행정명으로 불리고 있었다. 40년전 내가 스무살때에는 이 다리위를
왔다 갔다 하며 이런 생각 저런생각을 했고 가로등에 기대앉아 술을
마셨었는데 40년이 지난 오늘에는 다리에서 교통사고나 자살하는 사람
들을 막으려고 전자 감응 경보 장치를 해놓았다. 그래서 무심코 옛날 생
각에 난간에 기댈 요량으로 손을 뻗치면 그 지겨운 전자 경보장치가 울
렸다. 그때처럼 밤섬위로 강바람은 변함없이 불어오고 원효대교의 노
란 전등불은 강물에 흔들거리며 반사되건만 이미 옛날의 것은 아니었다.

다리끝의 통제소에서 경비원 하나가 달려왔다.

" 아니..이놈의 영감탱이가 또 여기에 왔네.. 여기엔 또 왜 왔어 ~"

" 미안하네! 젊은이..
깜빡잊고 다리위에 손을 올려놓았다네 .내 옛날이 생각나서 또 와봤어

"

"벌써 몇번째야.. 왜 자꾸 다리에 손을 올려서 감응장치를 울리게 하는
거야 ? 몰골도 꾀죄죄한 거지 영감탱이가.."

40년전에 이 다리위를 걸을때 나이와 비슷할것 같은 갓 스무살 될까 말
까한 새파란 젊은 놈의 반말지꺼리를 들으니 얼굴이 뜨거워졌다. 그러
나 늙고 지친 몸에선 격한 감정의 솟음보다도 무기력이 양 어깨의 힘
을 빼버렸다. 허탈하게 40년전에 살았던 동네인 <마포-A블럭- 효창에비
뉴 >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저 늙으면 죽어야 한다니까..젊었을때 얼마나 한심했길래 늙어서 저
꼴인지.. 에이. "

등뒤로 들린 소리에 울컥하고 치밀어 올라왔다. 더이상 참을수 없었다.
주먹을 불끈쥐고 휙 돌아섰다.

" 이 막 배워 먹은놈... 네 애비 이름이 뭐냐..?"

" 이 늙은이가 화도 낼줄 아네.. 우리 아부지 이름은 알아서 뭣할려고
그래 ? "

" 너같이 못된놈 나은 인간이 누군가 궁금해서 그런다..이놈아."

" 아니.. 이 늙은이가 뜨거운 맛이 보고 싶어 싶어 환장했나 "

젊은 놈이 열이 뻗쳤는지 허리춤에서 전자 봉을 꺼내려 했다.

" 네놈이 내 아들이었으면 뺨을 후려쳤을텐데.. "

" 헹 ~ 이 거지 영감아 ..
내가 당신 아들이 아니라서 참 안됐군 ..저꼴에 성질은 살아서..

"그래.. 너 말잘했다.
다행히 너는 내 아들이 아니라서 오늘 반쯤 죽어줘야 겠어 "

분노한 나는 그대로 몸을 날려 녀석의 안면을 강타하고 돌려차기 5회,
찍어차기 7회 박치기 3회 (왜냐하면 그 녀석의 머리가 더 단단했으므로
더 할수 없었음) 을 하고 언젠가 전화비 많이 나와 부모님께 두들겨 맞
을때 눈여겨 보았던 재털이로 마빡까기 ......

(이하 "컴퓨터, 그사랑과 슬픔 <(김현국 저, 에스컴사 발행)" 중 55페
이지 넷째줄부터 13줄까지 참조할것 )

그리고 비틀거리는 녀석을 옛날에 유명했던 <스트리트 화이터>란 께임
에 나오는 <드롭킥 후 가일의 유령던지기> 로다리 아래 강물로 던져버
렸다. 풍덩하는 소리가 나자 경보장치가 울리고 <당인리 핵발전소> 쪽
의 <한강수위제어 본부> 에서 초고속 구조정이 달려오는것이 보였다. 놈
은 구조되어도 아마 열흘은 끙끙 앓아 누워야 할것이다.이젠 정든 이 다
리위에는 다시 오지 못하게 되었다.바삐 다리를 벗어났다.몸안에서는 뼈
마디가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마디마디의 통증은 걸음을 힘들게 만들
었다. 이 나이 먹어서 남을 개패듯 패다니..수십년전 젊을때도 때려본
것보다 맞아본것이 열배는 넘었는데 늙고 서러우니성질만 사나워지나
보다..노한 기운으로 너무 많은 힘을 써버렸다. 통증이 목까지 밀고 올
라와 신음소리를 입으로 밀어냈다.

빌어먹을..
30년전에 어두침침한 극장 2층 구석에서 <퐁네프의 연인들> 이란 영
화를 보았었지. 그 영화에 퐁네프 다리위의 늙은 부랑자가 발을 헛딛어
강에 빠져죽는 장면이 있었어. 그때 내가 무슨 생각을 했었던가. 어쩌면
이런한 몰골을 생각했었을거다.이제 내 주변엔 아무도 없다. 스무살을
넘어서 늘 가슴 한구석에서 두려워 하며 뭉쳐있던 내 미래가 맞았음을
또느낀다.

언제였던가..
내기억이 맞는다면 30년전 봄에 나는 한메 타자교사라는 타이핑 프로
그램을 만지다가 황순원님의 작품을 새로 구성한 <소나기 -15년후>

라는 유머 소설을 썼었다. 그리고 그것을 한참 날리던 하이텔이란 컴퓨
터 통신에 올렸었다. 그 내용은 출판된 책에 들어가서 몇만명이 넘는 사
람들이 보았다. 컴퓨터 통신의 채팅에서 전화비와 맞바꾼 내 손가락은

분당 300타 - 400타 이상을 부지런히 칠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그러나
늙고병든 지금은 옛날의 총알같던 타자스피드를잊은채 마디마디 끊어
지는 통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주머니에서 마지막 남은 <쏘마 > 한알을 꺼내먹었다. 과거에 올더스 헉
슬리가 <멋진 신세계> 에서 예견한 미래의 필수품중에 하나였다. 이 약
을 먹으면 마약과도 같이 몸의 통증을 잊고 불쾌한 기분이 사라지며 인
체의 신진대사가 원활해져서 활동력이 상승하는 약이었다. 미래는 합법
화된 마약을 팔고있었다. 다만 과거처럼 히로뽕이나 크랙,코카인처럼 사
고의 마비,인체의 후유증같은것이 없다는 것이 다른 점이었다.

약이 목을 넘어가자 금방 효과가 나타났다. 효창에비뉴 에서 SUB-RAOD
로 내려가 망우스테이션 - 영등포스테이션으로 통하는 지하 에스켈레이
터를 탔다. 2020년의 서울은 지하철 대신에 SUB-ROAD 라고 불리는 거미
줄같이 구석구석 나있는 지하 에스켈레이터가 설치되어 있었다. 가만이
올라 있으면 자동으로 바닥이 움직여서 자기가 원하는 곳까지 연결된곳
으로 갈수 있었다. 또 지상에는 기본적인 도로망과 아울러 건축학과 교
통행정학의 발달로 100층이 넘은 고층 빌딩들이 빽빽이 들어 차 있었
고 건물들의 옥상에는 옆건물로 통하는 유리 터널 이 있어서 있어서

땅에 내려오지 않고도 서울시내를 모두 돌아다닐수 있었다. 밤에 내려
다 보이는 서울시내 야경은 이 투명한 유리 터널에서 나오는 빛으로
인하여 크리스 마스 트리같았다. 이것은 스카이 로드 (SKY ROAD) 라고
불리웠다.

이 시대에는 나같은 부랑자나 걸인 빼고는 누구나 개인 비행정이 있었
다. 도시 내에서는 모두 에스켈레이터를 이용하고 도시외곽으로 나갈때
는 고속비행정을 가지고 다녔다.이토록 과학과 문명이 발달하고 빈부 격
차가 줄어들었지만 옛날속담처럼 <가난은 나라에서도 구제못한다> 는
말이 어느부분에는 맞는 말이엇다. 문명은 극도의 개인주의를 만들어 냈
고 혜택을 받지 못하는 개인은 부랑자가 되어 도시의 그늘에 가려졌다.

에스켈레이터를 타고 청량 메트로 588번 구역 D지점에서 내렸다.과거
에 이곳에는 사창가가 있었다. 찰나의 쾌락을 상품화 시키던 이곳에

지금은 매머드 마트 (과거의 맘모스 백화점) 라는 대규모 유통센터가

레이저빔 네온싸인을 반짝이며 활기차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곳
에 수십년째 변하지않은곳이 딱 하나 있었다. 그것 때문에 내가 늘 이
곳으로 오는것이었다. 1980년대 초 쯤 부터 이곳에 있던 성바오로 병
원을 지나 답십리로 통하는 전철 지하굴다리 아래에는 무료 급식소가
있었다. 사회 자선단체에서 운영하던 것으로 부랑자나 걸인,노인들에게
무료로 밥을 먹이던곳이었는데 이곳만은 몇십년째 변함없이 무료급식을
하고 있었다. 내가 스물 여덟살때던인가에 택시를 타고 거래처를 가다가

이곳에서 밥을 타먹는 불쌍한 사람들의 모습을 본적이 있었다. 택시가
신호대기 하는 동안 본그모습이 아주 오랫동안 슬픔과 께름직한 불안
으로 기억되었었다. 굴다리 위에서 전철 지나가는 굉음이 들리고 바로
앞에는 차들이 매연을 뿜으며 달리는데 굴다리아래 차도옆의 난간에 군
인 식기같은 것에 밥을 타서 먼지와 사람들의 시선이 쏟아내는 부끄러
움조차 허기로 때우며 밥을 부지런히 넘기는 불쌍한 사람들을 보았었다.
그때 내 안주머니에는 10년동안 2000원짜리 밥을 매일 사먹을수 있는
돈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곳이 없으면 밥을 굶어야될 늙고
병든 부랑자 일뿐이었다.지금 이곳은 풍경은 그때와 근본적으로 다를바
가 없었다. 위로 전철이 굉음을 내며 지나다녔고 아래는 자동차들이 먼
지를 휘날리며 달렸던 지하굴다리는 에스켈레이터가 다녔다. 그때나
지금이나 무료급식소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동정의 눈길을 보내는 곳이었
다. 다만 자동차를 타고 지나가던 동정의 눈길이 에스켈레이터 위라는
것만 바뀌었을뿐..


설마 했으나 그 빌어먹을 예감과 불안은 들어 맞았다. 내가 늙어서 혹시
이런곳에 올지도 모른다는 어두운 불안감이 불안감이 현재 사실이 되어
버렸다. 그것이 내 무능이나 좌절일수도 있고 내게 내려진 불행일수도
있다고 생각을 했었다.

소마 약 기운이 다 떨어지는 것 같았다. 다시 통증이 엄습해 왔다.답십
리쪽 굴다리 아래로 가니 벌써 부랑자들이 꽤 많이 모여 있었다. 옛날에
는 오후 1시에 무료 급식을 했지만 지금은 오전과 오후, 심야 등 세번에
나누어서 무료급식을 하였다.몇십년전에는 식기에 국과 밥한덩어리 ,
김치 몇조가리 를 담아 주었지만 지금은 조금 나아져서 부페식으로 먹게
만들어 놓았다. 음식은 국가에서 배급하는 무료급식이라옛날이나 지
금이나 겨우 목구멍으로 넘길수 있는 초라한 것이었다.이 시대에 시민
으로 인정된 보통의 사람들에겐 음식축에도 못끼는 메뉴들이었다.

걸인 무료급식소에는 음식이라고 해보았자 풀코스로 겨우 50여가지 가
제공되었는데 겨우 양송이를 곁들인 불란서식 쏘스, 러시아산 철갑상
어알, 이태리식 훈제 바베큐, 록키산 연어구이,마포 최대포 갈비, 비엔
나 햄 쏘세지에 겨자를 바른 샌드위치 등등이 대표적인 것이었고 지겨
운 광동요리는 언제나 단골메뉴였다.아무리 무료 급식을 받는 거지 라지
만 난자완스 ,류산슬 , 라조기 , 탕수육, 싸춘결 등은 질려서 먹을수
가 없었다. 또 후식음료 라고 해봐야 100년 숙성된 프랑스 남부 지방의
백포도주나 불가리아산 요구르트(정확한 명칭은 잘 모르겠으나 이것을
이브지옵프 라고 불렀다."이브 지오프" 는 브라질 말로 "따봉"이래나
뭐였고 우리나라 경상도 방언으로는 "댓끼리" 였고 미국 속언으로는
"FUCK'IN GOOO~~~OD !" 이라고 했다.) 정도 였다. 국경일이나 명절때면
그 귀한 " 포천 막걸리" 를 한컵씩 먹을수도 있었으나 국고 지원금이
바닥이 나는 연말에는 시바스 리걸이나 로열살루트, 레미마틴 같은

시시한 몇십만원짜리 양주들이 나오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보통사람들이 먹는 음식은 이것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최
고급 음식들이었다. 말만 들어도 군침이 도는 < 핵원자로에서 구운
물고구마> 나 < 레이저를 45도 각으로 쏘아서 튀긴 뻥강냉이>, <대서양
석유 시추공에 감아서 끓인 쫄면>, <매브릭 미사일을 쏘아서 파생열로
구운 쑥떡>,(조금 맛이 덜한 스커드 미사일로 쏴 구운 개떡도 있었다)
, <저온 핵융합반응으로 끓인 수제비> 등이었다.가격은 엄청나게 비싸서
보통 500 달파엔마루블원 이상이었다.

( 이 시대에는 국제 화폐가치가 모두 통합되어 달라,파운드,엔화,리얄,
마르크,루불,원화 등을 한꺼번에 액면으로 평가한 국제 공통화폐가 통
용되었다.)

그래서 호주머니에 겨우 구걸한 <달과 6펜스> (써머셋 모옴이 만든 제
일 가치가 낮으며 형이 상학적인 화폐) 를 몇개 달랑거리는 나같은 가
난뱅이 걸인들은 먹어볼 엄두조자 내지 못했다.

오늘은 뼈마디의 통증이 심해서 간단하게 35가지 코스로 돌아서 먹었다.
입안으로 넘기면서 밀가루 반죽을 함부로 짤라 던져 넣어 저온 핵융합
반응으로 끓인 수제비국 한번 먹어봤으면 하고 간절하게 바랬다. 에스켈
레이터를 지나는 사람들이 흘낏 흘낏 쳐다보면서 지나갔다. 몇스푼 떠먹
는데 기침을 하면서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다. 식기에 닭튀김 몇개를
얹어 놓은 오재촐님이었다. 32년전에 케텔이란 컴퓨터 통신에서 만난

또래의 사람이었다.

"현국님..언제 오셨수 ? 쿨럭..쿨럭.. 컥컥 ~ "

기침이 격해지면서 식기 를 떨어뜨렸다. 요란하게 소리를 내며 식기가
바닥에 부딪쳤다. 봉사요원들이 볼까봐 얼른 줏어 들었다.

"재촐님 왔구먼요.. 여기 앉으시우 "
그 천식은 낫지도 않는가 보구려.."


불쌍한 사람..~
그도 나만큼이나 비참한 노년을 보내고 있었다.나이는 몇살 아래였지만

다 늙은 지금에는 나보다 오히려 10년은 늙어 보였다.그의 인생도 참으
로 불쌍했다.한때 필자로서 명성을 떨치던 20대에는 무엇하나 부러울것
이 없던 사람이었다. 그는 내가 언제나 유머 소설의 주인공으로 등장시
키던 인물이었다. 베트남소나기, 오재촐의 컴퓨터적 사랑이야기, 목욕탕
의 공포 등등..
그렇게 명성을 떨치던 그는 대학을 마치고 꿈꾸던 미국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사업을 시작해서 크게 성공하였다.첨단정보제공 산업이었다.

그가 45살 때까지 키워놓은 그의 사업체는 정보 산업 분야에서 3위안에
들만큼 큰 업체 였다. 그러나 믿을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년간 매출
액이 90년대 화폐로 100억원이나 하던 그의 업체가 하루아침에 망해버린
것이었다. 첨단 정보 제공 산업의 성격상 그의 회사는 모든 자료를 대형
컴퓨터에 수록해 두었는데 그 회사의 제 5세대 컴퓨터인 90986 - 64
기가비트 메인 시스템에 바이러스가 침투해버린것이었다. 참으로 아이
러니칼한 일이었다. 그 바이러스는 1990년대 초에 유행하던 바이러스 축
에도 못끼는 <예루살렘> 바이러스를 변형시킨 하찮은 <예순살놈> 바이
러스 였다. 이 바이러스는 노인의 사회적 냉대에 분노한 예순살 된 어
느 미치광이 늙은 과학자가 만든것으로 처음에는 1991년도에 한국의
남쪽지방 산중에 있는 어느 사찰의 동자 승이 가지고 있던 노트북 컴퓨
터에서 발견되었었다. 초고성능화된 2000년대의 컴퓨터에 수십년전 바
이러스가 시스템을 망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 이 바이러스에 관한 기술적 자료는 PCTOOLS 의 장편 컴퓨터유머 소

"스님과 컴퓨터" 제 3편 부분에 수록되어 있다 )

이 바이러스는 램상주 형으로 COM 및 EXE 확장자를 가진 화일에 주름살
이 지게 하며 OVL 화일과 SYS 화일에 망령이 들게 했다. 날씨가 궂은
날이나 장마때가 되면 " 에고 허리 쑤신다 " 라는 메세지를 내고 시스템
이 다운되었으며 해마다 노인의 날이되면 " 너도 늙어 봐라 이놈아 !

" 라는 메세지가 출력되며 전체 자료를 지워버렸다. 섹터 에디터로 화일
내부를 살펴보면 끝부분에 " 내 청춘을 돌리도~ 돌리도 ~ " 라는 말이
있었다.

8톤 트럭으로 5만트럭분이 넘는 자료를 지워버린 그 하찮은 바이러스
때문에 그의 회사는 그날로 엄청난 빛을 지고 도산해 버렸다.

그도 내면에 외로움과 쓸쓸함으로 가득찬 사람이었다. 그의 옆에 있던

사람들은 하나 둘 씩 그를 떠나갔다. 그에게도 가족은 없었다. 그도
내가 했던 것과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도 몰랐다. 누가 내 허한 가슴을
채워줄수 있단 말인가 하는 ...

그를 만난것은 거의 30년만인 작년 가을 이곳에서 였다. 처음에는 그
를 알아보지 못했다. 키가 크고 말랐던 체구는 거의 뼈다귀가 드러날
정도로 앙상했었다. 떨리는 손으로 밥을 먹던 그가 나를 알아보곤 놀
라며 숫가락을 떨구었고 몇초후엔 고개를 떨구었고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을 떨구었다. 반가움인지 고통스러움인지 알지 못했다.한참후 흐느
끼며 말했다. 몇십년전에 컴퓨터 통신인 사이에서 사용하던 예절바른
존칭인 "현국님 " 이라는 호칭을 아직 잊지 않은채..

" 흐윽 ~흑 ~
언젠가 현국님이 말했던 청량리 굴다리 아래 무료 급식소가 생각나더
구먼요. 그동안 히피 거지가 되서 만주 벌판을 떠돌아 다녔구먼요. 흑
흑~ 결국 여기서 만나게 되는구먼요."

나도 할말을 잊고 그의 손을 잡은채 눈물만 흘렸다. 그를 이런 비참한
인생의 막장에서 만난것은 반가움보다는 고통스런 안타까움이었다.
그나 나나 똑같이 쪽박찬 알거지가 되니 동병상린의 정이 생겨나서 작
년 가을부터 늘 이곳에서 만났다. 마치 30년전 새벽에 수유리와 중곡동
을 오가면서 새벽 당구를 치고 컴퓨터에 대해서 토론하던 때와 똑같았
다.그때 "당구 300이라고 다 똑같은 300이 아니다" 라면서 내가 늘 한
수 가르쳐 주곤 했었는데..

오늘 그는 유난히 노쇠해 보였다. 기침이 심한 그에게 배급받는 소마 한
알을 주었다. 그랬더니 오히려 자기가 배급받은 것까지 합해서 내게 도
로 주려 했다.

"전 괜찮으니까 현국님 신경통에 잡수시우 "

" 아니요.. 난 참을만 하니까 재촐님 천식치료에 들어요. 한꺼번에 두
알 먹으면 좀 나을거요 "

도로 내밀었으나 기어이 내 주머니에 밀어 넣고 말았다. 예나 지금이나
잔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오늘따라 재촐님이 더욱 힘들어 보이는 구료.. "

" 예..아까 낮에 수십년전 케텔의 전설적 시솝이었던 김형태님 장례식
에 갔다 오느라.. 쿨럭..쿨럭.."

"아니 김형태님이 결국 돌아가셨소 ? "

" 예.. 시청스테이션 지하 도에서 죽었어요. 많은 <하이텔거렁뱅이 동
호회> 회원들이 임종을 지켜 보았어요 . 그분답게 영광스런 임종이었지
요. 보통 거렁뱅이들은 꿈도 못꾸는 시청 스테이션 지하도에서 눈을 감
을수 있다니..더구나 그분의 시신을 최고급 정부미 쌀푸대로 덮는 감격
스런 장면을 보고 왔지요 "

이제 내 머리속에서 또하나의 우상이 지워졌다. 김형태 님은 과거 30
년전에 컴퓨터 통신인 케텔에서 시솝을 하던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모
든 컴퓨터 통신인들의 가슴속에 살아 있던 우상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
훌륭한 분의 말년도 비참하기만 하였다. 그는 케텔의 시솝이었다가 독
립을 하여 그분의 이름을 딴 형태-BBS 란 컴퓨터 통신 써비스 회사를
차렸었다. 곧 그 BBS 는 국내 최대 통신써비스 회사가 되었다. 회사 설
립 1년만에 가입자가 500만명을 넘어서게 되는 컴퓨터 통신 역사상 최고
의 기록을 세우기도 하였다. 그러나 2020년에 그의 회사도 오재촐님의
회사처럼 하루아침에 망해버렸다. 제작년의 일이었다. 시스템 오류와 통
신 예절을 망각한 못된 사용자 때문이었다.

형태-BBS 의 회선은 15만 BPS 짜리 노드였다. 수십년전에는 겨우 2400
BPS 가 일반적이었는데 그의 회사는 출범시부터 수십배 빠른 MNP CLASS
- 5000 을 지원하는 초고속 노드였다.그리고 호스트도 음성인식을 할수
가 있었다. 그의 BBS 는 처음 접속시에 타이핑으로 ID 와 비밀번호를
쳐넣은 것이 아니라 음성으로 모뎀스피커에 말을 해서 접속을 하는 것
이었다. 완전한 GUI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 와 VUI (보이스 유저
인터페이스 ) 를 지원하는 것으로 문자 정보와 음성정보를 제공하였다.
그러나 나날이 급성장하던 형태 BBS 가 몰락하게 되는 날이 왔다.
결정적인 문제는 비밀번호의 노출로 게시판이 쑥밭이 되어버린 사건이
었다. 통신 속도가 2400BPS 에서 15만 BPS 가 되어도 그 지겨운 통신
노이즈 (선로 잡음) 은 언제나 존재 했는데 이것이 문제가 된것이었다.
처음에 접속할때 음성으로 아이디를 말하고 비밀번호를 넣을때 노이즈
로 인하여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여 크게 소리를 질러야 만 했었다. 아이
디가 PCTOOLS 이고 비밀번호가 I LOVE KETEL 이라면

----------------------------
ID 를 부르세요 = 피씨툴스

-노이즈로 아이디 음성 인식을 하지 못했습니다.
좀더 크고 또렷하게 발음해주십시오 -

..ID 를 다시 부르세요 -------- 피 씨 툴 쓰 !~~~~~~~~~
ID 를 인식했습니다.


..비밀번호를 부르세요 --------- 아이 러브 케텔
다시 또렷하게 비밀번호를 부르세요.
노이즈로 음성주파수 를 감지 하지 못하였습니다

..비밀번호를 부르세요 ------- 아이 러브 케에텔 ~~~~~~~
- 호상 간에 좀 제대로 합시다. 음성주파수가 틀립니다.

.. 다시 비밀번호를 부르세요 ------- 아이 러브 케에에에텔 ~~~~켁켁~!
- 감기 드셨거나 술을 드셨군요. 음성 주파수가 틀립니다.
음주 통신은 할수 없습니다. 약드시고 감기가 낫거나 술이 깬후에
다시 접속해 주세요 -
-------------------------------

이런 식이었다. 철저하게 아이디 도용을 방지하지 하기 위하여 본인의
음성으로만 접속이 가능하게 한것은 좋았으나 노이즈 때문에 몇번씩

소리 질러가며 불러야 했기 때문에 통신을 제일 많이 사용하는 저녁 8
시 ~ 새벽 1시 사이에는 집집마다 아이디와 비밀 번호 입력하는 소리가
집 밖으로 들려서 오히려 도용당하기가 쉬웠다. 음성 비밀번호는 50개
단어 이내로 이루어져 있었다. 더구나 비밀번호를 만드는것은 개인에
따라서 천차 만별이어서 저녁이면 컴퓨터 통신하는 집에서는 벼라별 소
리가 다 새 나왔다. 통신에 과부하가 많이 걸리는 저녁시간에 담벼락에
기대서 들으면 별별 비밀번호가 다 있었다.

" 아부지 돌굴러 가요.. "
" !@#$%^&*()(*&^ !!! "
" 비밀번호는 패스워드입니다"
" I CAN,T HELP MY SELF "
" 세뇨리따 무차스 그라씨에"
"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뜨겠지"
" 오토파킹도 안되는 시X 이트 하드디스크 같은 놈아"
" 홧김에 서방질 할까부다 "

등등 기상천외한 음성비밀번호들이 있었다. 어떤 비밀번호는 밑도 끝도
없이 "조 X 미 씨 ! 사랑해 " 라고 하는것도 있었다.

이렇게 비밀번호 입력과정의 혼란스러움과 아울러 어떤 해커가 올린 음
란 게시물이 결정적인 카운터 펀치가 되었다. 음성정보를 하는 BBS 에
서 올린 퇴폐음란 게시물은 적나라하게 화상정보와 음성정보로 각 가정
에 흘려보냈으며 학생들이 주종을 이루던 형태 BBS 는 경악한 부모들
의 통신 강제 탈퇴로 파산할수밖에 없었다. 통신에서 부도덕한 사용자
의 예절은 두고 두고 풀어야할 숙제로 남기고 <형태 - BBS> 는 형태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 파산의 충격으로 알거지가 된채 김형태님은 떠
돌이가 되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종각 스테이션 지하도에서 그를 발견
한 사람이 폐인이 된 그를 제일 깨끗하고 안락한 거렁뱅이의 천국인
<시청 스테이션> sub-road 에 데려다가 극진히 간호했으나 결국 세상을
뜨고 만것이었다.국가인정 시민증이 없어서 장기 입원치료는 할수가 없
었다. 우울한 기분으로 배급품으로 나오는 쿠바산 씨거 를 피워물었다.
시민권을 가진 놈들은 전부 한국 전매청의 전설적 담배였던 " 새마을"
을 피우는데 우리같은 자들은 그저 쿠바산 씨거에나만족해야했다. 늙
으면 죽는것이 자연의 이치겠지만 젊은시절에 찬란하게 날리던 사람들
이 비참하게 생을 끝내는 것이 정말 안타까웠다. 담배 몇모금 빨며 망
연히 앞을 보는데 어디선가 본듯한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씨거를 힘
껏 빨아들이면서 기억의 파편들을 모았다. 김유식님이었다. 30년전 통
신에서 편하게 형..아우 하면서 지내던 사이였던 그 친구였다. 부리나
케 그 의 앞으로 달려갔다.

"혹시.옛날에 케텔 통신에서 만났던 김유식님... 아니신지?
유식이 맞지.. 자네 유식이 맞지 ? "

밥먹던 고개를 돌려 외면하던 그는 이름까지 대며 손을 잡자 초췌한 얼
굴을 들어 나를 보았다. 알맞게 타락한 영락없는 거지모습이었다.

"하하하.. 반갑네.. 유식군.. 결국 자네도 쪽박을 찼구먼.."
반갑네.. 자네가 30전에 os/2 카피 안해주면 죽인다고 맨날 귀찮게 할때
부터 나는 이미 짐작했지.. 거 머시냐.. os/2 에 관한 아름다운 이야기
인가 뭔가로 한참 나를 골려먹었지.. 아마.."

그도 한때 찬란한 청춘을 구가하던 능력있는 젊은이였다. 횡수동 1대 시
솝을 지냈고 통신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했었다. 내가 컴퓨터통신을 떠
난이후로 그의 소식을 얼핏 들었는데 그는 대한민국에서 가장큰 방위산
업체를 경영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탱크나
비행기를 만드는 방위산업체가 아니라 군대를 방위로 갔다 온사람들만
직원으로 뽑아서 방위출신들만 모인 산업체 라고 해서 번듯하게 <방위산
업체> 라고 이름을 붙였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방위의 사명이 그렇듯이

전쟁이 나도 정시에 퇴근하거나 유사시에 방위 백명이 달려들어 적 정규
군에게 경미한 상처를 입힌뒤 장렬하게 전사한다는 방위식 마인드 때문
에 한참 커나가던 그의 회사도 순식간에 몰락하고 말았다. 회사의 자재
창고에 불이 났는데 정시라며 모두 퇴근을 해버렸기때문이었다. 그리고
쫄딱 망한채 뱀장사를 다니다가 여기까지 흘러왔다고 하였다.

반가워서 한참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옷차림은 초라하나 곱게 생긴 할
망구가 구닥다리 고물 펜 컴퓨터를 들고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잡지사의 조기자라고 합니다"
두분은 과거에 컴퓨터 통신에서 아시던 사이였나 보지요 ? 이 무료급식
소에서 몇년만에 만나셨는지요 ? "

"아니.. 할멈은 ?혹시.. "

시청앞의 전자까치가 유난히도 울어 대더니 반가운 사람을 만나려고 그
런 모양이었다. 떠돌이, 거렁뱅이, 집시 들을 독자층으로 해서 발행하는
의 그 기자는 30여년전에 나를 인터뷰했던 어느
컴퓨터 잡지사의 여기자였다. 잘나온 사진을 버리고 에이리언 같은 사
진을 넣어서 내사진을 보고도 "참으로 기묘하게 생겼다 " 라고 알아보지
도 못하게한 그 주인공인 기자였다. 그 잡지사는 30년전에 쓰이던 휴렛
패커드 레이저젯-3 프린터에다가 이제는 단종된 page-maker 소프트웨어
로 부랑자 소식을 전하는 거지출판사였다.내가 아는척을 하자 그 기자는
외면을 하더니 얼른 자리를 피해버렸다.

"하하..유식군..
저 여자가 바로 사랑할때와 뒈질때 씨리즈를 만들게 한 장본인이야.."

"우하하..그래요.. 그래도 낫네요..
형은 거지지만 저 할멈은 그래도 기자거지잖아요 "

"허허허.. 옛말이 틀린게 하나 없어.
< 우기에 변변 상종 > 이라더니...

" 그게 무슨 말이우 ?"

"허허허 .. 장마철에 똥은 똥끼리 모인다는 말이지 "

그런데 외국 컴퓨터 잡지에서나 보았던 유명한 인물들을 이곳에서 만난
것은 정말 상상외였다. 시게이트 하드디스크 사의 사장이었던 사람
을 거기서 만났는데 아무리 오토파킹도 안되는 후진 하드디스크를 만
들더라도 그렇게 쪽박까지 찰줄은 몰랐는데 이 무료 보급소가 괜찮다
는 말을 듣고 아세안 특급 SUB-ROAD 를 타고 이곳까지 온것이었다. 음
식이 맞지 않는지 고생하는 듯했다. 그리고 느려터지고 하드웨어 사양만
크게 요구해서 그림의 떡이었던 MS-WINDOWS를 만들었던 MS 사의 빌게
이츠를 만난것도 뜻밖이었다. 1992년도에 세계최대의 갑부로 선정되기도
했던 이 신화속의 인물이 30년전처럼 천연덕스럽게 윈도우가 세계 컴퓨
터 시장을 지배하리라는 확신때문에 IBM 과 맥킨토시의 "핑크프로젝트"
에 넉다운을 당한것은 역사속의 사실이었다.

그외에 30년전에 컴퓨터 통신을 하며 알고지내던 몇명을 더 만났다. 나
상철님을 만난것도 의외였다. 그는 내 얼굴을 기억하고 있는지 불쑥 손
을 내밀며 동일한 운명이 되었음을 반가워 했다. 케텔과 하이텔 시절의
컴퓨터 통신 이야기를 하며 옛추억을 이야기하는데 누군가 피씨-써브 이
야기를 하였다. 아직도 그대로 존재하는데 회원이 5만명이라고 하였
다.30년전과 똑같은 회원수이지만 신기해서 자세하게 물어보았더니 5만
명의 가입자중 49500명은 자체직원들의 아이디 이고 430명은 IP 들이
쓰는 무료 아이디 였으며 나머지 중 65명은 30년간이나 사용료를 내지
않고 버티는 깡과 오기만 남은 골수 사용자들이었고 5명은 비밀번호를
해킹해서 장난스레 쓰는 해커들이라고 했다. 30년전에 그렇게도 느리고
가입자 써비스가 엉망이더니 이제 그쪽 사람들도 여기 무료급식소를 기
웃거릴 날이 얼만 남지 않은것 같았다.

한참을 웃고떠들다가 헤어졌다. 이제 보고 싶은 사람은 딱 한분 남았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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